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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좋아하는 이솝과 유 향 고사숙어
글쓴이 : dkp 날짜 : 2012-10-12 (금) 01:34 조회 : 1361
툭하면,

┏세상을 감찰하라!
'인간을 요주의하라'┛는 
이솝과 유 향(劉向)의 시커먼 하늘아래 인간세 현공풍수(玄空風水).

그 중 이솝의 예순번 째 교훈이 <부엉이와 새들>.

명석한 부엉이가 칠면조, 장탉, 왜가리, 멧비둘기(rock pigeon), 온갖 잡새를 모아 놓고 훈계하기를

"부엉부엉~!
이 도토리나무 싹을 보라! 작을 때 뭉게버리잖으면 이 게 크게 자라 겨우살이(mistletoe)가 들어붙어 살 것이고 부엉붱, 그러면 끈끈이(birdlime)가 나와 니네들을 없애게할 것이다. 부엉 부엉!"

그로부터 얼마 있다가 새들을 다시 불러 놓고는

"이 삼(麻. flax) 싹을 보라. 모두들 가서 먹어 치우라! 부엉붱!
아니면 사람들이 삼줄그물을 던져 분명히 니네들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첫 활잽이(archer)를 보고나서 새들을 또 불러 모으더니

"저 활을 든 자가 니네들의 치명적인 원수니라. 너희들의 날개쭉지를 관통하리라, 부엉부엉 붱!"

그러나 이 번에는 모든 새들이 그의 말을 들은둥 마는둥.
오히려 저 부엉이가 미쳤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 부엉이의 말이 사실로 들어나자 새들은 마음을 고쳐 먹고, 기분 나쁘게 부엉대는 부엉이를 존경하기 시작.

그리하여 모든 새들이 그에게 모여 들어 좋은 가르침을 얻고자 모여들었는데, 그러나 부엉이는 부~엉붱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땀을 닦으며 자신이 실없는 짓을 한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을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부엉부엉 붱" 울기만 했다. 50

자신을 알면 원망할 사람 없다.-지기자불원인(知己者不怨人);

그로부터 얼마 후 사람들이 자기 노래소리를 좋아하지 않기에 이 부엉이가 이사나가려고 맴을 먹는다.-전한(前漢) 유 향(劉向) 설원(設苑) 담총(談叢) 아장동사(我將東徙)

둥지를 뜯는 부엉이가 들비둘기를 만나니, 그 비둘기가 묻기를 "자네는 장차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가"라 묻자 "나는 앞으로 내 자리를 그냥 동쪽으로 옮기려고 하는 거야"라 말했다.

이에 그 비둘기가 "자네가 능히 그 징그러운 울음소리를 스스로 그치려 하기 전에는 동쪽으로 옮긴다 한들 그 쪽 사람들 역시 별볼일 네 울음을 미워할텐데. 너는 왜 들쥐잡기 전에만 조용하단 말이냐"라 반문했다. 278-279 

이 훈계는 그 아무도 자신이 완벽하다고 잘난 체하지 말라는 것. 

그 제 아무리 아무리 벼이삭이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지만, 이 정도로는 천만의 말씀!

궁굴레통 위에서 볍씨만 털려, 정미소 돌 골라내는 망사를 거쳐 고무 롤러를 열 번 통과해야 절차탁마되어 열린마당 좌판 옆 멍석 위에 희디 힌 십푼도쌀 여주ㆍ이천쌀 백미로 나올 수 있는 법. 
ㅋ ^-^dkp

써니 2012-10-15 (월) 15:39
第一節 玄空風水에 대한 약사(略史) 

 風水는 음택(陰宅)과 양택(陽宅)으로 대별되는데 음택이란 고인이 된 조상의 유택(幽宅)을 말하는 것이고, 양택이란 현재 생활하고 있는 자손들의 주택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만상은 길흉이 존재하게 되어 있으므로 자연 음택이나 양택의 이론에도 길흉이 내재하게 되니 이를 규명하는 것이 풍수학(風水學)인데 풍수학은 형기론(形氣論)과 이기론(理氣論)으로 크게 대별(大別)된다. 
 따라서 형기론을 위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형법가(形法家) 또는 형기파(形氣派) 또는 강서파(江西派)라 하고, 이기론을 위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이기가(理氣家) 또는 이기파(理氣派) 또는 복건파(福建派)라고 하는데 강서(江西)나 복건(福建)이란 학리(學理)가 발상된 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형기(形氣)는 일명 만두(巒頭)라고도 하는데 만두는 산형(山形)의 성체(星體‥산봉우리)만 보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용(龍) 혈(穴) 사(砂) 수(水)등 형세(形勢)를 살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만두내사(巒頭內事) 즉 형기론의 범주에 속한다. 
 이기(理氣)란 <&28789>청랑경(靑囊經)<&28803>에서 말하는 이우우기(理寓于氣) 즉 이(理)는 기(氣)가 돌아가는 이치이고 기유우형(氣츉于形) 즉 기(氣)는 형체(形體)속에 들어 있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천하의 모든 만물(萬物)은 형이상(形而上)이든 형이하(形而下)든 이기(理氣)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없다. 
 무릇 이(理)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理)이고 기(氣) 역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이며, 형(形)이란 산은 내닫고(산치‥山峙) 물은 흘러내려〔水流〕가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같이 천하의 모든 산맥은 뻗어 내려가고 물줄기는 굽이쳐 흐르지만 이러한 모든 형태(形態)는 바로 음양오행의 기운으로서 운행되는 것이니 이(理)는 자연히 그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기의 작용은 이치로서 따지면 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주자(朱子)께서 이르기를, 기로서 형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理)는 자연히 따라 붙게 되어 있다.(氣以成形 理亦賦焉)라 했으니 이 말은 이기(理氣)의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본다. 
 그런데 기에는 길(吉)한 기운과 흉(凶)한 기운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진의를 추측하여 알아내는 방법은 이(理)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성인(聖人)이 괘상(卦象)을 만들어 이치(理致)를 밝혀 비로소 기의 길흉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했다. 
 그러므로 이기론(理氣論)은 그 이치가 복잡하고도 방대(尨大)하여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니 예를 들면 쌍산사경(雙山四經) 삼합수법(三合水法) 수산출살(收山出煞) 천산투지(穿山透地) 생도분금(生度分金) 휴수왕상(休囚旺相) 소현공오행(小玄空五行) 홍범오행(洪範五行) 숙도오행(宿度五行) 삼원현공애성법(三元玄空?星法‥즉대현공오행법) 현공대괘법(玄空大卦法) 자백결(紫白訣) 기운세시(氣運歲時) 등 이외에도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한데 이러한 풍수상의 이론은 모두 다 이기내사(理氣內事) 즉 이기론에 속한다. 
 이러한 이치를 모두 터득하려면 먼저 라경(羅經)에 대한 해설을 해야겠지만 라경의 종류도 삼합법과 삼원법으로 나누어져 그 이론이 전연 달라 이 두가지 모두를 설명하자면 이론이 자못 방대해지므로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삼합법이나 현공법을 알아야만 두 종류의 라경법을 이해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시급한 것은 현재 한국의 풍수학계(風水學界)는 무주공산이나 황량한 들판같이 공황(空荒)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를 먼저 탈피해야 할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되어 라경의 해석보다 먼저 지리학 전체에 대한 소개와, 기초적인 이론이라도 먼저 밝혀야 할 것 같아 본서를 쓰게 되었다. 
 지리풍수의 학리에 대해 상승(上乘)의 경지에 이르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서 연구정도와 응용수준이 삼백년(三百年) 정도는 뒤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만두(巒頭‥즉 形氣)의 이치에 밝아 중국의 대가들에 비해 실력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던 명사들이 드믈기는 하지만 이 근세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현공학(大玄空學)이 300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일부에서 시행되고 있었고 그 진리가 밝혀져 크게 성행한 것은 벌써 백년에 가까우며 이 근래에 와서는 완전히 실용화되어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지리학 연구정도를 학생의 등급제에 비유한다면 초등학교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지리오결의 삼합수법(三合水法)이나 당나라때 중이었던 일행선사(一行禪師)가 만든 멸만경(滅巒經) 중의 일부인 역괘풍수(易卦風水‥일명 동서사택법 또는 생기복덕론), 양구빈의 삼합수법등 기초적 수준을 탈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대현공학(大玄空學)같은 현현묘묘(玄玄妙妙)한 학리가 있는줄도 모르는 술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삼백년정도 뒤떨어 졌다고 직언(直言)하는 바이다. 
 독자들은 생각하기에 그러한 판단은 필자의 독단과 오만에서 나온 편견으로 망언(妄言)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나 앞으로 전개되는 이론을 읽어본 후에 다시 평해주기를 바라며 현공학을 이해하고 나면 필자의 발언이 결코 망언이 아니라는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원래 둔재인데다 게을러서 풍수를 연구한지 삼십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리에 대해 상승(上乘)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긴 세월을 두고 여러방면으로 연구하는 동안 많은 책을 구해서 읽어 보았고, 국제적으로 중국인(中國人)들이 아세아권은 물론 구미각지까지 폭넓게 퍼져 살면서 풍수를 생활상 실용화 하고 있는 것을 자주보며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필자는 애초에 풍수입문을 형기파(形氣派) 스승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으므로 형기론에 주력하다 보니 이기론은 경시한바가 없지 않았다. 
 재래로 한국술가의 학풍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이 철저하게 조직적이지 못하고 어떤 학리를 정식으로 물어보면 선문답(禪問答)하듯 반탄반토(半呑半吐)하는 방식으로 일관했던 것이 하나의 풍조로 내려왔으므로 필자도 스승에게 「대현공학(大玄空學)을 공부해야 됩니까」 하고 질문하니, 「대현공법을 알아두면야 좋지만 공부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대답을 들은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임자년(壬子年, 1972) 봄에 대구의 한 중고책방에서 유공중 저(劉公中著) <&28789>감여벽류전진(堪輿闢謬傳眞)<&28803>이라는 160쪽에 불과한 낡은 소책자를 구입했는데 집으로 돌아와 읽어보니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상하 양편으로 편집되었는데 상권(上卷)은 이책의 저자 유공중(劉公中) 자신이 읽어 본 삼십여종의 유명(有名) 무명(無名)한 지리서에 대한 촌평과 풍수지리학 전체에 대한 사견(私見)을 적었고, 하권(下卷)에서는 대현공학(大玄空學)을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장대홍(蔣大鴻)의 <&28789>현공비법(玄空秘法)<&28803> 뢰태소(賴太素)의 진전(眞傳)인 <&28789>숙도오행법(宿度五行法)<&28803> 양균송(楊筠松)의 <&28789>삼합진전(三合眞傳)<&28803> 등 삼종(三種)의 비전을 기재했는데 필자가 지리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지침과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책이었고 풍수상 일말의 개안(開眼)을 하게 된 것도 이책의 지침대로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 장대홍의 현공비법에 대한 유공중의 혹평때문에 현공학을 중시하지 않은탓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었지만 아무튼 감여벽류전진은 발군지서(拔群之書)이다. 

