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이야, 참으로 어려운 일. 입으로 사랑을 외치지만 아무도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아 동물의 세계를 연상하는 종교마당. 제대로 꼴갖춘 지휘자 없고, 하모니 된 교향곡 한 번 못 들어 봤다. 바이올린은 그것끼리, 클라리넷은, 트럼펫은 지들 끼리 소리 내지만 음악소리 낸다는 것에서의 동일성이지 모두 묶는 지휘자 없다면 그 어찌 교향곡이 나올꺼며, 대다수의 종교가 사랑을 강조한다하여 모든 종교의 지도자 나온 적 없으니 그 모두 다 사랑이란 헛나발 불고 있는 음향이라 아니 하겠는가?
종교는 사랑을 같이 강조하였으나 사랑한 적 없섰고, 보다 나은 삶을 꾸리도록 이끄는 효과가 있다지만 조금도 나아지게 한 적 없고, 제 각기 나발불고 끼리끼리 사랑이란 말로 종교의 윤리적 가치를 고양하도다.
그러나 사랑은 종교가 아니요 윤리인 걸 모르는 것이요, 이는 종교 없이도 착한 사람 많음을 모르는 소치이니, 사랑이란 말을 신앙의 도구로 쓰고 있음이려니, ...
사랑이 쥐코만큼도 없는 사람이 신앙의 신비를 벗기는 그 것도 그렇지, 매몰차게 욕하면 어찌 짐승과 다름이 뭣이요 귀찮은 신천옹(信天翁albatross)이려니 싫으면 싫다고나 할 것이지 제 말만 고고하게 말하고 남의 "말은 읽지도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인두겁 쓴 땅패기. 왜 제 마음을 성냄으로 표현하여 다른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사랑은 방법이니 좋음도 성냄도 이해로 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제 아니하고 바보들의 잘못만 들추면 이 역시 향기롭지 아니하도다.
산정에 홀로 올라 '얏호'라 외쳐도 메아리 치고 홀로 노래 불러도 쥐라도 듣는데 표현의 자유를 홀로 즐기기만 하는 행투, 논빼미 우렁삼킨 후 왜가리 소리.
진실로 독재요 자신의 아집만을 위한 전제행위, 열린마당에서 혼자 치는 화투, 일제 잔재의 '하나후'련가.
세상에 말을 주고 받는 열린마당에 이런 답답한 경우도 있는가! 제 버릇대로 똥을 묻기 위해 개가 땅을 파고, 그러니 느는 게 없고 연상 벽창우같은 말. 내가 아무리 그의 글을 읽고 아무리 댓글을 달아도 일고의 가치가 없네.츳츳
이 내 멍청한 눈동냥에 '에크 하르트 톨레'의 '지금'. '지금 여기'는 '그 때 거기다'.
그 어느 날, 그 중 오늘도 그 누가 있서 '영성, 영적인 삶'에 대해 비아냥. 이건 아니올씨다다. 그의 과거는 '지금'에 대한 추억, 스스로의 개인 속에 파묻으려는 독백. 그 '지금'을 버려야, 그가 자유로워질텐데 말이야. 그가 현대종교가 가지고 있는 속물근성에 대하여 많은 걱정함을 보았다.
종교는 변하지 않는다. '톨레'의 생각을 돌려 말하면 교리로 묶어 신학의 복면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게 하려는 복마전의 종교를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곳에 들여미는 강요를 싫어할 뿐.
그 점점 교리가 늘어나 나는 하루 하루 한낱 슬기마저 사라질 뿐이다. 소는 소일 뿐. 소(牛)의 지혜에 절대의 법은 존재하지 않으며(금강경), 교리는 워낭소리일 뿐 종교가 아니다. 교리를 외침은 워낭소리요, 소의 그림자인 척 소가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밖의 삼나무 가지를 문득문득 내다 보며 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생각하고 한심하게 무식함을 느끼며 내 삶의 지식을 꿴 슬기주머니 하나 없이 낱낱이 주워들은 풍월을 그나마 놓치고 있다. 수많은 종교와 교파에 의해 시달리다 못해 욕하는 잡음에 내 구슬마저 훨훨 날아 흩어지는구나.
