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63건, 최근 0 건
   
Re: 유학(儒學)과 천명(天命) - 천명, 과학과 민주주의.
글쓴이 : dkp 날짜 : 2014-08-01 (금) 03:57 조회 : 1571
유학(儒學)과 천명(天命)
이 광 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며 민주의 시대이다. 과학은 대상적 진리를 주로 추구하고 민주는 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시한다. 과학과 민주는 서구문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지만 이것이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유는 주체의 중심적 의미를 과소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민주는 공동체적 삶에서 각자의 의무를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 법칙 자체보다 주체적 실천적 도(道)를 중시한 유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주체인 마음을 더 중시하고 자신의 권리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본성이 요구하는 의무로서의 도리를 중시하였다. 유학이 마음을 중시하고 도리를 중시하는 근저(根柢)에는 유학의 인간 본성론인 천명관(天命觀)이 놓여 있다.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유학은 배움의 기쁨을 중시하고 배움을 함께 하는 벗과의 만남을 즐거워한다.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을 쌓아가며 마음에 모자람이 없는 군자에게는 남이 알아주고 몰라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학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중시하지만, 유학은 그러한 관계적 삶을 통하여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한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과학은 대상적 물질적인 자연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인간의 소유를 확장하고 지배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한다.

  유학은 인간의 마음과 마음에 내재한 인간의 본성을 실현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세계를 무한한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로 넓히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는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설명된다. 자연에 대한 대상적 물질적 인식의 결과 과학은 인간의 주체인 마음과 자연의 주재자인 하늘을 부정한다. 과학이 마음과 하늘을 부정하니, 마음과 하늘은 학문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현대인은 20년 가까이 제도적 교육을 받게 되는데 제도권 교육에서 마음과 하늘이 제외된다는 것은 현대인의 삶에서 마음과 하늘이 배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학은 인간의 마음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하여 인간의 마음에 주어진 천명인 본성을 학문과 삶의 축으로 삼는다. 그래서 『논어』를 편집한 공자의 학인들은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는 공자의 말로 책을 끝맺고 있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되지 못한다. 예를 알지 못하면 사람이 서지 못한다. 말을 모르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군자는 천명을 두려워한다

  「태극도」와 「태극도설」을 지어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주돈이(周敦頤, 호는 濂溪)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인은 하늘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고, 학자는 현인을 희망한다.” (聖希天, 賢希聖, 士希賢)

  유학과 동아시아 철학에서 자연은 인간의 단순한 연구와 지배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은 진리를 실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서 삶과 학문을 통하여 이해하고 닮기를 희구하는 영원한 지향처이다. 그러한 전체 자연의 주재인 하늘이 유학에서는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논어』에서 공자에게는 하늘과 대화의 통로가 열려 서로 마주하여 항상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들과 삶과 학문을 함께하는 제자들은 자신을 몰라주지만, 하늘은 오히려 자신을 안다고 말한다.

  “공자가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자가 없구나.’ 자공이 말했다. ‘왜 아무도 선생님을 모릅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탓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을 통하여 학문을 이루어 위로 진리에 도달하니 나를 아는 자는 아마도 하늘이로다.’”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공자는 이 밖에도 “하늘에 죄를 얻으면 기도할 곳도 없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늘과 공자는 서로 이해하는 사이로 나온다. 그러나 “50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니 천명을 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원성과 궁극성과 절대성을 상징하는 하늘이 공자의 삶과 멀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상적 가치실현을 지향하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의 첫째는 천명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두려워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인을 함부로 대하고 성인의 말을 모멸한다.”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대인은 천명을 실현한 삶이며 성인의 말 역시 천명에 바탕한 말이니 유학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항상 자신과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과 하늘,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낯선 말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학문인 유학이 마음을 시작으로 삼고 천명을 축과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경전 가운데서 지금도 확인된다. 나는 유학을 통하여 삶과 자연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서구문화의 꽃인 과학과 민주가 인류 문화의 최상의 가치가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과 하늘을 수용한 미래 인류사회의 이상적인 학문과 사회사상은 어떠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Re: 유학(儒學)과 천명(天命) - 천명, 과학과 민주주의.