第二節 현공학(玄空學)은 누가 창시했나 

 원래 현공학(玄空學)을 세상에 처음 발표한 사람은 명말 청초(明末淸初) 때 장대홍(蔣大鴻)이란 사람으로 저서의 이름은 <&28789>지리변정(地理辨正)<&28803>이란 책이다. 
 지리학의 진위(眞僞)와 사정(邪正)을 분별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풍수지리학계에 천파 만파의 파장을 이르켜 수많은 사람들이 위서(僞書)라고 공박하는 반면, 이 책을 신봉해서 주석한 학자만도 수백명에 달하므로 이책의 진위(眞僞)에 대한 공방(攻防)과 교조호송(交嘲互訟)은 수백년에 걸쳐 그칠줄을 몰랐다. 
 유공중(劉公中)은 자신의 저서인 감여벽류전진(堪輿闢謬傳眞)에서 혹평(酷評)하기를 『장대홍(蔣大鴻)의 지리변정(地理辨正)과 천원고경가(天元古鏡歌) 등은 말도 안되는 괴탄지설(怪誕之說)로 사회에 끼친 해독이란 이루 말을 다 할 수가 없다. 
 내가 그 책을 읽어 본 바로는 그 사람은(즉 장대홍) 지리에 대한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본다. 
 지리간능집(地理簡能集)이란 책이 있어 읽어보니 그 책을 지은 저자의 말이, 장대홍과 나는 같은 동내에서 태어나 그를 잘 아는데 장대홍이 소점한 묘(墓)들은 십중팔구 패절을 당하지 않은 집안이 없었다 했으니 나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천원오가(天元五歌)에서 논하는 산만(山巒)의 이론은 거짓으로 꽉 찼고 그러한 이론 정도는 어린 목동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비속한 이론으로 무극자(無極子)란 선인(仙人)에게서 옥함(玉函)을 전수받아 십년만에 명철대오(明徹大悟)했다는 이론이 겨우 이렇게 유치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내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범의빈(范宜賓)의 건곤법규(乾坤法窺), 우해(于楷)의 지리록요(地理錄要) 구양순(歐陽純)의 풍수일서(風水一書) 윤일작(尹一勺)의 사비전서(四秘全書) 등은 모두 다 필생에 전심 전력을 바쳐 장씨(蔣大鴻)의 반은 내뱉고 반은 들여마시는(半呑半吐) 듯한 잠꼬대 같은 이론을 갈심노력(竭心努力)해서 주석을 달았다는 점인데 그것은 아마도 장씨가 하늘이 울릴정도의 천기비밀(天機秘密)을 무극자에게 전수받았다는 말에 속아 즐거이 그의 노예가 되었거나 아니면 그들은 큰 바보일 것이다』 라고 평하고 있다. 
 또 하권(下卷)의 <&28789>장대홍지리변정애성비법상주(蔣大鴻地理辨正?星秘法詳註)<&28803>에서는 『청나라 초기에 장대홍의 지리변정을 주석한 것이 십여가(十餘家)가 넘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들이 주석한 장씨의 비전이란 책들을 모두 읽어 보았더니 태반이 억지조작한 이론들이라서 깊게 연구하지 않고 있다가 예능(醴陵)이란 곳의 유걸(劉杰)이란 사람이 주석해서 동치(同治) 8년(1869년)에 출판한 변정발비(辨正發秘)란 책을 구하게 되었는데 아마 지리변정(地理辨正)을 주석한 책으로는 가장 늦게 출판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저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동정(洞庭)이란 곳에 있을 때 소포야인(蔬圃野人)을 만나 그가 깊게 감추어 두었던 비전(秘傳)을 모두 전수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구입해서 읽어보니 이 책만은 장씨의 지리변정(地理辨正)에 대한 의견이 나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그는 현공학(玄空學)을 많이 연구한 것 같고 또 어느정도 이치를 심득(心得)한 것 같은데 삼반괘(三盤卦)의 이론에 대해서는 깊게 감추고 한마디도 근본 이치를 밝히지 않았으니 장씨의 비밀이란 참으로 드러내놓고 판단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곤임을거문종두출(坤壬乙巨門從頭出)에 대한 주석에서 그는 말하기를 『강씨(姜? 강요로 장대홍의 적전제자)의 청랑오어(靑囊奧語) 주석에서 이르기를 강요(姜?)의 주석중에 있는 곤임을비진거문예(坤壬乙非盡巨門例)에 애성구결(?星口訣)이 은연중에 들어 있는 듯 한데 강씨는 뜻을 모르거나 별도의 곳에 주각(注脚)을 단 듯 한데 자신의 말로 주석을 확연하게 달아 놓았다고 하면서 어찌 이것을 모호하게 주석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적고 있다. 
 내가 소포노인에게 현공법(玄空法)을 전수받을 당시에도 이부분이 누락되어 상세히 연구하기가 어려워 지금에 이르도록 7, 8년간 쉬지않고 연구하고 고찰해도 그에 대한 진의를 알아 낼 방도가 없다. 그래서 변정직해(辨正直?)나 변정재변(辨正再辨) 변정소(辨正疏) 변정보의(辨正補義) 일립속(一粒粟) 등을 구해서 참고하고 연구해 보아도 각 책마다 논설이 각각 달라서 하나같이 불합(不合)되어 합치점을 찾을 길이 없고 장씨의 지리변정(地理辨正)에서는 청랑오어(靑囊奧語)의 주석을 달지 않고 자기 제자인 강씨(姜?)만이 주를 달게 한 것은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장대홍(蔣大鴻) 자신도 참뜻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특별히 적는 바다 云云』 했는데 이러한 모든 논설로 미루어 볼때 장씨(蔣大鴻)의 지리변정(地理辨正)은 믿을 바가 못된다고 주장했다. 
第三節 필자의 현공곤학기(玄空困學記) 

