남을 돕는데 친구따라 강남간단 말이 있지요. 하룻 밤 같이 잔 인연으로 만리장성 같이 쌓는단 말 말이요.
그러므로 남을 돕는 자격과 조건을 옹아리하면 부족하단 논리.
아 그래 남 돕는 조건에 내 곳간이 차야 인심낸다는 듕국 관자(管子) 시조나 여지껏 읊조리며 자위한다는 게요?
코앞에 떨어진 남의 불쌍함은 젖혀 놓고 남 돕는 자격, 내 잇속만 따지는 사람들의 그 뮝하는 소리.
자립 하난 알고 두 벙[番]째 옳음을 모른다고 한탄함이 오늘 '강남'사형의 반문이로세.
하지만 강남사형(師兄)!
내 새끼가 열이 쩔쩔 끓는데 집에 남겨 놓고, 교회 바자회에 가서 남 멕이고자 사골뼈 삶아 육게장 끓이게 됬습니까?
내가 없으면 안되는 형편일 때 다른 사람 구제한다고 출가하여 의(義)를 떠들면 옳은 일입녜까?
내가 벌어야 밥 먹고 사는데 목사되어 돈 벌어 오겠다고 삼박자 축복 통성기도로 눈물 흘리게 하고 자빠뜨려 감명받아 낸 돈으로 목사 주머니 채워오면 의롭습녜까?
나 없이도 내 집구석이 밥술 먹게 제가진무(齊家鎭誣)되어진 후라야만 집을 떠나 석가 동자승되고 예수 모델(像) 신학생이 되어야 합녜다.
사랑, 의로움, 탐구하는 길(道)이란 없고 이름이 그냥 보시자비, 충서(忠恕). 꼭 이렇게 불러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여깁니다.
한국인 중의 "묻지마" 살인을 냅두고, 아프가니스탄 가서 마호멧 믿지말라다 우리 나랏돈으로 벌금내고 풀려나와야 이웃 사랑, 만방의 롤 모델 영웅호걸 됩니까~!
삶에서 두 벙[番]째 경우라는 것도 알고 보면 첫 번째입니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언제나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는 대의(大義)는 큰 뜻이기에 희미합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일이란 사소한 작은 일이 모인 것이고, 서경(書經)에 기록된 바:
"실수작이란 별 개 아니다. 작은 실수가 모인 것, 모래 위의 성 쌓은 정체(整體)"
그러므로 그 어느 누가 있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 발 밑의 우물에 빠져서는 자기 체면이 말이 아니게 향기롭지 못할 겁니다.
남에게 나서기 전에 돋보기로 내 발톱 밑의 때꼽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제 발뒷굼치의 굳은 살부터 벗기고 구세군 자선남비 앞에서 종소리 내면 좋을 성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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