서구문화 꽃; 과학과 민주가 인류문화의 최상의 가치가 되기는 갈 길이 먼 것 같지요.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아는 것이 좋은 삶을 사는데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신에 대해 전혀 모르므로 이 문제에는 논쟁을 피하고, 그 지방의 법에 따르는 신앙으로 알고 있으라」면서 인간의 윤리적 문제에 철학적 관심을 집중했었고 민주주의는 우민[衆愚]정치라고 말했다지만 이는 어정쩡한 포플리즘으로 당선된 꿈같은 민주주의 집권자를 한탄하는 말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일성대갈:「민주주의는 아주 훌륭한 이념은 아니지만 인간사회에 존재했던 다른 정치체제보다도 더 훌륭한 정치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라는 웅변.
이렇게 민주주의에 자긍심을 갖는 영국은 기독교인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며 무기를 동원하였고 아편도 팔아 먹고, 로마제국보다 넓게 세계를 배타적 접근으로 정복함으로써 부요해졌던 나라가 아닙니까?

이 영국에게 정복당한 나라가 영국을 (진정한 또는 얼추) 민주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영국의 철학자ㆍ수학자ㆍ노벨문학상 수상자 버트란드 럿셀은 왜 그의 저서에서 '곡식과 민주주의가 있다면 사람은 먼저 곡식자루에 손이 갈꺼'라고 말했나요?

그리고 이 말은 이미 공자가 "먹을 것과 군사가 족하면 사람들이 정치를 믿는다"고 지적한 걸 보아도 그 먹을꺼리 걱정은 민주주의 독점과업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잡는 의미'라고 공자가 말한 2천년 훨씬 뒤인 지금도 이 금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자유와 갈등은 경제안정의 뒷전으로 밀리고, 자유와 권리의 갈등은 국가안보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볼 때에,부정부패에 찌들은 자본민주주의가 인간의 본질인 윤리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민주제도가 왕정보다 절대적으로 나은 바가 없서 개척해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도 구만리 같이 보입니다.

까닭은 공익을 위한 청렴위주의 윤리를 빼먹은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횡포를 골고루 써먹는 민주주의는 통치자들에게 유리할 뿐 민초들에게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작가 버나드 쇼가 '물이 스며드는 참소와 피부를 자극하는 하소연이 명철을 가로막아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고 지적한 공자 말씀을 읽었는지 몰라도  '민주이념이란 싸구려 정부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요즈음 정치부재를 보면 누군가 술에 취해 구름을 타고 흘러가듯, 나비가 되는 꿈인지 나비가 사람이라는 끔을 꾸는지 흐리벙벙하면서 

다산 석학의 말씀에 천명이 허락하지 않아 개혁론이 국왕에게 전달될 기회가 없서 불 속에 던져 태워버릴 꼴과 땔나무(芻蕘)감이지만 그 나름대로 심혈을 기우려 나라크기 나름대로 방례초본(邦禮艸本)을 만들어서 「경세유표」라 이름하고, 금년부터 몸을 닦고 실천하며 하늘이 주신 밝은 명(命)을 살펴서 여생을 마칠 때까지 몸을 재계하는 나실인(nazil)임을 선언하심에 감명받으며

논어 12편 안연편 20장을 읽어보았습니다.

「통달한 선비는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살피고 기색을 잘 관찰하여 신중하게 사람을 대하는데 이러면 나라에 있서서도 반드시 통달하게 되고 집에 있서도 통달하는 바, 명성이 있는 자는 겉으로 인(仁)을 취하며행동은 어긋나면서도 의심하지 않고 겉으로 태연함을 가장하는 바 그렇게 하면 나라와 집에서 명성을 듣게 된다」고.


----

천명이란 말은 혁명가, 독재자의 살생부인가요? 
누구를 두고 빗대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에게 묻는 겁니다.

하늘이 모든 백성을 낳고 사물이 있은 즉 그 안에 원리가 있으며(大雅 蕩, 烝民), 하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기에(大雅, 文王) 인간이 알아보기 어렵지만 국가의 운명을 주관한다고. 이 게 무슨 소립니까요?

그러므로 신(神) 중의 신, 왕중왕이 그 하느님이시라면 신을 떠나 하느님을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대자연 창공(蒼空)을 경외하는 기층(旣層) 종교인 그 천공(天空)사상. 이 게 천명사상이란 겁니까?

천(天)개념이 공자의 열권의 주역해설서 십익(十翼)을 통하여 전통적 최고신으로 승화됩니다.  
그러면 천황, 천자(天子)는 그 하늘神, 창조주, 주재자인 상제(上帝)의 중보자임을 자처한 유교의 통치이념입니까?

그렇다면 천명사상은 인간이 섭리로 태어나고 죽은 후에 영ㆍ육이 헤어져 혼(魂 넉)이 하늘로 돌아간다는 운명론이요 그렇게 해준다는 하늘의 신성(神性)을 믿고 경외하는 상징적 표현을 통치이론에 접붙인 것입니까? 

