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가
왔다고 하면서 집사람이 그걸 내게 내밀었다.
요새도
전보라는 것을 사용하는가 하고 열어보니, 황
대리가 내게 보낸 전통이었다.
내
평생에 전보라는 것을 받아보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회사에
나와서 해결하자. 황
대리"
나는
지난 3 일
동안 회사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빈들거리고 있었던
차다. 집사람과
어머니가 매우 걱정스러워
했지만 무시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무슨 병가를 얻어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왜 출근하지 않고 있는지
회사에서 물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무작정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바였다.
선경산업의
수출1과에
채용된지 몇달 않된 때였다.
높은
사람들을 등에 지고 나를 맨 앞자리에 앉혔다. 그것도
회사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통로였었다.
매일
뭇 잡상인들과 외래인이 내 앞에서 어른거리며 안내를
요구했다. 결국
나는 이중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
오른쪽으로 해외 수출 업무의 1.
2. 3과의
부서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고,
소위
"떡고물"이
많이 떨어질수록 안으로 들어간다는 수입과와 무역
통관 부서들이 높은 사람 쪽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이
"떡고물"얘기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너편에는
경리과가 왼쪽 회장실 바로 옆에 앉고,
그
오른쪽으로 국내영업 부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국내, 국외의
한 가운데로 통로가 지나갔다.
회사
문을 드나드는 남녀 상하 전 회사원들이 내가 무었을
하고 있는지 곁눈질하며 다녔다.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생산 제품인 견직물을 수출하는
업무는 "떡고물"
떨어지는
순서로 볼때 가장 인기없는(?)
부서였다.
그것이
수출1과
였다. "떡고물"
흘리는
외국인을 본 적이 있오?
내가
영어를 잘 한다 해서 이 자리에 나를 앉으라 했다.
한데
문제는, 이들이
나를 중견사원이라고 뽑아놓고는 초년생의 말석에다
앉혔다는 데에 내 불만의 근원이 있었다.
아니!
내가
누군가...,이번
중견사원공개경쟁채용시험에서
1 등으로
뽑힌 사람이었다. 다른
신입사원들이 일주일의 공장 견습을 거친데 비해서,
나를
40일 동안
회사 전체의 공장들을 여기저기 두루 살피는 현장 실습을 시키지
않았던가?
사실대로
말하면, 공장들을
보고 다녔을때 나를 붙잡고 가르친 사람은 첫날 한시간, 한명 뿐이었다. 그
남어지는 무위도식 허송세월이었다.
그것을
실습이라고 끝장에 가서,
보고서를
최종현 부사장에게 올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행히 공장에 다니면서 벽에 써붙여논 설명서,
주의사항, 각종 통계표를
노트해 놓고 있었는데, 이것을
정리해서 받쳤다. 나중에
들으니, 최
부사장께서 이 보고서를 읽고 매우 만족해 하셨다고
했다.
마침내 본사로 돌아오니 동기생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쌩쌩하게 잘
나가고 있었다. 최종현이라고
회장의 동생되는 분이 미국 쉬카고 대학에서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최근에 안 사실은 실상 1964년이었더군. 내가 이번
공개경쟁채용시험에 응시하던 해가 1968년이었으니 4년 전 부터 부사장으로 일했던 모양이다. 공채를 시도한 것도 그 분의 생각이었고,
또
1 년후에
나를 해외지사로 내보내겠다는 말을 전체 신입사원들
앞에서 이미 선언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수출을 위한 해외지점이란 것이 한 군데도 없었다만..., 그런데
이게 뭐냔 말이다.
이런
것... 다
좋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견습에서 돌아온지 얼마 않된 어느날 갑자기,
내
뒷자리에 대학 2년 선배 한분이 대리로
내려와 앉는 것이 아닌가? 황대리라고... 나는 전국경제인협회를 사퇴하고 그동안 또 다른 두개의 회사를 전전하다가
중견사원 모집이란 신문광고를 보게됨으로 해서 결국 그곳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대리란 중견사원 자리에 느닷없이 그를 내 뒤에 앉혀... 그럼 나는 뭐가 되는데...?
그것도
좋다. 내
옆에 수출3과에는
권 아무개가 과장으로 앉아 있으면서 그동안 인사 한번
하는 적이 없이
내 앞을 지나 다녔다. 그는
경복고를 나온 내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내가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닐때 그는 처음부터 그곳에 계속 머물러 앉아왔던 모양이었다. 내가
지원서를 내려고 거기 대연각 삘딩 13층 복도에서 어정거렸을때 그와 마주쳤다. 그가 "아니, 이게 왼일이냐"고
묻길래 입사시험에 응하려 왔다고 대답했었다.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여기서 "빅샽"인데
챙피하게 시험볼 필요가 없이 자기에게 부탁하라 했다.
내
말이 "고맙다
마는, 되면
되고 않돼도 좋다는..." 뜻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입사한 이후로는 나를 모르는 척 해오고
있었다.
어느날
근무 중에 모처럼 내 동창 과장님이 나를 부르길래 그 쪽으로 갔었다.
자기 옆에 앉으라 했다.
