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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진실, 그리고 듣고 싶은 한 마디
글쓴이 : dkp 날짜 : 2014-08-01 (금) 03:40 조회 : 1292
진실, 그리고 듣고 싶은 한 마디
김 정 남 (언론인)

  국정원의 증거조작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그보다 더한 반인륜적인 유서조작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1991년 5월 8일, 당시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이던 전민련의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한 후 건물 아래로 몸을 던져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망현장에서는 노태우정권을 비난하는 그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그 유서가 본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동료간부인 강기훈이 김기설의 자살을 부추길 목적으로 써준 것이라 하여 강기훈을 자살방조혐의로 구속,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의 자살을 만류하기는커녕 유서를 대신 써주어 자살을 유도하였다는 검찰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내세우는 증거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 실장이던 김형영이 김기설의 유서와 강기훈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판정한 것이 전부였다. 그 김형영은 이 사건 감정 후, 다른 사건에서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한 행위로 구속되었다.

  강기훈은 1, 2심을 거쳐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형을 확정선고받아 복역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유도했다는 검찰의 놀라운 상상력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감정을 의뢰, 유서작성자는 분신한 김기설이라는 최종감정결과를 통보 받아,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강기훈은 이 권고에 따라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9월, 재심개시를 결정했으나 검찰은 이 결정에 불복, 대법원에 항고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은 3년만인 2012년 10월, 재심개시를 확정했다.

  대법원에 재심개시 여부가 지루하게 계류 중일 때 나는 강기훈이 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재심을 해보지도 못한 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무척이나 조마조마했었다. 그 무렵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도 서둘러 이 사건에 대한 그의 구술을 녹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012년 12월 20일에 서울고등법원에서 개시된 재심은 마침내 지난 2월 13일, 강기훈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실로 23년만의 일이었다.

  2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던 날, 강기훈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판부가 유감표시조차 하지 않는구나 하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다”면서 “재심결과와 관계없이 (검찰의)사과 한 마디가 나에게는 가치있고 소중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은 그의 표정이 담담했고 그의 말은 매우 온건했던 것으로 썼지만, 나는 그의 말에는 23년 동안 응어리진 한(恨)과 원망을 뛰어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검찰과 법원으로부터 단 한 마디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바램이 아니더라도 그 말은 검찰과 법원이 반드시 먼저 했어야 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로 그들을 용서해주고, 자신도 23년 내내 악몽과도 같았던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진실 만세! 대한민국 만세!는 언제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잘못했다”는 사과는커녕 그 흔한 ‘유감표명’마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오히려 강기훈에 대한 무죄판결에 불복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무죄판결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망각의 늪에 빠져들고, 강기훈의 고통은 그만큼 더 연장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반짝 드러났던 진실은 다시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지만,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유고가 발생한다면 저절로 공소기각이 되기 때문에 (재심청구 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그것을 노린 검찰의 계산된 시간 끌기라는 얘기도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드레퓌스 사건에서는 드레퓌스가 작성하여 적국에 넘겼다는 문제의 기밀명세서는 그의 필적이 아닌 것으로 최종 판명되어 그는 기소된 지 1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 드레퓌스는 그의 부대로 복귀한다. 그 장면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질랭 준장이 도열한 병사들 앞을 지나와 그의 칼을 빼어 들었다. ‘공화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본관은 그대 드레퓌스에게 레종 드뇌르 훈장을 수여한다.’ 장군은 이렇게 선언하고 칼로 드레퓌스의 어깨를 세 번 두드렸다. 식의 종료를 알리는 트럼펫이 세 번 울렸다. 만장의 프랑스인들은 외쳤다. 프랑스 만세! 진실 만세! 그리고 드레퓌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이석태 변호사의 최후변론 요지서에서)

  우리도 이 사건을 놓고 대한민국 만세! 진실 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강기훈의 눈에서 그런 눈물을 보고 싶다. 아아, 그러나 유서조작, 증거조작의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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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진실, 그리고 듣고 싶은 한 마디


하민의 서러움이 국민의 것인가 개인의 것인가,
민중의 희생인가 개발도상의 부패인가?

권세 있고 재산이 많으면 덮어 가히 개인을 호락호락 소홀히 할 것인가.-權位富貴, 蓋可以忽乎哉 
이 것이야 말로 가히 전국책(戰國策)

선의의 경쟁에서 간신히 이긴 자의 정치에 상대적인 두 가지가 있다면, .. 
난행도(難行道)ㆍ이행도(易行道)와 빠짐없는 무루도(無漏道)ㆍ유루도(有漏道).

남을 꾀어 부추겨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했으면 그로 인해 얽매인 굴레를 벗겨주는 한국형 드레퓌스의 트럼펫이 불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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