 필자 역시도 위에서 열거한 모든 선생들과 같이 <&28789>지리변정(地理辨正)<&28803>이나 <&28789>지리정종(地理正宗)<&28803> <&28789>건곤법규(乾坤法窺)<&28803> <&28789>청랑오어(靑囊奧語)<&28803> <&28789>천옥경(天玉經)<&28803> <&28789>도천보조경(都天寶照經)<&28803> <&28789>지학철골비(地學鐵骨秘)<&28803> <&28789>현룡경(玄龍經)<&28803> 등 몇몇 현공법에 관한 책들을 연구해 보았으나 이론의 황홀함만 느꼈을 뿐 진의는 파악하지 못한채 그저 막연히 주위만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다 유공중(劉公中) 선생의 단호한 혹평에 동감하여 현공학에 관한 연구는 중단했었다. 
 그러나 오사청(吳師靑)의 <&28789>루우보감(樓宇寶鑑)<&28803>이나 <&28789>지리정종(地理正宗)<&28803> 등 몇가지 현공서들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지운《地運-후편 운기장을 참조바람》에 따라 발복이 된다는 이치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는 6운이었으므로 건해(乾亥)방 위에서 길이 오면 그 길에서는 사람이 북적대고 또 발복들을 하고 있었으므로 현공학의 대략적인 이론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관심을 버린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乙丑年(1985년)에 대만을 가서 책방골목을 샅샅히 뒤져보니 대만 사람들이 연구하는 지리서는 8, 90프로 현공학 일색이었다. 
 그리고 나침반(羅經) 역시 삼합반(三合盤)보다는 현공반(玄空盤)인 삼원반(三元盤)이 더 많았고 풍수연구가가 현공법(玄空法)을 모른다면 지사취급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었다. 
 중국인들의 본성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중국인들이란 철저한 실용주의자들이다. 
 실질적으로 증험(證驗)이 되지 않는 이상론이나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현공학(玄空學)의 방식대로 음, 양택을 조성했을 때 발복이 되지 않는 공리공담(空理空談)이었다면 그런 학문이 사회전반에 유행하게 놔두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대만에 있는 동안 유공중(劉公中) 선생의 현공무용론에 대한 혹평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우선 구입해 가지고 돌아온 책이 심소훈(沈紹勳)著 <&28789>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28803> <&28789>지리변정쾌요(地理辨正抉要)<&28803> 책군(策群)著 <&28789>택운신안(宅運新案)<&28803> 우석음(尤惜陰)著 <&28789>이택실험(二宅實驗)<&28803> 심조면(沈祖綿)著 <&28789>현공고의사종통석(玄空古義四種通釋)<&28803> 심소훈의 <&28789>주역이해(周易易解)<&28803> <&28789>주역시아록(周易示兒錄)<&28803> 등 이외에도 여러종의 현공에 관한 책들을 구해 와서 하나 하나 열람해 보았는데 택운신안(宅運新案)을 읽어보고서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1, 2집 두권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두권 모두 합해서 1,200쪽에 달하는 자못 두꺼운 책으로 1권 첫머리에는 각 나라의 지운(地運)에 따른 흥쇠(興衰)와 또 20여년에 걸쳐 연구한 음양이택(陰陽二宅)의 실제적 경험실증이 폭넓게 실려 있었는데 이책이 완성된 것은 민국17년이니 서기로는 1928년도가 되므로 70년여전이 된다. 
 70여년전에 비행기로 파리상공을 날며 지형(地形)을 관찰했고 이태리, 영국, 일본, 중국 등의 운기(運氣)를 현공법에 의해서 정확히 평론했다. 
 이 책의 서문중에 심소훈선생의 자제분이 되는 심조면(沈祖綿)선생의 글속에 『책군(策群)선생과 나는 20여년간 서로 만나지는 못했으나 선생께서는 천성(天性)이 견고하기가 이를데 없고 학문을 존숭하여 항상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현공학을 좋아하여 시종 연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세상에서 현공학이 쇠퇴됨을 걱정하여 이같이 훌륭하고 특별한 책을 세상에 내놓으니 이책을 연구하여 깨달아 이책의 방법대로 음양택을 조성한다면 추길피흉하기란 아주 쉬운일일 것이다.』라고 찬사한 것으로 보아 이책의 저자 책군(策群)은 심소훈(沈紹勳)선생의 문하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로 심소훈선생의 역작인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을 정독해 보았더니 현공학의 비밀이 이 책속에 모두 들어있기는 한것 같은데 좀처럼 깊은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일생 사적(史蹟)에 대한 글을 읽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第四節 기인(奇人) 심소훈(沈紹勳)선생 일대기(一代記) 

 <&28789>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28803>이란 책의 저자는 심소훈(沈紹勳)선생이고 자(字)는 죽잉(竹휰)인데 장대홍(蔣大鴻)의 현공비결을 완벽하게 세상에 밝힌 장본인이다. 
 선생께서는 송나라때 대학자요 명환(名宦)이었으며 그 유명한 몽계필담(夢溪筆談)의 저자인 심괄(沈括)의 후손으로 청나라 도광(道光) 29년 己酉 서기 1849년 6월 12일 절강성(浙江省) 전당현(錢塘縣)에서 이 지방의 관족(冠族)인 심씨(沈氏)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세상에서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 간 사람들이 수 없이 많겠지만 선생같이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희생된 사례이긴 하겠지만 그는 3세에 부친을 잃고 열세살되던 신유(辛酉)년에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군(?軍)들에 의해 집안 식구중 일곱명이 살해를 당하는 참극과 모친은 난군을 피해 우물로 투신자살을 하게 되는 참사를 당했다. 
 다행히 그는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재빨리 타처에 숨어있어서 태평군에 살해되는 위기는 모면했으나 결국은 태평군들에게 붙잡혀 일년간이나 끌려 다니며 모진 학대를 당하던 중 워드(華爾)장군이 지휘하는 미국군의 공격으로 태평군이 도주하는 바람에 선생께서는 미국군의 부속부대인 동자대(童子隊)에 편입되게 되었다. 
 동자대(童子隊)란 워드장군의 직속 예하부대로 적군에 대한 탐정, 물자의 이동, 사소한 일의 심부름 등 다양한 용도의 소년부대였다. 
 천성이 영민한 선생께서는 항상 워드장군의 옆에 있게 되었고 또 매사를 민첩하게 처리하므로 워드장군과 그의 중국인 부인 요씨(姚氏)의 눈에 들어 그는 워드장군의 양자가 되어 한 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송강(松江)에 주둔하고 있던 워드장군의 부대가 절강의 자계(慈谿)지방 전투에서 워드장군이 그만 포탄을 맞아 전사하고 만다. 
 그 경황중에서도 선생께서는 워드장군의 시신을 송강까지 잘 운구하여 정성껏 장례를 모셔드렸다. 
 선생께서 열다섯이 되는 다음해 워드장군의 중국인 처 요부인(姚婦人)은 남편의 전사로 인한 충격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이 생겼으나 치료치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인이 운명하기 전에 백만금의 유산을 선생께 물려주려 했으나 「나는 나이가 어려 그런 큰 돈을 쓸줄도 모르고 유지하지도 못한다」고 극구 사양하고 종내 받지 않았다. 
 희대(希代)의 천재였던 선생께서는 미국인 가족과 같이 생활한 덕도 있었겠지만 겨우 2년이란 짧은 시간에 익힌 영어로 영문 해독과 작문도 무난히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요부인(姚婦人)마저 세상을 떠나자 선생은 영국군 골던(戈登)장군의 부름을 받아 그의 휘하에서 병법서도 번역하고 신병을 훈련시키는 일도 담당을 했는데, 16세되던 동치(同治) 3년 甲子年에 홍수전(洪秀全) 양수청(楊秀淸) 등이 이끄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은 망하고 태평천국에 관한 뒷처리 등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에서 영장 골던과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 간의 마찰로 골던장군이 사임하고 귀국할 때 선생은 골던장군을 따라 영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이홍장이 만류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골던장군을 따라 가려하자 이홍장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중국군에 남게 되었다. 
 그후 이홍장밑에서 선생이 번역한 병서로 <&28789>태서조법(泰西操法)<&28803> 6권, <&28789>지뢰도설(地雷圖說)<&28803> 2권, <&28789>과산포도설(過山?圖說)<&28803> 2권이 현재 남아 있다. 
 그후로 이홍장과 더불어 중국해군의 모든 군함을 점검해 본 결과 고철에 가까운 독일식 군함이 중국해군이 가지고 있는 전부였으므로 이러한 군함과 무기로는 일본(日本)이나 다른 열강들이 가지고 있는 신식 군함포에 비해 그 능력이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속히 신식군함으로 바꿔야만 중국해군이 온전할 수 있다고 이홍장에게 여러번 진언했다. 
 이홍장 역시도 선생의 뜻과 틀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나이가 연로(延老)하여 추진력이 떨어진데다 사실은 서태후(西太后)의 이화원공사로 막대한 공사비가 들었고 서태후의 금뿌리기를 마치 흙뿌리듯〔揮金如土〕하는 낭비벽으로 국고(國庫)가 바닥이 난 상태였으므로 청나라의 경제력으로 모든 병기를 신식무기로 대체(代替)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것은 다 세상의 운기(運氣)요 청나라의 국운(國運)인데 한 두사람의 혜지(慧知)로 정책을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선생께서는 모든 정세를 살펴볼 때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도탄에 빠질 것을 예견하고 고향인 항주(杭州)로 귀향(歸鄕)하여 상업에 종사했는데 사업이 제법 번창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사업은 뒷전으로 식구들에게 맡기고 매일 독서로 세월을 보내는 한편, 어린 나이에 친족들과 헤어졌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삼대조 이하의 함자 뿐이었으므로 친족을 두루 방문하고 선묘를 배알하면서 족보를 완전히 정리했고, 워드장군 내외의 제사도 자손들로 하여금 영원히 지내도록 명을 내리고 신위(神位)를 봉안했다. 
 선생은 16세부터 풍수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항주(杭州)에 정착한 후 유명인사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항주정씨(杭州丁氏)의 팔천권루(八千卷樓), 황씨(黃氏)의 오계루(五桂樓), 영파범씨(寧波范氏)의 천일각(天一閣), 노씨(盧氏)의 포경루(抱經樓)등 장서가(藏書家)들과 친하게 되었으므로 군서(群書)를 박람(博覽)할 수가 있었고 또 어떠한 희귀본(稀貴本)도 구해 볼 수가 있었다. 
 선생께서도 현공학서를 읽기는 읽었지만 요결(要訣)을 납득하지 못하고 삼합설(三合說)만 지킬 뿐 장대홍파의 애매모호한 이론들을 홍수(洪水)나 맹수(猛獸) 피하듯 싫어했다. 
 형기(形氣)에 완전 개안이 되었던 선생으로서는 그저 전국을 돌며 산천을 유람하는데 주력했을 뿐, 따로이 신기한 이기론이 있다는 자체를 무시했었다. 
 후에 선고(先考)의 장지(葬地)를 찾다가 중태산(中台山)의 남향터를 발견하고 상세히 관찰해 보니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형국이 완미(完美)해서 좀처럼 보기드문 자리였다. 
 그래서 대강남북(大江南北‥대강이란 양자강을 이름)의 80여명 지사(地師)들을 모두 불러, 그 자리를 보여 보니 하나 같이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속히 구입하고저 하던차에 모관리가 눈치를 채고 중금(重金)에 윗돈까지 얹어 먼저 구입해 버렸으므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시지를 않았다. 
 얼마 후 그 자리를 먼저 구입한 관리가 그의 부모를 장사지낸다기에 선생께서도 구경을 가서 파놓은 금정(金井)의 혈토(穴土)를 직접 들여다보니 옥황색의 토색에 태극문양이 선명해서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므로 더욱 억울한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산소를 쓴 관리가 죄를 짓고 귀양가던 도중에 죽고 그 후로 그의 집안도 영락(零落)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선생께서는 이상하기도 하고 납득이 가지가 않아서 다시 항주지방의 모든 지사(地師)들을 불러 모아놓고 토론을 한즉 모든 지사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그러한 길지(吉地)를 쓰고서 발복은 커녕 오히려 가문이 영락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몇몇 지사들은 장사지낸 날짜를 유추해서 장택의 길흉을 따져보기도 했으나 흉살(凶煞)이 하나도 범하는 날이 아니므로 더욱 이상했고, 삼합수법(三合水法)이나 사마두타수법(司馬頭陀水法) 구성수법(九星水法)등 모든 이기론(理氣論)을 부합시켜도 하자가 없었으므로 지사들이 머리만 떨구고 궁리할 뿐 확답 하는 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필자도 현공학을 깨치기 전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관리의 조상이나 본인이 적악(積惡)을 했거나 아니면 어떤 하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뿐, 믿음이 가지를 않았다. 