영성에 대한 석가님, 노자님, 공자님, 순자님, 이 이님, 예수님, 바울님 말씀, .. 낙엽처럼 열린마당에 흩어진다.
예수님이 소품(小品)에 대해 물으신 적이 있다. "너희가 무얼 믿으면 무엇이나 신(神)이 된다는 걸 성경에서 읽은 적이 없느냐?"
공자님이 중용 성론 제사행위에 대해 말씀하셨다. "귀신은 귀신을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여여如如)'이다.
순황(荀況. 순자)은 말했다. "제사는 친교를 목적한 관습이다"라고.
구도장원공 '이 이 율곡'선생이 말씀하셨다. "귀신이 제사 음식을 향음하는 건 겨울에도 잘 간수한 초목이 토굴에서 싹이 나는 것과 같다"라며 구습을 짙게 만들었으니, 이 비전(秘傳. esoteric))의 진리를 강요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은 박해를 받거나 말거나 하여지간에 귀신이고 여호와고 어느 것이든 잘 믿는 전통이 있는 것. 나는 '멸절의 문명'(페이지 20)에서 이율곡에게 반항했다. "한번 죽은 나무는 토굴아니라 어디에서도 싹이 나지 않는다"라고.
노자는 보이지 않는 걸 보는 재능을 이(夷)라 하고 우주만물을 먹여 살리는 섭리를 어머니라 표현하고 자기 홀로 곤곤하게 이 어머니를 따르는 도(道)에 산다고 말했다.
맑크스는 종교는 마약이라 말했다.
금강경에 온갖 만상(萬象)이 한 이치, 한 생각이요 같이 보는 것(일합이상일체동관一合理想一體同觀)이라 말했다.
바울은 말했다. "너희가 모르는 신이라며 모셔 놓은 그 신이 바로 하느님이시요, 그 보이지 않는 발등상 위를 믿는 것이다."
【알렉산더의 질문:"영성. 영적인 삶?" "영?"】
낱말뜻; '영(靈)'이란 좋은 말이다.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 아니고 이 말이 나타난 서경을 보면 '신통한 것', 그리고 똑같은 이 책과 시경에서 '좋거나 착한 것(善)'이라 여겨지는 것, 사랑스러워 귀여움 받는 것♥(寵).ㅎㅎ 참말이다. 즉 영성이란 '착하게 사는 품성', 영적인 삶이란 '이쁨받게 인격을 도야하라'는 의미.
제갈량의 출사표에 영(靈)을 '혼백'이란 의미로 씌여졌다. 그럼 혼백은 뭐냐? '마카브레 죽음의 댄스(danse of Macabre) 에 나오는 작사냐?
아니다. 동양사상에서의 혼(魂)이란 신(神)을 따라서 왕래하는 것(영추).
신(神)이란 뭐냐? 혼이 홀로 영계에 존재하는 걸 신(神)이라 하며, 누구나 신(神)이 될 수 있고, 신(神)은 별개 아니고 제삿밥 얻어 먹는 귀신(鬼神)이란 뜻이요, 그 귀신을 추앙하여 영험을 보면 귀(鬼)자 빼고 신(神)이라 하고 영험없는 귀신을 잡귀라 한다. 신설동 동관왕묘에 묘셔 놓은, 임진왜란에 파병해준 명나라 신종(神宗) 임금과 꼽살이 낀 관운장 역시 그 귀신이고, 해와 달, 산천, 부뚜막신 조왕님 역시 잡신이다. 이 것을 주례(周禮) 만신사상이라 한다.
