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과학을 넘보는 것은 윤리라는 연장 하나로 급행열차운행을 정지시키려는 무모한 짓.
'카이사의 몫은 카이사,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란 모또를 거신 예수님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이 예수님의 윤리관을 너무나 다목적으로 오용하여 가만히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그 못된 성질을 나무라는 것.
까닭은 윤리는 방법이지 연장을 마련하려는 과학정신이 아니기 때문.
성경은 외골수 유태사상에 예수님이 사랑, 용서를 집어 넣으시고, 사도 바울이 그리스 프라톤 등 헬레니즘을 접목시킨 도덕.
물론 성경을 열어 보면 판도라 박스보다는 오물조물하다. 그러나 집 한 채 지을 연장이 다 없는 건 사실이다.
이 걸 가지고 죽네 사네, 재산 바쳐라, 목숨 바쳐라.
이 기독교 사상이 쇠락해진지 오래인데 이 걸 가지고 매사의 매듭을 풀어가려 하지만, 간단한 송곳 하나도 없으면서 아예 그 말씀으로 세상에 걸리적거리는 매듭을 냅다 후려치는 칼로 쓰고 있으니, 이 짓거리는 가히 알렉산더 대왕이 수수께끼 골디안 매듭을 풀지 못하자 칼로 끊는 무례한 짓거리.
지나간 역사를 보라. 역사는 파괴, 부흥, 반복되는 사상의 순환, 시행착오적 문명사였다.
독재자의 비위에 맞는 사상만 남게 되고, 그후의 위정자는 이를 관습법이라며 습용해 왔다.
보라!
기독교인을 무참히 처벌하던 주피터 로마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 프랑스에서의 사를르망 대제에 의해 기독교를 창달시켰고,
중국 독재자 진시황이 아는 체하는 놈(者)들을 땅에 묻고 책들을 불태울 때 황제의 병을 고치는 의서, 황실의 점을 치는 주역책은 남겨두지 않았는가!
끼닭은 감옥생활이 무료하여 무심코 서죽풀가지로 점친 문왕의 64가지 경우를 그의 아들 주공단이 왕실점술로 이용하자함에 무왕이 동의했기 때문이요, 공자가 열 권의 해설서를 붙여 놓았기에 역경(易經)이라며 그럴연한 철학서로 둔갑한 것 처럼, ..
역시 사도 바울이 그리스 철학을 바이블에 접목시켜 헬레니즘을 유대사상에 접목시킨 윤리철학서로, 신학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바이블이 성경(聖經)이란 품격을 얻게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승계발전, 멸망하는 사상과 이념들. 아침 이슬과 같이 태양이 중천에 떠 오르기 전에 사라진다.
이 기독교 사상 역시 서구에서는 끝장에 다가선 건데, 우리나라에서 복고풍으로 왜 그리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구원해준다고 교회로 불러 놓고 나서는 돈 벌려고 생명을 위협해!
지난 역사를 거듭 보라!
공자왈 맹자왈이 목택동한테 쥐어 박혔지만, 우리나라에선 제사지내는 게 이게 좋은 윤리네, 내 방식이 정통적인 예절에 합당하네 우기면서 사색당파나 만들던 역사를 잊어버렸는지, 성경 윤리구절가지고 천파만파 교파를 만들어 제가 잘 났다고 선언하는 꼴이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