 그후 어느날 여요(餘姚)라는 곳에 살고 있는 선생의 매형되는 호백안(胡伯安)이란 사람이 여행하던 차에 선생댁에 들렀는데 그의 짐속에 풍수서(風水書) 한 권이 있어 꺼내서 대강 <&11751>터보던 중 강요비본운(姜?秘本云一運之壬山丙向犯之返吟伏吟 葬之則禍立至‥강요의 비본에 이르기를 1운에 임좌병향(壬坐丙向)을 놓으면 반음, 복음이 되어 장사지내자 마자 화환이 즉시 닥친다)라는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랬다. 
 바로 그 관리의 집안이 어째서 영락되었는가 하고 생각하던 의구심이 풀린 것이다. 
 그러나 어찌해서 임좌병향(壬坐丙向)이 1운에는 반음, 복음에 해당되고 길흉화복을 현공법으로 어떻게 풀어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책에서도 분명히 밝히지를 않았다. 다른 현공책을 여러가지 정독해 보아도 전혀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상시 실력있는 지사들을 일일이 만나 이에 대한 이치를 심각하게 물어보았으나 모두가 다 몽몽(蒙蒙)하여 쾌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후로 선생께서는 지난날에 현공학을 경시하고 무시했던 점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한 다음 현공학에 관한 서적이면 무조건 구입해서 연구해 보았으나 뚜렷한 가닥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후 동치(同治) 12년 계유(癸酉) 서기 1873년, 선생께서 25세 되던 해에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이란 곳에 지난날 대강남북에서 대명을 떨쳤던 장중산(章仲山)이란 지사(地師)의 후예가 현공의 비전(秘傳)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매형인 호백안(胡伯安)과 같이 무석(無錫)에 살고있는 장중산의 후예를 찾아가 몇달동안 주거를 정해 있으면서 갖은 방법으로 그 후손을 회유해도 그 후손은 한구절 한글자도 누설하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 와서 큰 돈을 마련하여 매형과 같이 다시 찾아가 그 돈을 내 놓으며 하루만 읽어보자는 조건으로 그 비전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매형인 호백안(胡伯安)과 같이 눈한번 붙이지 않고 꼬박 밤을 새워가며 책한권을 필사(筆寫)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음양이택록험(陰陽二宅錄驗)이라는 제목(題目)으로 되어있는 가경(嘉慶) 18년 서기 1813년에 장중산(章仲山)이 직접 필사한 수정본(手定本)이었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낭비해가며 애타게 구한 책이였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을 두고 궁구고사(窮究苦思)해도 묘리(妙理)를 터득(펶得)하지 못해 종내 해답을 얻지 못하고 애만 탔으니 누가 그 심정을 이해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든 어느날 하도 낙서에 관한 주석을 연구하던 중 낙서(洛書) 5수 중궁(中宮)에 대운수(大運數)를 입중(入中)시키는 이치와 장중산(章仲山) 비본에 기재된 도상(圖象)들이 모두다 서로 연관되어 진다는 이치를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된다. 


第五節 玄空學이란 무엇인가. 

 심소훈선생이 그렇게도 묘리를 깨치고저 수십년을 노력했으며 각 문파들이 수백년을 두고 비밀을 엄수했던 현공학(玄空學)이란 도대체 어떤 학문인가. 
 먼저 현공학의 역사와 각 종파에 대한 유래부터 알아 본 다음에 이치를 규명해 보기로 하자. 
 현공학은 현공풍수술(玄空風水術) 애성학(?星學) 현공대괘(玄空大卦) 애성장법(?星掌法) 대현공오행학(大玄空五行學) 활역경(活易經)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지나 대체로 현공학(玄空學)이라 약칭하는 이가 많다. 