그 경천(敬天)사상을 조상이 경험한 흔적을 통해서 듣게 됬든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지혜든 간에 다산(茶山)은 인간이라면 끈임없는 자기 반성과 현재로부터의 탈출을 요구하여 어쩌면 니체가 말한 "해야 한다. 고로 할 수 있다"는 슈퍼맨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다산은 그 어엿튼간에 영명(靈明)으로 책임질 줄 아는 인격과 사회를 소망했다는군요.

하지만 사실상 그 힘든 의지전환 이전에 까뮤는 인간은 아무 목적이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영원히 산다는 유일신 사상 교리속성을 위해 믿음을 목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요?

다른 쪽에서는 우주적 질서와 규범의 실제원리로서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의지자(意志者)로서 특정하게 길흉화복을 준다고 말했다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가, 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왕권을 부여하고 통치자로서 상벌의 규범을 준수시키는 소명(昭命)을 준다고 말했다가, 이런 왕권신수설도 아니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헛갈리게 말합니다. 

그러면 신(神)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구약에서 '믿으면 다 신(神)이 된다'고 했고요,  
전교하는 바울이 리카오니아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해주자 사람들이 그를 보며 "신(神)이 사람처럼 되어 우리에게 내려온 '헤르메스'[머큐리]다"란 칭찬을 들었으니 그에 대한 감탄사가 신(神)이었고 그 아테네에 세워진 신상(神像) 마지막에 세워진 '알려지지 않은 그 신(神)'에 대해 아르쳐 주겠다며 설교합니다. ─사도 14:11, 17:23 

그렇다면 신지학(神知學)에서의 신(神)은 리그베다 창조송(頌 1권 CLXIV)에서 말하는 지혜자의 산물인가요?
신관(神觀)이 없다면 유대인 최고신 야훼에서부터 아프리카 올로룬(Olorun)신, 딘카족(Dinka) 느히알릭(Nhialic)신도 없을께 아닌가요?

그 혜강(惠岡) 최한기선생의 신기통(神氣通) 운화(運化)철학에 의하면 '파악하기 어려우면 신(神)'이라고 정의했고
전통적으로는 선조(先祖)의 혼(魂)이 영계에 오락가락하는 것을 신(神)이라 부르고
그 것에 복을 빌어서 효험이 돌아오면 신(神)이 되고, 능력이 없으면 귀신ㆍ잡귀라 부르는군요.

그러나 프로이드(1925)는 사람이 죽어도 혼이 남는다는 영혼불멸사상은 착시(illusion of immortality)라는군요.

그  우리가 다른 사람의 혼에 빌어서 효험이 있으면 신(神), 걸끄러우면 귀신 잡귀가 된다는 귀신론에 대하여 중용에서 말하는 바 귀신이 있는 것 처럼 여기며(여여如如) 제의(祭儀), 굿거리 제차(祭次)를 지내지만 그 죽은이에 대한 제사는 살아 남아있는 이들의 서로 만나는 친교에 의미가 있다고 순황[순자]이 말했다는군요.

그럼에도 논사(論師) 율곡 이이는 "귀신은 있다. 토굴(土窟. 온실)에 놓여진 나무에 움이 트듯 제사를 잘 모시면 귀신이 찾아와 향음(饗飮)한다"고 답해줍니다.

이 말은 귀신이 없는 데가 없다, 무소부재(無所不在. ubiquitas).─헤아릴 수 없이 신의 무량(無量)한 내재성(內在性)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를 시험하는 질문에 대하여 본의 아니게 시의에 맞추어 거짓말을 해준 것으로 여겨집니다.

까닭은 율곡 선생은 9번 과거시험에 매번 명석하게 9번 장원한 분이시기에 중용 성론(聖論)과 순황의 친교설을 읽지 않을리가 없으나 어쩌면, ..
서인 지도자로써 예론(禮論)에 휘말리는 지도자로 참소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줄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상 한번 죽은 나무는 아무리 토굴에 넣어 두어도 겨울에 온실효과로 싹이 틀 수 없는 것을 모르실리 리 없지요. 

율곡 선생은 제사를 폐하고 군주를 훼방하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문난적(斯文亂賊)을 상대하여 척사윤음(斥邪輪音),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을 능히 쓸 수 있는 분으로서 귀신에 대해 몸을 사리셨을 겁니다.