따라서 신(神)은 영의 생명력이고, 영계에 우글거리는 귀신, 정(精)은 육신의 생명력. 정(精)과 신(神)이 합치면 정신(精神). 그 합치는 결합력을 기(氣), 즉 살았을 때에만 정신이 있는 것. 죽으면 육신, 즉 정(精)과 신(神)이 헤어진다.
즉, 혼(魂)은 영육이 헤어진 '넉', 죽으면 흩어져 버린다. 신(神)의 생명력이라 한다. 백(魄)이란 정(精)과 어울려 출입하는 넋, 얼(영추).
이 개념이 서양의 신(God)이 들어 오면서 헤깔려졌다. 이집트의 태양신, 그리스ㆍ로마 제우스ㆍ주피터, ..들과 게기져 혼(dybbuk), 혼령(lemares), 영혼(presence soul)이라 번역되어 불교의 적멸적 허무(nonentuty) 관념을 휘젛어 우리 고유 미신, 서구 심리학 이론과 삭깔리게 했다.
유태인의 신은 처음부터 신이고, 인간과 인간신(god)하고는 달라, 인간은 애초부터 신이 될 수 없고, 그 잡신에 대하는 말로 God이라 하여 '유일신'이란 용어를 집어 넣었다.
이는 심증이 가는데 물증이 없는 우리나라 하느님, 하나님, 한울님, 한국적 얼(한국백魄), 중국의 천신, 천지신명, 옥황상제, 화기광(和其光), 동기진(同其塵), 하늘의 뜻과 다르다. 정체가 가물가물하고 허이불굴하고 별로 복주는 일도 없고, 해꽂이하는 일도 없서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한국의 귀재 이경숙(255~)의 말을 따른다.
이에 대해 성경을 기준한다면 본디 영혼불멸사상은 착시(illusion of immortality)라고 보는 지그문드 프로이드(1925) 견해에 나는 동감한다. 따라서 영혼숭배 제사의식 양상제계(mode)는 시각적 심상(visual image)이란 공자, 순자, 프로이드의 해석을 따른다. 그러나 God 존재에 대한 내 느낌은 프로이드와 다르다. 물증에서 말이다.
나는 읽었다.
그 노자가 말한 바 "도(道)는 진리를 보여주는 문(門)"이라 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걸 보고(夷), 나에게 들리지 않는 걸 듣고(希)), 내게 잡히지 않는 걸 손에 쥔 것(微)처럼 아는 그 분"을 경외한다." 석가여래 역시 지혜론 법구경(담마파다) 423장(章)에서 이 분을 '진정한 브라만'이라 부른다 말씀하셨다.(졸저 역설적 진리 페이지 44)
나는 요나의 기적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내게 성령의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간구하지 않으며, 신통력을 내게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사랑은 진리가 아니다. 나는 그 허깨비같은 사랑윤리를 진리라고 보지 않는다. 진리는 도(道)를 넘어 피안에 있는 경지다. 진리는 돈이 아니다. 역시 교리도 아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진리가 머무는 그 곳을 넘겨다 보고 싶어 진리를 찾고 있기에 말씀을 다 못마치신 "내가 길이요 진리요 나로 인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 '아무'에 내가 끼고 싶기 때문에 주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2010-12-21 06:59:19
60702012-04-13 (금) 07:54
고맙구만, 내가 조율하는 것까지 봤다니.
하면 그 누가 뭐랬지? 나를 칭찬하면 그건 내게 독이 된다고.
알아맞추면 100불 보내준다. 그럼 니 궁금한 내 주소가 들통날거지.
나 말없섰서. 이 형아가 에스터 목사님에게 주소를 아르켜 달란 적이 있지. 이 건 내 주소가 밝혀짐을 각오한 거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너와 나의 인연이 급박한 사연이 없기에 날 칭찬하면 내게 독이 되는 것이요, 사람은 거짓일망정 한없이 대려가야 돼. 명예가 꾸밈이기에 거짓이거들랑.
주거 주거 죽어 미찌는 건 명예야. 날 살리지마라. 죽지않으면 전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