 현공학에 대한 이치를 최초로 세상에 제출한 사람은 진(晉)나라때 곽경순(郭景純‥郭璞)이라고 현공학자들은 말한다. 
 당나라때 증공안(曾公安)이 지은 청랑서(靑囊序)에 진나라때(晉代) 곽경순(郭景純)에 의해 현공지술(玄空之術)이 개시 되었다고 하면서 곽경순이 이르기를 朱雀發源生旺氣 一一講說開愚蒙(생왕의 기운은 주작에서 발원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치를 모르니 일일히 강설해서 몽매함을 깨우치게한다)했으니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향상(向上)의 동구(動口)로 판단하는 것이 확실한데 그 원인은 동(動)은 살아있는 것이고 정(靜)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후 당나라에 이르러 양균송(楊筠松)이 지은 <&28789>청랑오어(靑囊奧語)<&28803>에서 논하기를, 자여웅 교회합현공 명현공 지재오행중 성장모 태극분명필유도(雌與雄 交?合玄空 明玄空 只在五行中 誠掌模 太極分明必有圖:암수가 서로 교회하여 합하는 것이 현공인데 현공의 밝은 이치는 바로 오행속에 있고 참으로 손바닥의 모양속에는 태극의 이치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했으니 현공의 이치란 곧 음양이 상교(相交)되는 것이고 현공지술(玄空之術)은 음양이 서로 상교될 때 오행이 따라서 운용(運用)되는 것이므로 그 이치는 손바닥 속에 다 들어있는 것과 같으므로 애성장법(?星掌法)이라 한다 했다. 
 그 후에 증공안(曾公安)이 양균송(楊筠松)의 비전(秘傳)을 얻고서 청랑서(靑囊序)를 지었는데 양균송과 증공안 두 선생들은 생각하기를, 현공의 비밀을 청랑서나 청랑오어만 가지고는 대중들이 현공의 뜻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양균송이 다시 천옥경(天玉經)을 지어 현공대괘(玄空大卦)인 애성법(?星法)을 정식으로 밝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양(楊), 증(曾) 두 선생이 현공애성법(玄空?星法)의 현묘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전하기는 했으나 핵심비결(核心秘訣)만은 적전제자(嫡傳弟子)에게만 은밀히 구전심수(口傳心授)했으므로 이 학통(學統)은 천여년을 두고 밀전(密傳)되었기 때문에 천하에 현공학의 진체(眞諦)를 아는 이는 없는 것 같았던 것이다. 
 양공(楊公‥양균송)의 비법이 적전구수(嫡傳口授)해 내려왔다는 사실은 실증된 것으로 유공중(劉公中)의 감여벽류전진(堪輿闢謬傳眞) 上卷 55절을 보면 『세상사에는 구설(口說)로 전수(傳授)해 주는 자가 자못 많은데 비록 경학(經學)이나 문학(文學)등 세상사람이 다 알 수 있는 이치도 구전전수해서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데, 별도로 대가의 방법을 받아 학리를 크게 이루는 것으로는 감여학(堪輿學)이 가장 두드러진다. 
 나의 고향에 건륭(乾隆)과 가경(嘉慶) 당시에 살았던 방모(方謀)라는 지사가 있었는데 그는 지리서(地理書)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가 소점한 8, 9개의 상묘(相墓)는 기이하게도 법도를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확실했다. 
 나의 스승 진애당(陳촩堂)선생께서도 그가 소점한 모든 혈(穴)을 보고 찬탄을 금하지 못하면서 그는 일견해도 명사(名師)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원래 양균송(楊筠松)이 유산(遊山‥즉 등산하며 산천을 관찰하는 일)할때는 항상 자기를 따르는 동네사람 한 둘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들은 글을 크게 배운 사람들이 아니어서 별도로 아주 간단한 구결(口訣)을 일러주었고, 이 구결은 각지방으로 은밀히 전파되어 지금까지도 밀전(密傳)됨을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각성(各省)을 돌아 볼때마다 기형괴혈(奇形怪穴)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점혈(点穴)했음을 보는데 그 점혈한 사람의 행적을 알아보면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으니 이로 미루어 볼때 양공(楊公)의 가법(家法‥즉 양공이 밀전해준 구결)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내려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라고 쓰고 있다. 
 사실 역대의 많은 유명지사 중에서 팽효(彭驍), 라문택(羅文澤), 범마자(范麻子), 유영태(劉永泰) 같은 지사들은 일생에 저서(著書) 한권이 없었고 또 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그들은 사실 길흉과 발복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능자(權能者)들이었다. 
 지령인걸(地靈人傑)에 나오는 한 예를 들면 중국에서 시씨(施氏)가 대족(大族)으로 퍼져 나가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유영태(劉永泰)라는 지사다. 
 하루는 유지사(劉地師)에게 십여년을 절친하게 지낸 시씨(施氏)성을 가진 친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유선생 나의 평생소원은 좋은 미지(美地)를 하나 얻는 것이니 유선생이 나의 소원을 풀어주시요 하므로 유영태(劉永泰)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그대는 극품관작(極品官爵)을 얻는 자리를 원하시요 아니면 자손만당(子孫滿堂)하는 자리를 원하시요 하고 물으니 시씨(施氏)가 하는 말이 극품관작까지야 뭐 바랄게 있겠습니까 다만 자손이 만당하기만 바랍니다 하므로 기룡혈(騎龍穴)을 잡아 주었다. 
 과연 그 후로 시씨(施氏)는 연속 아들을 십형제(十兄弟)를 낳았고 그 십형제들은 또 각각 십형제(十兄弟)씩을 낳아 후인들이 이곳을 십자백손지지(十子百孫之地)라 불렀다. 
 이상에서 열거한 팽효(彭驍), 라문택(羅文澤), 범마자(范麻子), 유영태(劉永泰)등 제 선생들은 비록 배움이 많지 않았다고 했으나 실제로 주인이 원하는대로 발복케하는 권능을 가졌던 분들이었는데 다만 적선지가가 아니면 거금(巨金)을 주어도 응하지 않았던 기인들이었다. 
 필자도 이분들의 사적(史蹟)에 대해 형기(形氣)를 통효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공학을 모르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공학의 요체는 심법으로 전해주면 너무나 간단해 글을 많이 배운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진단(陳팂‥진희이(陳希夷))은 오극성(吳克誠)에게 전했고 오극성은 그의 아들인 오경란(吳景鸞)에게 전했다. 
 중국 삼대풍수조사(中國三大風水祖師)중의 한분으로 주씨(朱氏) 집안의 선영을 소점해 주면서 공자와 버금가는 성현이 나올 것을 예언한 그 유명한 오경란(吳景鸞)선생은 진희이(陳希夷)의 재전제자(再傳弟子)가 된다. 
 오경란은 현공비지(玄空秘旨) 천기부(天機賦) 등을 세상에 내놓았으나 이 책 역시 비전(秘傳)만은 감추어 본뜻을 쉽게 밝히지 않았다. 
 오경란(吳景鸞) 선생은 송나라 중엽때 사람이고 장대홍(蔣大鴻)은 명나라 말기때 사람이므로 거의 오백년간의 격차가 나는데 그 오백년간 학통(學統)이 상전(相傳)된 인맥이 감감하게 기록되어 있지가 않다. 
 장대홍(蔣大鴻)은 자저(自著)인 지리변정(地理辨正)에서 말하기를, 자기는 이 비전을 무극자(無極子)라는 선인(仙人)에게서 받아 십년을 두고 궁구(窮究)한 연후에 비로서 명철대오(明徹大悟)할 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섭구승(葉九升) 저 <&28789>지리대성(地理大成)<&28803> 하편 6권끝에 있는 귀후록(歸厚錄)에서 말하기를, 현공학은 두릉(杜陵) 장대홍(蔣大鴻)이 편성(編成)한 것으로 그가 이르기를 통천(洞天)을 유람할때 진선(眞仙)을 만나 진결(眞訣)을 전수받았는데 이 진결은 「천궁(天宮)의 비밀로 인간의 책이 아니라 천상(天上)의 비밀을 양(楊), 증(曾), 진(陳), 오(吳), 뢰(賴) 등 제 선생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정전(正傳)된 것이다」 라고 말하고 근대에 와서는(명나라 말기때를 이름) 오직 모강사(幕講師‥즉 目講僧)가 현공법에 더욱 정통했고 유문성(劉文成), 사자기(謝子期) 등도 그 이치를 알았다고 보며 근년내로 오천주(吳天柱)가 구룡지법(九龍之法‥즉 현공학)에 자못 밝은데 그는 일찌기 스승밑에서 올바르게 배운 후 선인(仙人)에게 또 전수를 받아 비로소 완벽하게 학업을 이루었으니 그는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비전을 골자로 다시 옥경수겸(玉鏡水鉗), 천리안(千里眼), 야광집(夜光集), 수용결(水龍訣), 천옥경(天玉經), 팔산전수(八山剪水), 삼자청랑(三字靑囊) 등을 다 같이 연구해서 각 책들의 정미(精微)한 묘의(妙義)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깨달았다. 