선생의 가르침 중에서 「학문에 마음과 뜻이 있으면 지혜롭고 어질게 되는 바 마음의 빈 영혼이 타고난 성품(性稟)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차즉심지허령此則心之虛靈불구어품수不拘於稟受)」이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겠지요.

공자님 역시 제자들에게 발상전환을 기대하여 이미 기록된 바
논어 선진편에서 마음을 비워 스승이 말을 하면 꼭 고개를 끄덕이는 안회(顔回)는 학문이 도에 가까웠으나 쌀 뒤주가 비었지만, .성품을 키우는 데는 학문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데, ..

전손사(顓孫師)는 성품이 지나치고, 복상(卜商)은 모자라고, 자공(子貢)은 학문이 안회보다 못하지만은 억측이 잘 적중하여 재물을 불렸고, 고시(高柴)는 온유하나 지혜가 부족하고, 염유(冉有)는 남보다 빨라서 한발 물러서야 하겠고, 증참(曾參)은 부지런하나 바탕이 둔하여 일이 더디고 자장(子長)은 총명하지만 성실하지 못하고, 

논어 자로(23장)에서 스승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을 나눈 자로(子路)는 용감하지만 하는 일이 경솔하여 옳은 죽음을 얻지 못할 것 같다면서 교양을 권했다는데. ..과연 자로가 죽임을 받은 후에 살코기가 팔렸다는군요.
이는 자로의 성품에 의한 요절인가요, 학문에 의한 품성도야가 빠져서 그런가요, 아니면 천명에 의한 경우인가요?

따라서 추측하건데 율곡의 품성은 천명을 떠나 귀신이나 신이 없다는 증명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예지가 아닌가요?
.
그러므로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이요 학문이라면 종교학을 뺀 인문학이 진정한 인간학이 아닐까 여겨지네요. 
인간을 위한다는 신앙ㆍ신학교리로 왜 많은 사람을 죽여줍니까.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싸움을 부르는 아주 못된 분야같군요.

그렇다면 귀신이란 말이 없으면 상제(上帝), 천주(天主), 데오스, 여호와, 천부(天父)란 말이 없을 것이고  
역시 신중의 신, 왕중왕, 상제, 천주, 데오스, 여호와, 천부란 말이 없으면 천명(天命)이란 말이 없겠네요.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신(神)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 숭배는 "그 지방의 법에 따라서."─Cujus regio ejus religio
인문주의자인 그가 신을 섬기지 않는 불경죄에 연루된 후에 변해론(辨解論. Apology)에 "사실적으로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지식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가 신들에 대헤 잘 아는 체하는 사람들보다 사실상 똑똑하다"고 기록됬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그만치 72년간 통치한 루이 14세는 천명이란 말대신  "짐(朕)이 곧 국가다. 내가 불필요한 전쟁을 많이 했기에 국가가 빚을 많이 졌다' 란 말을 남겼다는군요. 

그러므로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군사비로 하루에 18억 달러씩 늘고 있는 오바마 케어의 부채는 과연 천명인가요?
까닭은 천명이란 말을 과연 정치가가 쓸만한 옳은 소린가 궁금한 겁니다.
아니면 대자재천(大自在天) 천명의 속성이 독재자, 혁명아의 살생부인가 해서요?


   

