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품성까지 좋은 사람은 드물겁니다.
능력과 품성도야는 오직 좋은 스승을 만나 교육으로 달성.
교육이란 언제든지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항우가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기상이 있음'은 능력이 있으나 공부를 하기 싫어해 그가 죽을 때 부인 앞에서 읊은 시가 처음이요 마지막인 그 '발산개세拔山蓋世'.
그는 사람 다루는 품성을 교육받기 싫어했기에 그가 내몰다 싶이한 '진평'이 급기야 꾸민 항우-모사 범증을 헤어지게 모략하는 이간계에 넘어가 스승 범증을 삭발관직하자 이 스승이 초야로 물러나면서 울화가 치밀어 등창이 도져 객사하게 만든 것은 항우의 품성이 모자라서 임.
그러므로
능력은 할 수 있는 힘.
품성은 남을 부릴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짐승을 조련하고 타인과의 화이부동.
그 능력과 품성면에서 현대까지, 오늘까지도 중국인이 중국 최고의 명장이라면 단연 한신을 꼽지요.
그 한신은 도살장에 가있섰기에 시중의 백정(도중소년屠中少年)으로부터 아래 위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은 사람.(그러기에 그가 백정들과 사귀었다고 깔보는 불량배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감).
그 진평이나 한신 역시 품성은 좋으나 능력이 없다고 악플 먹은 사람.
그러기에 아무리 기다려도 관직을 내려주지 않기에 내뺐다.
그러나 능력을 알아챈 소하가 잡아 끌고 왔다.
한신과 이순신은 능력과 품성이 천하일품.
한신만 하더라도 한고조가 "짐이 만약에 군사를 이끈다면 몇만 명이나 거느리는 장수가 될 것 같은가'란 질문을 받고는 '10만명은 거느리실 수 있겠습니다'라자 '그럼 한신은?'이라 묻자 '신(臣)은 많을수록 좋습니다'라고 대답.
즉, 수하에 군사 몇까지 통솔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많을 수록 좋다(다다익선多多益善)기에 '그러면 어째서 그대가 나의 포로가 되었섰나'라고 묻자 '그 까닭은 모사, 장수들과의 전략토의하는 왕에게 제 전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라다.
하지만 좋은 품성 엄중자비는 최고 통치자의 몫.
이순신 정군이 그러했기에 당했다.
간신간신히
죽음만은 면하고 백의종군.
그러므로 능력과 품성이 좋아도 너무나 인간적인 한신처럼 토사구팽당한다.
반드시 통수권자 측근 모사들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면 왕덕이 없는 것.
따라서 청와대에 입문하려는 재목은 가십이 없서야 한다.
결코 흉내내어서는 않되는 닭 우는 소리, 믿던 개가 음식을 훔치는 오리(汚吏)짓을 말아야 하고(계명구도鷄鳴狗盜),
피로하다는 이유로 내연의 매미, 터지는 머리골 싸움에 분위기 바꿔보려고 숨겨온 후첩이 심은 오이밭에서 신을 갈아 신지도 말고,
경제인이 과실송금해 온 배나무 아래에서 모자도 고쳐 쓰지도 말아야 할 것인즉(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梨下不整冠), ..
그러나 한신이 죽게된 이유는 능력과 품행이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통일천하하기 전의 친구요 적장을 몰래 감싸(監護)준 불찰이 원인, 즉 최고통수권자가 해야할 관용심을 눈치없이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가 월권행사한 까닭.
따라서 관용은 왕이 담당할 몫.
그러기에 윗분에게 여쭈어 보는 상주[稟意]가 빠진 매너로는 그 밑자리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법.
비록 틀려도 틀렸다고 지적하지도 않고, 너무 아는 체도 말아야 함이 승상 소하의 덕이요, 반드시 주공(主公)의 측근이 되어 옆에 붙어있을 것.
좌천된다면 이 한직(閑職)은 영원한 한직일 뿐이기 때문.
그러므로 황정승 희는 '이래도 옳다, 저래도 옳다. (세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너도 옳고 또 너도 옳고 또또 당신도 옳다'라며 예순 두살부터 죽으마케 관직을 내어 놓을 수 있던 영상(領相)의 보중처세(保重處世).
이로써 왕덕, 승상덕, 그리고 장군덕에 대한 능력과 품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