云云……한 것으로 보아 장대홍(蔣大鴻)의 학설이 청나라 초기부터 많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장대홍(蔣大鴻)은 지리변정(地理辨正)에서 청랑경(靑囊經), 청랑서(靑囊序), 천옥경(天玉經), 도천보조경(都天寶照經) 등을 세상에 전해서 현공학(玄空學)을 크게 발전시켰는데 한가지 그의 큰 착오는 지나칠 정도로 문호(門戶)를 폐쇄(閉鎖)하여 진결(眞訣)을 극비로 엄수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생각은 천장지비(天藏地秘)하는 천기(天機)를 함부로 누설할 수 없고 누설하면 하늘의 노여움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국(器局)이 작은 단견(短見)이었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유공중(劉公中)같은 형기파의 거두들에게, 장대홍이란 자는 지리학의 공신(功臣)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지리학의 대적(大賊)이다 라는 혹평을 들었고, 심지어는 그는 진결(眞訣)도 모르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 위해서 무극자(無極子)란 가상의 신선을 내세워 천기(天機)를 아는 것 처럼 꾸민 하천한 모리배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필자도 한때는 장대홍을 그런 인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가 적전제자 하나없이 세상을 떠났다면 영원히 그러한 오명을 벗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주석한 천옥경(天玉經)전에 보면, <&28789>오직 애성현공대오행(?星玄空大五行)만이 음양의 최귀자(最貴者)이니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전해주면 조물주의 노여움을 사서 큰 재난을 스스로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28803> 라고 쓰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의 본 뜻을 가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의 제자중에 강요(姜?‥일명 강여고(姜汝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장대홍(蔣大鴻)을 스승으로 20년간 모시고 따랐으나 진결(眞訣)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대홍이 선친의 유택(幽宅)을 마련코저 구산(求山)을 하던중 보기드문 미지(美地)를 발견했으나 값이 너무 비싸서 구득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강요(姜?)가 이천량의 거금을 내놓아 그 산을 구득하게 되므로서 현공학(玄空學)의 진전을 얻게된다. 
 그후 강요(姜?)는 청랑오어(靑囊奧語)에 주를 달기는 달았으나 조금도 함부로 누설치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느라 학리(學理)의 관건처(關鍵處)에 와서는 암시만 줄 뿐 후학들로 하여금 터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가 남겨놓은 종사수필(從師隨筆)이란 유작(遺作)속에 체괘구결(替卦口訣)과 칠성타겁(七星打劫) 성문결(城門訣) 등이 전부 들어있고 스승과 같이 실증(實證)한 약간의 예까지 들어있어 현공학의 비밀의 끈을 붙잡게 했으니 현공학을 이세상에 전한 가장 큰 공신은 바로 강여고(姜汝皐)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후 청대(淸代)의 강, 륭시대(康, 隆時代)에 이르러서는 송역(宋易)이 성행했으므로 현공학도 따라서 성행을 했는데 가경(嘉慶) 이후로는 기대규(紀大奎)의 지리말학(地理末學)이나 섭구승(葉九升)의 지리대성(地理大成)의 논리가 대행(大行)하여 모든 학자들이 이들의 학리를 쫓았기 때문에 현공학은 일시적으로 자취를 감추는 듯 했으니 그 원인은 현공비결을 전하는 문파들이 극소했고 더우기 그 비결을 누설치 않고 준수했기 때문에 학자들이 들어설 틈이 없어 자연 그릇된 위술(僞術)이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갔다. 따라서 위술일 수록 스승이란 자들의 위장술은 더욱 그럴듯 하게 꾸며져 진위를 제대로 가릴 수 없게 되었다. 
 현공학(玄空學)의 위법(僞法)이란 첫째, 매판(?板)같은 괘기법(卦氣法)으로 좌향(坐向)이나 성문(城門) 체괘(替卦)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운(一運)일때는 감기(坎氣), 2운일때는 곤기(坤氣), 3운일때는 진기(震氣), 4운일때는 손기(巽氣), 5운일때는 간, 곤양기(艮, 坤兩氣), 6운일때는 건기(乾氣), 7운일때는 태기(兌氣), 8운일때는 간기(艮氣), 9운일때는 이기(離氣)만 들어오면 된다고 주장하는 문파를 말하니 예를 들면 현재같으면 7운이므로 산맥은 경태룡(庚兌龍)에서 내려 오기만 하면 발복하고 양택은 서쪽에서 길만 오면 된다고 주장하는 부류를 말한다. 
 둘째, 고정기위법(固定氣位法)으로 구성(九星)중에서 어떤 구성(九星)이 입중(入中)되는가는 관계하지 않고 乾坐면 乾氣가 왕하다고 인정하고 坤坐면 坤氣가 왕하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을 말하고 
 셋째, 모든 괘(卦)를 부모괘(父母卦)에다 통일시켜 좌향의 음양을 논하지 않고 전체를 역비(逆飛)시키므로 모두다 도산도향(到山到向)을 만드는 부류들을 말하고 
 넷째, 향은 천반을 사용하고 산은 오운반(五運盤)을 사용하여 乾이면 乾宮, 震이면 震宮으로 고정시켜 보는 부류 
 다섯째는 생성수법(生成數法)으로 즉 1운에 6궁을 만나면 1을 가하고, 2운에 7궁을 만나면 2를 가하고, 3운에 8을 만나면 3을 가하는 등의 그럴사한 거짓 이론들이 출현해서 각 문파끼리 서로 자기 문파만이 가장 올바른 이론이요 정통이라고 서로 공격하고 각축을 벌였다. 
 이렇게 청말(淸末)에는 많은 문파가 출현하여 서로 자기의 문파만이 조종(祖宗)이라고 선전하는 현공학파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현공파로 여섯 종파가 있었으니 건곤법규(乾坤法窺)의 저자 범의빈(范宜賓)을 종사(宗師)로 하는 전남파(?南派), 
 변정직해(辨正直?)와 심안지요(心眼指要)의 저자 장중산(章仲山)을 종사(宗師)로 하는 무상파(無常派), 
 지리변정소(地理辨正疏)의 저자 장심언(張心言)을 종사(宗師)로 하는 상우파(上虞派), 
 지리변정보(地理辨正補)의 저자 주소학(朱小鶴)을 종사(宗師)로 하는 소주파(蘇州派), 
 지리사비전서(地理四秘全書)의 저자 윤유본(尹有本‥즉 尹一勺)을 종사로 하는 상초파(湘楚派), 
 변정구진(辨正求眞)의 저자 채면산(蔡眠山)을 종사(宗師)로 하는 광동파(廣東派)등 이 외에도 여러문파들이 난립하고 있었으나 현공(玄空)에 대한 깊은 이치를 능히 융회관통(融會貫通)한 사람은 이들 중에서 한사람도 없었다. 
 각파의 종사(宗師)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저서(著書)를 만들어 사방에 유포시켰고, 자기만이 양균송(楊筠松)과 장대홍(蔣大鴻)의 적전제자(嫡傳弟子)이고 자기만이 비본(秘本)을 갖고 있다고 과장을 해서 문도(門徒)를 모집하고 저서입설(著書立說)하므로서 스스로는 치부(致富)의 방편이 되었을 지 몰라도 사회에 끼치는 해독(害毒)은 막대했고 종사(宗師)라는 위품을 내세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가증스런 모습이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종사(宗師)들 중에서 혹자는 신선(神仙)한테 전수받았다. 
 혹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전비결(家傳秘訣)이라는 등의 행편선장(行騙宣張)을 서슴치 않았는데 이러한 위술을 부리고 다녀도 사회에서 탄로(綻露)가 나지 않게 된 것은 현공학의 대종사(大宗師)격인 장대홍의 저서에 「천기를 함부로 누설시켜서는 안된다(天機不可漏泄)」 라고한 구절이 바로 탄로가 나지 않게 한 방패였다고 본다. 
 이렇게 자기의 문파가 대종(大宗)이라고 다투다 보니, 자연 각 문파끼리 서로를 공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서로를 공격한 문파로는 장심언(張心言)의 상우파(上虞派) 문도들과 장중산(章仲山)의 무상파(無常派) 문도들로 자신만이 정종(正宗)이고 상대문파는 위종(僞宗)이라고 비방했는데 장심언(張心言)파가 장중산(章仲山)파를 공격함이 더욱 혹렬(酷烈)했다. 
 왜냐하면 장중산은 지리학에 있어서 열역(閱歷)이 광박(廣博)하거나 학문(學問)이 심수(深邃)하지는 못했으나 강요(姜?)의 진결(眞訣)을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현공학의 진결을 비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임상에서는 어느 문파보다도 정확한 판단력과 발복을 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나 장심언(張心言)은 역리(易理)를 깊게 연구한 학자로 소강절의 64괘방원도(六十四卦方圓圖)를 근본으로 하여 현공이론을 부합시킨 반경기(潘景祺)의 애성분도(?星分度)에다 자기가 평생 연구한 현공의 논리를 주합(湊合)시켜 애성육십사괘대법(?星六十四卦大法)을 만든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현공학의 핵심비결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비록 순수학문과 경학(經學) 시서(詩書)등의 학문에 있어서는 장중산(章仲山)과는 비교도 안되게 경지가 높았지만, 지리학상의 증험이나 조화(造化)에 있어서는 오히려 훨씬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핸디캡을 커버하고저 더욱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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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2-10-15 (월) 15:43
