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원은 가또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일본영토 확장론(정한론征韓論),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정명가도-조선정벌(1592.4.13), 중국 명나라 정벌, 인도침공을 포함한 웅심(雄心) 7개조. 74, 80
그 '게뇨사'는 1881년 도요마 미추르(두산만頭山滿.1855~1944)가 혈기방장하던 26살에 급진극우 사이고 다까모리(서향융성西鄕隆盛.1827~1877) 정한론을 바탕으로 한 침략정신을 본따서 결성한 조직.
도요마의 제자 우치다 리오헤이(내전량평內田良平.1873~1937)는 조선에 들어와 동학 민중봉기를 도왔다.
1894년 그들 열네명 떠돌이(낭인浪人. 로닌, ronin)들이 천우왜(天佑倭)를 조직.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자기를 붙잡으면 보물이 있는 곳을 아르쳐준다는 아이리쉬 전설상의 난쟁이 레프러칸(leprechaun)이란 의미랄지, 아니면 자기들은 하느님의 도움을 받는 키작은 '왜놈'이랄지.
그 떠돌이란 주인없는 '쌍칼잡이(사무라이)', 외국 유랑하는 무사, 부랑, 부랑자(浮浪者), 부표, 뜨네기, 길 옆에 서서 일당벌기 위해 일자리 구하려고 서있는 군상들, 실직자, 집시, 입학시험준비하는 재수생, ..
천우왜(天佑倭)...허 참! 더 알아보려고 이 3글자를 찍으면 컴퓨터가 방해를 받는다.
'하늘이 우리 왜놈을 돕는다'는 의미를 가진 이 떠돌이들이 폭발물로 무장하고 전라도 동학군에 가담한 후에 전봉준을 만나 다시 봉기할 것을 권유했으나 실패하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여 거적대기에 말린 명성황후에게 가연물 붓고 불지른다.
사실상 동학란은 혁명사상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처음 봉기 때에 발표한 12개 요구사항, 창의문(倡義文) 내용의 골자는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권력체제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1. 나라를 보호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보국안민(輔國安民)
2. 민원서류를 취급하는 서정(庶政)에 정부와 협력할 것.
3. 왜(倭.일본인)와 간통하는 자를 엄중히 징계할 것
역시 전봉준이 동학란 장본인이 아님. 그가 체포되어 심문받는 자리에서 "왜 당신은 반란군을 지휘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중이 봉기해 지휘를 부탁하기에 그들 말을 들었다. 수천명의 민중들이 나의 집을 둘러싸고 부탁했다. 나는 그들을 따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민중들은 그 때 왜 반일친중 운동을 일으켰을까?
아니다. 이 것은 낭후(浪後)의 파문(波紋)
파도는 진작부터 밀려오고 있섰으니, 당시 조선관리의 부패상은 전라도에만 있섰던 것이 아니고 가히 전국적이었으며,
이미 2년 전 1892년에 전라도 삼례(參禮)에서 동학 종교의 자유와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명예회복을 위한 대회에 수천명이 모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전라도 고부 탐관오리 군수가 하나의 타겟이 된 것 뿐.
동학란은 민중의 표호. 혁명적 반란군이 아니었음이 사실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근세사 기록이 내용과 연대를 바로 잡혀야 한다.
그 당시에 어용화 변형, 탈색, 탈락, 그리고 이어진 일본강점기에 누락시킨 것을 감안해도 이 민중봉기는 1894년 초, 1월 10일이 아니면 2월 19일, 또는 3월 21일이었고
전라도 고부에서 북진, 전주를 점령한 것이 그 해 4월 27일, 조선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청군이 도착한 때가 5월 5일이었고, 일본군 진입은 5월 6일로 기록돼 있기 때문에 헛갈린다는 뜻이다.
민중군과 관군이 휴전에 의해 전주에서 철수한 날이 5월 6일경이라고 추정하지만
청일전쟁, 일본군 경복궁 점령 등 큰 사건이 일어난 년대의 허술함 속에서도 전주 휴전의 의미는
사기저하, 화폐개혁 약속, 최시형이 지도하는 북접(北接)과의 대립 불화설이 아니라 전봉준의 철수선언은 일본의 군사점령 및 게뇨사 조직의 침투를 봉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서,
휴전정신이 일본 간섭에 어떤 합리화 기회를 제공치 않으려는 노정선 교수 논문이 온당하다고 여기는 바다.-Religion and just Revolution
제가 이 말을 인용하는 까닭은 도대체 일본인이란 한국인을 조상으로 삼는 황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한국을 깨무는 늑대기질이 있다는 걸 유념하자는 것.
그 걷잡을 수 없는 해적질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열도 중앙을 통일하면서 일종의 게엄령을 발포하여 해적금지령을 내렸지만, 그 해적출신을 기용하여 조선을 침공했고, 비굴하고 불의한 종자들이 깔려 있는 일본인이기에 스스로 '하늘이 돕는 왜놈(천우왜노天佑倭奴)'들이라 인정하는 것.
하늘이 도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일본 족속.
난도(亂道), 잡도(雜道)를 쓰는 극우파 게뇨사(현양사)
지난 번 그들의 원전폭발 때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 거금을 의연했지만 한 달도 안되어 그 은혜커녕 독도영유권주장을 들고 일어나 반한적이었고,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저주받아 일어난 지진이라며 희생되어야 마땅하다고 도끼로 우리 선조를 찍어 죽일 때, 중국 청나라에서는 거금을 의연하여 일본을 도와 줬지만 8년안에 중국을 집쩍거려 멸망시키는 배은망덕한 놈들이기에 중국현대사에서는 일본인이 자초하여 지은 천우왜 종자들이라고 기록된다.
'일본(日本)'이란 말은 이태백이 어느 착한 일본 스님에게 '일본스님'이라 말한데서 비롯. 이태백을 만난 일본 견당사(遣唐使) '아배중마려(阿倍仲痲呂)'. 201
'조형'이라고 불리우는 이 스님이 당나라에서 선종하자 출신국이 '일본'이란 국호를 넣어 '곡조경형시, 일본조경사제도'라 조문을 쓴 이후부터.
하지만 그야말로 흉노족같은 악질이 혼재해 있다고 본다.
한서(漢書. 여러가지 '한서'가 있지만)에 의리를 지키지 않는 흉노와 동이가 있다고 기록된 중에 이 일본녀석들처럼 흉노족이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고 적혀있으니.-호자천지교자야 119
정복해도 항복 안하고, 곡식을 공물로 바치면서 뒤로 돌아 발길질하고, 화해한 후에 안문(雁門)에서 중국 태수를 죽이는 흉노족처럼,
일본인은 원나라 쿠빌라이칸이 일본정벌에 실패하여 피차정벌론을 상쇄(1294)하자, 쾌재부르며 카미가제(신풍神風)의 덕이라지만 거의 매년 그 태풍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건 바로 제 놈들인데 이 어찌 하늘이 돕지 않고서야 일본이 일어날 수 있을소냐!
참 고이한 놈들.
부스러기; 졸저 멸절의 문명, 74, 80, 민상기 동학 민중봉기와 정한론, 요미우리 '일본사', 그리고 '사무라이' 책 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