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임대통령의 노력 중에 과정을 중시했음이 공적사항으로 된게 아니겠습니까?업(業)으로 전승되지 못할만큼 퍼다 줬든 말았든 간에 그 한림원에서 뻔히 알 수 있게 기초과정을 거쳤기에 수상했다고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계간지 <역사誌>에서 싱가폴 이콴유(李光耀) 수상을 비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국가가 죽거나 말거나 개인 영달을 위한 그런 얄팍한 꾀는 있서도 우직한 면이 적고, 춤을 추어도 발 밑의 암반을 찾으려고 손톱이 달아지게 땅을 팔 생각은 적고, 빨리하려는 성미는 있서도 기능공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금방 감동을 주는 신파조는 있서도 남 몰래 흐르는 고통의 눈물이 없나 보다.
그 까닭은 기본이 안된 이론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벨상 수상 목표가 눈에 선하여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노력과 자신을 속이는 황우석같은 음모가 보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누구는 핵융합-분열을 시험관에서 화학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기에 물리학자들이 의심을 하고 같이 실험해보자고 했을 때 그 제의를 거절했고, 다른 누구는 인체 세포시료(試料)를 사용했음에도 대체물질을 사용한 것처럼 보고했다가 거짓이 들통난 적도 있음.
러시아 화학자 그 멘델레프(미엔디랴예프Mendelev, Dmitri Ivanovich 1868-'70)는 원소질량을 정리하면서 질량순서로 배열했더니 19번만에 물리적 성질이 비슷하게 순환함을 알고 원소주기율가설을 발표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 자리 빈칸을 남겨둔 것이 그의 공적을 손상하지 않았음.
공상과학소설같은 가설 중에, 찰스 다윈은 진화론에서 공격받을 만한 자리를 빈칸으로 두었음.
비록 동물학자 베릴(Berrill, N. J. 1955)이 척추동물의 기원<The Origin of Vertebrates p.10)에서 다윈의 이론을 비난하지만, 다윈은 계통적 진화, 돌연변이를 증거삼으면서도 거대한 간격을 가상적인 생물로 메꾸지 않았기에 조작없는 그를 심하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황우석은 빈고리로 두지 않고 그 자리를 실험한 것같이 보고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것.
이 것을 정의스러운 사실주의가 아닌, 마키아벨리즘의 일면이라고도 하겠습니다만.
기초를 닦은 과정이 중요할 겁니다.
자신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수 많은 다른 이의 논문을 만리장성으로 첨부한 공시성 창의력이 보여야 할 겁니다.
그럼 '네까지께 뭘 안다고 떠드느냐'고 물으시겠지만 '말 못해 죽은 귀신이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귀신도 이와 같은 데 산 사람이 왜 말을 못하겠습니까?
학문은 정치와 확연히 다르기에 '내 편으로 하지 않으면 재생불능의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여버릴 수' 없겠습니다.
정치 철학서인 서백-주공단-공자 10익(翼)의 <주역>, 윤희(尹喜)가 전해준 5248자의 정치철학서 노자 <도덕경>,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오긍(吳兢)이 편집한 당태종의 <정관정요(貞觀政要)>, 세종의 <용비어천가>는 서민의 등용문 코스이거나 점술책이 아닐 겁니다.
제 1계 하늘(天)의 오묘한 섭리, 끝내지 못하고 죽는다는 제 64계 미제(未濟)커녕 고종명도 못하면서, 마키아벨리즘으로 죽여버려야 할 상대도 없으니 왕실에 쓰이던 그 책들을 그냥 Q소설로 읽으면 적절.
주역 64괘(卦)는 괘가 아니라, 음미하면 계(計), 계책, 술책.
이 들은 반론 제기차 정보검색, 동의어, 새로운 개념을 정밀하게 말로 표현하고 싶을 때에 찾아보는 지식의 보고(寶庫 thesaurus).
과학계에서 기초분야인 통계, 미방을 포함한 선배가 남긴 수학, 시약(試藥), 실험기구 미비인 현상황에서는 커피나 마시면서, 지식의 보고에서 용어를 찾으며, 책상 위에서 할 수 있는 분야는 실험비용 안 드는 이론을 정립하거나 함수 방정식, 예술 작품을 써 나가는 것이 노벨상을 받는데 안성맞춤 관문일 겁니다.
여기 알고리즘에 알레고리 용비어천가의 해동육룡(海東六龍)의 하향식 포플리즘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행운이겠습니다.
하지만 성사(成事)는 행운이 1%, 노력이 99%.
이는 다 아시는 토마스 에디슨의 말입니다만, 이 금언은 '시행착오하면서 연구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무엇을 모를 때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걸 아르쳐주지 못하는 교수들을 축출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철학이 포함된 문학분야로 음악계에서 노벨음악상을 받은 작곡가는 없겠고, 한국에는 남이 지은 것 보고 지휘하는 이는 많아도 안 보고 지휘하는 교수는 드물고, 콘서트, 심포니 오키스트러 악보를 작곡하지도 못하면서 별도로 교수에게 많은 돈 내고 사사하지 않으면 그 허세의 음대입학이 어려운 이유는 뭡니까?
자신이 능력이 없서 작곡법을 가르쳐줄 수 없다면 그 자리를 물러나야 할 겁니다.
음대입학지원자를 교수하고 돈 버는 데에 신경을 퍼부어서가 아니라, 고독한 음악철학 시간을 보유해야 할 겁니다. 철학자는 원래 가난.
파블로 피카소는 삐딱한 스팔타 포지숀 <아비뇽의 (괴물들) 젊은 여인>만을 묘사한 게 아님.
미술대학 역시, 미술학도는 피카소처럼 도자기窯,. 사실주의 그림을 그릴 줄 알면서 추상화, 인상파 그림을 그려야 할 겁니다.
그리고 시인 중에, 셀리는 50번이고 며칠 몇 날 밤을 세워 고치고 고쳐 발표했는데 한국의 작가는 타고난 탈란트도 적으면서 한 구절의 시상(詩想)의 적재적소, 일자일어(一字一語)로 표현 영감을 얻기 위하여 뜬 눈으로 밤을 새우십니까?
그나마 번역청이 없는 한국에 어떻게 기존 문학작품이 이미 영어로 번역이 되어있겠습니까?
번역사 자격시험은 치루며 한국번역가협회만 있을 뿐 문화관광부는 장 피알(Jean-Pierre)의 말을 빌리자면 '천박한 졸부근성', 즉각 나타나는 알량한 관광수입에 정신을 쓰면서 문화육성을 안 하고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모험도 안 하고 어떻게 봉(鳳)이 있는 곳을 상상할 수 있겠으며, 털도 안 뽑고 닭을 잡아먹을 것이며,
종교계는 깊은 명상/기도도 안 하고 세계적인 종정/추기경을 바란답니까?
자세히 보면 전자공학. 조선업, 건축업 이외에는 노벨상에는 형편무인지경일 겁니다.
이 분야 역시 이론이 없으면 땡 잡은 돈오(頓悟) 인스피레이션(영감), 테크니션(기능공), 달인의 영광일 뿐이겠습니다.
김대중 전임대통령 방법론, 그의 공적쌓기 방법론을 참고로 노벨상을 수상할 겁니다.
그 노벨상 수상이 불공정하다고 한림원을 들먹이며 이의 제기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오바마는 그 당시 한 일도 없는데 앞으로 잘 평화해보라고 평화상도 받았음을 견주어 볼 때에 그는 한심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