민국초(民國初)에 그의 문도인 축요고(祝?皐), 장진채(張振采), 유상초(劉湘樵)등 세사람이 각기 스승에게서 받은 비장본(秘藏本)을 합해서 현공진해(玄空眞解) 3권을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장심언(張心言)의 이론이 세상에 크게 밝혀졌는데 현재 대만에서 유명한 지사로 활동하고 있는 증자남(曾子南)도 그의 수십권이 넘는 저서들을 살펴볼때 그는 장심언(張心言)의 후학인 상우파(上虞派)라고 생각된다. 
 사실 장심언(張心言)의 애성육십사괘대법(?星六十四卦大法)은 선천자연괘(先天自然卦)의 이치에서 나왔고 구궁팔괘에다 본원을 둔 학리(學理)였기 때문에 모두다 위법(僞法)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단 체용(體用)이 분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인 용사(用事)에서 착오가 생기게 되고 64괘의 괘체에다 부모자식괘(父母子息卦)를 억조부합(臆造付合)시켜놓고 장대홍(蔣大鴻)의 24산 분별도는 64괘에 은닉(隱匿)되어 있는 것처럼 운괘(運卦)해서 애성법(?星法)을 오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심언의 역리(易理)는 그릇됨이 없으나 실제적인 용법에서는 착오가 생기기 때문에 하괘(下卦), 기성(起星), 체괘(替卦), 성문결(城門訣) 등의 방법은 전연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의 애성요결(?星要訣)이 분금법(分金法)이나 반음(反吟), 복음(伏吟)을 피하는 방법은 맞지만 그는 자기의 학문과 자파(自派)의 문호(門戶)에 집착한 나머지 손가락 하나를 잃지 않으려다 어깨와 팔을 다 잃어버리는 우를 면치 못했다고 본다. 
 반대로 장중산(章仲山)파는 구궁비성(九宮飛星)에만 집착하여 구궁(九宮)이 곧 팔괘(八卦)요, 팔괘가 곧 구궁이며 비성(飛星)은 곧 64괘 자체라는 깊은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비록 용(用)은 알았으나 체(?)는 모르는 우를 범해 양파는 더욱 상쟁으로 치달아 현공학의 이론은 자꾸만 지리멸렬(支離滅裂)해 가고 있었다. 
 장(章), 장(張) 두파의 문도들은 각자 보물을 깊은 곳에 감춰두고 내것은 진짜지만 네것은 가짜라고 서로 우겨대는 아이들 장난같은 다툼을 할 것이 아니라 양 파가 서로 보물을 꺼내놓고 서로 장점을 살려 조합을 잘 시켰더라면 더욱 훌륭한 보석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렇게 했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이 다같이 호학지사(好學之士)로 필생에 갈력(竭力)을 다하여 각자 문호를 창건했건만 서로 기국(器局)이 작아 비밀을 엄수해야만 한다는 단견(短見) 때문에 생긴 술가(術家)들의 추태(醜態)만 남겨놓은 격이되고 말았다. 
 이같은 술가(術家)들의 불미스러운 쟁투를 하루아침에 종식(終息)시킨 이가 바로 심소훈(沈紹勳)선생이다. 
 선생께서는 장중산(章仲山)의 후예에게 중금(重金)을 주고 현공비결을 얻어 온 후에도 삼십년이 가깝게 궁구고사(窮究苦思)하고 갈심노력(竭心努力)한 결과로 현공대법(玄空大法)을 활연관통(豁然貫通)한 것이다. 
 그러니까 40여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지리학을 연구했고 천칠백종(千七百種)이 넘는 주역(周易)책을 섭렵하고 연구한 결과 비로소 얻어진 개가였다. 
 그후 <&28789>지리변정쾌요(地理辨正抉要)<&28803>와 <&28789>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28803>을 세상에 내놓아 현공학의 모든 비밀인 반음, 복음(反吟, 伏吟)의 해(害), 삼반괘(三盤卦), 겸향(兼向), 하괘기성(下卦起星), 체괘구결(替卦口訣), 성문결(城門訣), 천심장결(天心掌訣), 장괘애성(裝卦?星), 향수천반입중위수(向首天盤入中爲囚), 수불주여수득주(囚不住與囚得住), 도산도향(到山到向), 상산하수(上山下水) 등의 비밀용법을 모두 밝혀 감춘바가 없었다. 
 그야말로 태양이 동출(東出)하니 암흑같은 어둠이 소멸되듯이 몽매한 각 파당의 질투를 불식(拂拭)시켰던 것이다. 
 선생께서는 지공무사한 대인이었다.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 2권의 비밀지류(秘密之謬)절에 보면 한 제자가 묻기를, 천기를 누설함이 불가하다 했는데 오로지 선생께서 비밀을 모두 누설하였으니 어째서 그렇게 누구나 알게 피력하셨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대답하기를, 양공(楊公)의 천옥경에 
惟有?星爲最貴 漏洩天機秘 
(오직 애성만이 최귀한 것이니 천기를 누설하겠는가) 
天機若然安在內 家活當富貴 
(천기가 만약 내 마음안에 있다면 집안이 당연 부귀하게 되지만) 
天機若然安在外 家活漸退敗 
(천기가 만약 밖에 있다면(모른다면) 가세는 점점 퇴패되리라) 
 라고 말한 구절은 세밀히 따져보면 여기서 말하는 천기(天機)란 괘리(卦理)와 천운(天運)을 말한 것이지 장대홍(蔣大鴻)이 천기(天機)의 비밀은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주석을 한것과는 본 뜻이 다르다. 장대홍이 천기는 누설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했기때문에 모든이가 그렇게 알고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속된 선비의 좁은 안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그러자 또 묻기를, 공께서 비밀을 지키지 않아 현공의 비술(秘術)이 세상에 크게 밝혀졌으니 후인이 이를 따라서 안도입향(按圖立向)한다면 부귀가(富貴家)에서는 땅을 얻기가 쉬운 법이므로 계속해서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니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선생께서 대답하시기를 「좋은 땅(美地)을 얻게 되는 것은 적덕지가(積德之家)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므로 적선을 못한 집안에서 대지(大地)를 구하려다 오히려 화패(禍敗)를 당한 경우를 내 평생에 여섯번이나 경험해 보았다. 
 그러므로 그러한 염려는 공연히 미리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답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평소에 장대홍이나 장중산의 무리들이 천기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는 속된 선비의 비인지심(鄙吝之心)에서 발로된 추태였다고 생각하고 또 증오했다. 
 선생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천지의 변화하는 이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물(死物)과 같은 것으로 모든 사물(事物)의 이치나 작용은 사람을 통해서만 실용화되어 살아나는 것이고, 또 천인합일지학(天人合一之學)이라 하나 하늘이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이는 곧 만물이란 사람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중간에서 천심(天心)을 상응케하는 것이므로 만물의 활성화(活性化)는 즉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참으로 지활지도(知活之道)를 깨쳐야만 다시 천인합일지도(天人合一之道)가 이루어진다 하면서 모든 천하의 만물이나 이치가 사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으니 천지의 기추(機樞)를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참된 도가〔眞理〕 세상에 남겠는가? 라고 반문했다. 
 선생께서는 이렇게 활대한 사상가였기 때문에 아들이 되는 심조면(沈祖綿)에게 유언으로 이르기를, 「오늘날 서양 사람들은 성광(聲光)이 화전(化電)되는 기막힌 이치와 또 이 외에 비밀스런 과학의 이치를 하나도 숨김없고 아낌없이 세상에 책으로 밝혀 천기를 폭로해도 그들 누구하나 하늘의 벌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는가. 그러니 비밀이라고 감추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요사이 내가 구병(舊病)이 재발한 것을 보니 나는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이 애비가 세상을 떠난 후라도 너는 나의 유작(遺作)을 깊게 감추어 진비(珍秘)한 것으로 보이게 하지 말고,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두 보여주어 절대로 기국(器局)이 작은 소인이란 말을 듣지 말아라」 하는 경계의 유언을 남겼으니 이 어찌 심선생이야말로 크나큰 대인(大人)이 아니겠는가. 
 천재는 장수하기가 어렵다더니 선생께서는 향년 58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는데 사후에 자제분인 심조면(沈祖綿)과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의 유고(遺稿)를 정리하여 지리변정쾌요(地理辨正抉要)와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을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현공학의 현묘한 비밀은 한 위대한 숨은 학자의 평생에 걸쳐 갈심 노력한 결과 세상에 크게 빛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第六節 현공풍수(玄空風水)에 대한 재도전 