시키는
대로 안락의자인지 뭔지 낮은 의자에 앉았다. 한데
가타 부타 말이 없었다. 거기 낮은 의자에서 올려다 봐야하는 나를 잊어버렸다는 듯이...,
그저
저할 일만 하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그 맨앞의 문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OK... All Right! 나는
다른 회사에서 타자기에 백지를 끼어넣고 영문편지를
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전체 무역부서...,
수입, 수출과를 통털어 타이프 라이타가 3
대
뿐이었다. 그것도
전부 수출입 통관서류 작성하는데 쓰이고,
우리
무역부서는 영문 편지를 연필로 끄적거리는 필사로 써 뒤로 올리는 그런 식이었다.
그 곳에
계장. 과장. 부장의
도장들이 찍히면 마지막에 무역상무의 서류함에
여사원이 갔다놓는다. 다음은
상무의 도장이 결제로써 찍히면 얼마 후에 여사원이 타이프 사정에
따라 편지를 타이프쳐서는 다시 거꾸로 내 앞으로
내려오는데... 몇 일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가
쓴 이 영문편지에는 전 과정을 거쳐서 무슨 내용이든지 누구고 보태고 빼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계속 오르고 내렸다. 말하자면 도장기계들의 '컨베어시스템'이랄까, 뭐 그런 결제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회사든 관공서가 다 그런 식으로 조직되어 있었으니 뭐 이상할 것은 없다고 하겠다만. 영어를 한다는 사람이 아래에서 윗자리까지 별로 없었던게 문제라면 문제가 됐겠지. 그런 친구들이 수출부에 버티고 앉았으니 뭐가 됐었겠는가? 웃기는 얘기지.
그런데
황 대리가 내 뒤에 앉으면서 편지마다 '빠꾸'
를
놓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써라 ,저건 어쨋다 하며 일일이
지적을 해대는데...그
잔소리가 무역거래의 상담에 있을 수 있는 내용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가 글쓰는 형식상의 문제였다.
쉽게
말해서, 나는
"I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letter of 아무 날 아무 달..."로
쓰기를 좋아 했는데, 그 사람은
"It
is to acknowledge
the receipt of your letter dated..."로 써야한다는 거다.
우리
대학의 상업 영어 교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자기대로
모든 문장을 새로 작성해서 올리라고 명령(?)을 하달하는 거라. 처음 몇번은 그 하자는 대로 했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못마땅했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자기가 대리란 상좌에 앉았다고 그러는데.
문장에는
쓰는 사람의 개성이 들어간다.
선호하는
대로 자기의 글을 쓴다. 그가
고집하는 문장 양식은영문편지의 '구닥다리의 고물' 에
해당한다. 나는
일본 무역회사에서 오래 일한 어느 일본교포한테서
현대의 실무 영작법을 어깨 넘어로 배운 바가 있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편지쓰기를 새로이 연구했었다.
숨통
막히는 이런 자질구레한 세분말절에 몰두하는 이런
무리들과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두개의 회사를---하나는
10 일,
또하나는
10 개월
만에 그만 집어 치웠었던 바였다.
그런 후... 석달을 부모밑에 처자식까지 맡겨놓고 죽치고 놀고 먹다가,
이제
마지 못해서 다시 세상에 나오게된 현실이 이러했다. 나는
이런 회사 생활에는 분통이 터졌을뿐만 아니라,
분노의
불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수출과 옆에 있는 상담실에서 황 대리와 마주섰다.
자기
전보를 받았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래서 여기
와 있지 않은가?...하고 심통사납게 응대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자기 입장이 난쳐해지니까 회사에 나와
달라는 것이다. 내가
황대리를 위하여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그의 논조는 "편지쓰는
문제는 '터취'
하지
않겠다든가 하는..., 뭐
그런 쪼가 아니었다. 무조건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한말로
말해서, 기어들어와
달라...이거였다.
내가
마치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제 하인이 돼달라, 이건데, 세상 나쌀을 좀 더 먹었다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후배를 설득한다고 그것이 먹혀 들어가겠는가?
그는 느닷없이 종이 한장을 안주머니에서 꺼내들고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나의 사직서요! 당신이
이렇게 정 뻣댈 작정이면 나는
사직하겠오!...". 이것은
뜻밖의 협박이었다. 내가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어리뻥뻥한 중에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자기가
이런 사직서를 내보이면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물러설
줄 안 모양인가?'...... '회사를
그만 두고 말고는 자기 사정이 아닌가? 정 그럴 작정이면 조용히 떠나면 될 일을...,
이건
누구를 걸고 넘어지겠다고? 공갈을 쳐서 나를 굴복시켜보겠다는 수작 같은데...,? 마침내
내가 말했다.
"그런
사직서는 100 통인들 누가 못쓰겠오!
요는
그것을 정말 내느냐,
안내느냐...그게
문제가 아니겠읍니까!" 황대리님!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 방을 나와 버렸다.
그
다음날 그는 정말 사직서를 내고는 회사를 그만 두었더군.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자기를 위하여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가? 영어가 짧어서 곤란하면 나를 잘 구술러서 한번 잘 부려먹어 보던가, 아니면 진짜 현대식 영어가 뭔지를 새로이 공부하던가... 해야 했지 않았을까 하는 거지요. 하여간에 세상은 내 맘대로 돌아가지를 않터란 얘깁네다.
禪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