 필자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중의 하나는 유공중(劉公中)선생과 심소훈(沈紹勳)선생은 같은 항주지방(杭州地方) 사람이면서 어찌하여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유공중(劉公中)선생의 저서에 황국정(黃國楨)이란 사람이 쓴 서문(序文)을 보면 광서정유(光緖丁酉)에 그의 조부수역(祖父壽域)을 조성하고 명사를 따라 2년간 유산(游山)을 하면서 비전을 모두 전수받았다 라고 쓰여 있는데 광서정유(光緖丁酉)라면 서기로 1897년이 되므로 심소훈(沈紹勳)선생이 49세 되는 해이고 황국정(黃國楨)과 유공중(劉公中)이 만난 해는 丁未년이라 했고, 유공중 자신의 서문에 壬寅년에 회계(會稽)에 있는 우혈(禹穴‥禹王의 陵)에 올라 산천을 살펴보았다고 했으며 이 책이 출판된 해는 중화민국 3년이었으므로 모든 정황을 미루어 볼때 두 사람의 연치(年齒)는 유공중 선생이 심소훈선생보다 20여세 연하(年下)인 것 같다. 
 그런데 두분이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은 두분 모두가 지리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적인 지사가 아니었다는 점과 유공중선생은 절동(浙東)사람이라 했으니 청전(靑田)의 대족 백온후 유기(伯溫侯 劉基)의 후손인 것 같고 가세가 풍족한데다 초년에 명사인 진애당선생(陳촩堂先生)을 만나 일찍 학문을 이루었으므로 누구보다도 학문적으로 교류하고저 하는 문제에서는 폐쇄적이었을 것이므로 생전에 두분이 서로 교류가 안되었던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애석한 것은 심소훈선생의 저서가 생전에 출판이 되었다면 십중팔구 서로 상면했을 것이라고 보는데 유공중선생의 저서가 오히려 11년이 빠른 중화민국3년(서기1914년)에 출판된데 비해서 심소훈 선생의 저서는 민국14년(서기1925년)에 출판이 되었고 또 그 때는 청일전쟁이후 각지방의 군벌(軍閥)이 봉기(蜂起)해서 전국이 전화에 싸여 있을 때였으므로 유공중선생이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유추할 길이 없다. 
 어찌됐던 이에 대해서 크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만약 유공중선생이 심소훈선생의 제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저서라도 만날 수 있었더라면 현공학에 대한 유공중선생의 생각은 전연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유공중선생은 소포노인(蔬圃老人)에게 비전을 받았다는 유걸(劉杰)의 변정발비(辨正發秘)란 책에서 현공의 많은 논리를 알아냈다 했는데 필자가 유걸의 변정발비를 볼때 그 책의 이론은 장심언(張心言)의 현공64괘대법(玄空六十四卦大法)의 이론에 불과하고 성문결(城門訣)에 대해서는 성문결을 모르면 산수(山水)의 조화를 모두다 나의 것으로 활용할 길이 없다고만 큰 소리를 쳐놓았지 성문결의 뜻이 형기론에서 말하는 팔국성문쇄진기(八國城門鎖眞氣)라는 뜻인줄 알았는지 막상 성문결의 설명에서는 엉뚱한 도표나 그려놓고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하고 있다. 
 이로 볼때 심씨현공학이 세상에 밝혀지기 이전에 현공학에 대한 유공중선생의 비평은 나름대로 가장 올바른 판단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사람이란 누구나 어려운 것 보다는 쉬운 것을 쫓으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난해(難解)한 책을 만났을 때는 대개 경이원지(敬而遠之)하게 되는 법인데 더우기 추종하는 선철(先哲)이 무가치한 이론이라고 폄하(貶下)했을 때는 누구나 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도 이같이 유공중선생의 현공무용론(玄空無用論) 때문에 현공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십여년 이상의 세월을 손해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필자가 乙丑年(1985년)에 대만과 홍콩을 가서 살펴 본 바로는 모든 풍수에 관한 서책들이나 풍수강의를 하는 학원에서도 모두 현공학만을 강의했고, 따라서 현공학을 연구하는 수강의 열기도 대단했다. 
 그래서 현공학무용론에 대한 의구심과 동시에 호기심이 크게 발동하여 여러 책자를 구입해다가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심씨현공론(沈氏玄空論)의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한 것은 마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앞을 가로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열아홉살 때부터 역학공부를 시작했는데 시작한 동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서당을 다녔는데 그때 천자문을 가르치셨던 훈장 선생님의 성씨는 유씨(柳氏)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훈장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는 바람에 五리 이상 떨어진 윗동내에 사시는 송선생님(휘 인옥(諱 仁玉) 밑에서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서당을 다녔다. 그때 어떤 청수하게 생긴 선비가 훈장 선생님을 찾아와 고담준론을 하시다가 주역에 대한 논리가 나오자 그 젊은 선비한테 우리 늙으신 훈장 선생님이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 까지도 대단히 면구스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필자는 생각하기를, 나는 커서 주역을 열심히 공부해서 누구한테도 지지말아야지 하는 반발심이 났던 것이 동기라면 동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셋에 자평명리(子平命理)을 터득했고, 기문(奇門)과 육효(六爻)도 입문은 했고 하락이수(河洛理?)의 선후천 괘상도 세울줄 알았다. 
 스물넷부터는 대육임(大六壬) 공부를 시작해서 깨달았고 77년 丁巳年에 육임정의(六壬精義)를 출판했다. 그 이후로 상수주역과 풍수에 주력해서 웬만한 것은 모두 무사자통(無師自通)했으므로 역학에 관한 한 어떤 난해한 서적이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공학(玄空學)이 어렵다 하나 뭐 그리 대수롭겠는가. 
 아무때나 주력해서 연구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생반심(妄生反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십여년을 허송세월했던 것이니 유공중선생의 현공무용론과 나의 건방진 자만심이 합쳐져 귀중한 시간만 낭비했다고 본다. 
 일천한 현공학의 실력으로 6운이라면 음택은 반드시 건해룡(乾亥龍)이나 경태룡(庚兌龍)에 소점하면 되고, 양택일때는 건해방에서 길이 오거나 건해대문을 내면 되며, 7운에는 경태(庚兌), 8운에는 간인(艮寅), 9운에는 이방(離方)의 기운을 잡아쓰면 된다는 상식이 고작이었으나 그래도 양택은 그런대로 적중률이 높았으므로 현공론에 대해서는 그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할 것이라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공학의 이론을 정독해 보니 필자가 알고있는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본체는 깊이 감추어져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현공학에서 핵심의 열쇠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었다. 
 심소훈 선생이 비록 현공학의 이론을 완전히 밝혀 놓기는 했다고 하지만 대문의 빗장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필자는 원래 천성(天性)이 느긋하고 태평진중(泰平鎭重)한 성격을 타고 나지 못하고 심사가 초급망박(焦急忙迫)해서 시쳇말로 우물가에서 숭늉찾는다는 격으로 어떤 학문이건 연구하다가 이해가 안되고 막히면 공연히 걱정하고 오매불망 초조불안하여 태연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 성격이다. 
 더우기 소시적부터 오십(십여년전 그당시)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이르도록 여러 방면의 역학을 연구해서 조금 심득(心得)하고 있다고 자만을 하고 있었는데 현공학이라는 이론 앞에서는 앞길이 꽉 막힌 격이 되니 식불감미(食不甘味)하고 만사에 흥미가 없었다. 
 그러므로 홍콩과 대만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공부못하는 놈이 책가방만 크다는 격으로 현공학에 관계되는 책이라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다 사다놓고 보았다. 
 모두 읽다보면 현공학을 깨치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으로 사서 본 것인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다 허망한 짓만 했던 것이다. 
 중국의 현공학 저자들이 아주 고약해서 어떤 것은 한두권이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을 여나무권에다 늘어 놓기도 하고, 어떤책은 한권에 수십만원씩 하는 책들도 많았다. 
 필자가 辛未년부터 궁벽한 시골에 정착한 후 한유한 시간이 많아 현공학과 씨름을 해 보니 수백권의 현공학책이 있다 하나 담양오(談養吾)의 <&28789>대현공로투(大玄空露透)<&28803>와 <&28789>변정담씨신해(辨正談氏新?)<&28803> 정웅(鄭熊)의 <&28789>초창문답(蕉窓門答)<&28803> 등몽각(鄧夢覺)의 <&28789>지리지본금쇄비(地理知本金鎖秘)<&28803> 책군(策群)의 <&28789>택운신안(宅運新案)<&28803> 우석음(尤惜陰)의 <&28789>이택실험(二宅實驗)<&28803> 등 몇몇책에서 암중생광(暗中生光)을 얻었고 결국은 다시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을 집중적으로 연토하고 나서야 현공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필자가 아둔해서 한서불철(寒暑不撤)로 탄정연사(큁精硏思)하기 4, 5년만에 현공학의 심령치혜(心靈齒慧)를 얻었으나 전후 근 십여년에 걸친 현공학과 씨름하는 동안은 참으로 쓰디 쓴 인고의 세월로 어둡고 험한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다. 
 현재 한국의 역학계나 풍수학계는 상상도 못하게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고 더우기 가당치도 않은 위법(僞法)이 판을 치고 있으므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릇된 것은 쫓고 참된 것은 받아 들여야겠다는 취지에서 이글을 쓰는데 형기론(形氣論)은 너무 방대해서 우선 서평만 썼고 차후로 기초에서 완성까지 난이도의 순서에 따라 써보고저 한다. 
 형기론은 원래 천년이란 세월을 두고 선사(仙師)들이 연찬전승해 내려왔고 따라서 정벽한 이론서가 많기 때문에 완벽한 이론이 많은 풍수서에 사족만 하나 더 붙일 것이 아니라 훌륭한 번역서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본다. 
 단 번역이나 해설은 다음으로 미루고 본서에서는 이기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피력코저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정격대지(正格大地)나 기형괴혈(奇形怪穴)을 제대로 구해서 부모의 유택을 정하기란 일생에 목적을 삼거나 특수한 경우를 빼놓고는 어려운 일일 것이고 대부분이 아무렇게나 조성된 공동묘지로 조상을 모실 것인데 그럴 바에는 일본같이 전 국민이 화장(火葬)문화를 받아 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청오경(靑烏經)에도 일분영성십분고빈(一墳榮盛十墳孤貧(영화롭고 번성하는 무덤이 한개라면 가난하고 고단한 무덤은 열개나 된다))이라는 귀절이 있는 것만 보아도 자고이래로 발복한 산소가 몇개나 되고 또 크나큰 대지(大地)나 길지(吉地)를 얻을 덕성있는 집안이 몇이나 되겠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박아나 기형아 출산이 많아지고 소아들이 무서운 암을 앓고 있으며, 심하면 무뇌아(無腦兒)까지 태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옛날보다 많은 이유를 의학적이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답을 얻으려 하나 아직은 밝혀진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원인은 아무데나 산소를 쓰고 아무데나 집을 짓고 사는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터나 산소를 잘 골라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 조상을 잘 모시기란 어려운 일이라 화장(火葬) 문제도 언급해 보았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란 움을 파고 살아도 집이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앞으로는 지리학을 연구함에 있어 양택이론에 밝아야 하는 것이 제일의 요무(要務)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지사들이 활용하고 있는 양택이론은 당일행(唐一行)의 멸만경(滅蠻經)에서 나온 역괘풍수(易卦風水) 즉 동서사택(東西四宅)법을 활용하는 것이 고작이고 아직도 대도시의 집터를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사수사(四獸砂)에 갖다 붙이려하며 생기복덕(生氣福德)이나 따져 길흉을 정하고져하는 지사들이 대부분이니 중국의 풍수에 비해 백년 또는 삼백년이나 뒤떨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일행의 역괘풍수(즉 동서사택법)가 근본 원리부터 대경대법(大經大法)에서 어긋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양균송(楊筠松)의 삼합수법(三合水法)에 대한 정론(正論)과 숙도오행(宿度五行)의 활용법과 황제택경(黃帝宅經), 현공론(玄空論) 등 음양택의 이론에서 한가지도 모르고 있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오대법칙(五大法則)을 상세하게 논하고저 한다. 
 독자들이 음양택론(陰陽宅論)의 진체(眞諦)가 되는 이 다섯종의 대 법칙을 연구해서 크게 깨닫는다면 그야말로 피흉취길(避凶就吉)은 물론 천지조화가 장중(掌中)에 도래(到來)할 것이다. 

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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