총 게시물 63건, 최근 0 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dkp님의 독도ㆍ정책연구소 +7 100se 07-29 1601
63  남북통일 올가미 골디안 매듭을 누가 푸나? +2 dkpark 01-27 3237
62  62. 독도에 소나무, 울릉도에 대나무 심자 +1 dkpark 12-31 3055
61  61. 굳세어야 할 우리나라는 동화도 짧아 +1 없음 12-27 3649
60  이런 계륵의 양수와 조조의 모사 순욱을 바꿔 야그하고 있었내.... bubza 12-24 3253
59  59. 을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없음 12-23 2867
58  58. 이석기, 김재연 발가락이 종북세력과 닮았다 +18 dkpark 12-21 1952
57  57. 당랑규선. 산 귀신이 헤살뜨는 국가기상의 고황병 +1 dkpark 11-17 1556
56  56. 이명박은 한발 한발 감옥으로 걸어가는데 김윤옥은 타랍에서 한발 한발 내려오네 +7 dkpark 11-12 1649
55  55. 전시작전권전환 무기한(?)연기론 그 이유 #2 +1 dkpark 10-28 1509
54  54. 한미 전작권 전환연기는 당연한 시세적응/한국측에서 본 관점 #1 +2 dkpark 10-28 1415
53  53. 빈호아(邊和)의 주월사 한국군 증오비 40년 +1 dkpark 10-10 1869
52  52. 노벨상. 따 먹지 못하는 그 신 포도에 돌 던지기 +1 dkpark 10-06 1678
51  51. 교리는 절대악. 참된 행복의 요청이 아니다 +1 dkpark 09-20 1538
50  50. 김대중의 나르시즘과 피그말리오니즘 +1 dkpark 09-10 2380
49  49. 강박관념에 고양이처럼 꽁하는 통치자 +3 dkpark 09-10 1356
48  48. 김대중ㆍ매국노-신한일어업협정을 파기선언하라. +3 dkpark 09-09 1437
47  47. 한국은 미국이 아니면 망할 것. 달팽이 싸움때문에 +2 dkpark 09-08 1723
46  46. 한심하게 정부각료, 관리들이 일을 안해 +4 dkpark 09-06 1536
45  45. 세월호 후유증의 비판적 검토 +2 dkpark 09-05 1363
44  44.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국왕으로 책봉하노라 dkpark 08-31 2035
43  43. 독도. 일본제국 방법론─팽창주의의 장난감 +1 dkpark 08-29 1565
42  42. 독도영유권에 대한 솔로몬 재판 +1 dkpark 08-29 2248
41  Re: 온갖 기술문명의 근본은 수학이다 dkp 08-18 1516
40  2. 다케시마는 일본인이 부르던 죽도(竹島) 즉 울릉도. 독도를 지칭함이 아님. +2 dkpark 08-09 1694
39  다케시마는 한국땅. 일본식물학자의 증언 +2 dkpark 08-07 1970
38  Re: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dkp 08-02 1505
37  Re: 실록을 지킨 사람들 +3 dkp 08-01 1369
36  Re: 정교분리의 의미 +1 dkp 08-01 1776
35  Re: 1929년 나주역 사건의 재구성 - 국사의 재구성 +1 dkp 08-01 1716
34  Re: 민(民)에 관한 갓난아이론과 호민론 - 국민은 허점많은 갓난애같은가? dkp 08-01 1364
33  Re: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 '공부한 본보기. 공부를 해야 하나'… dkp 08-01 1455
32  Re: 슬프고 힘들면 노래하자, ‘벤다 빌릴리’ 처럼 - 노래로 고셍을 잊자. dkp 08-01 1509
31  Re: 유학(儒學)과 천명(天命) - 천명, 과학과 민주주의. dkp 08-01 1572
30  Re: 헌쇠와 위공(爲公) - 헌쇠(古鐵) 박중기와 위공(爲公) 정수일을 생각하며 dkp 08-01 1476
29  Re: 공부는 왜 하는가? +1 dkp 08-01 1642
28  Re: 로텐부르크 성곽 도시 - 수원 화성에 대하여 dkp 08-01 1571
27  Re: 법정 스님이 사랑했던 다산 선생 dkp 08-01 1388
26  Re: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본주의 비판 +1 dkp 08-01 1493
25  Re: 흡연과 건강 담론 +1 dkp 08-01 1380
24  Re: 진실, 그리고 듣고 싶은 한 마디 dkp 08-01 1275
23  Re: 종교인과 과세 dkp 08-01 1380
22  Re: 도심(道心)과 인심(人心) dkp 08-01 1408
21  Re: 네 살의 아들이 죽어도 그렇게 슬펐는데 dkp 08-01 1428
20  『멸절의 평화. ENDANGERED PEACE. THE PETER PRINCIPLE』 +2 dkp 08-01 1641
19  Re: 식민지 근대화론은 타당한가? (2) dkp 07-30 1417
18  Re: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까 dkp 07-30 1520
17  Re: 폭력 없는 학교 dkp 07-30 1357
16  Re: 통치 불능의 징후는 완연한데 +1 dkp 07-30 1464
15  Re: 다산의 명문장(名文章) dkp 07-30 1434
14  Re: 엘리트주의를 생각한다 dkp 07-30 1596
13  Re: 종두술과 정약용 dkp 07-30 1963
12  Re: 선비의 마음씨를 회복합시다 dkp 07-30 1348
11  Re: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참다운 의미 dkp 07-30 1542
10  Re: 茶山詩 독서일기(1) dkp 07-30 1438
9  Re: 큰 범죄엔 너그럽고 작은 죄에만 가혹한 세상 dkp 07-30 1350
8  Re: 친일의 변명과 옹호 담론 dkp 07-30 1316
7  Re: ‘얼빠진’ 나라의 ‘얼빠진’ 대학들 dkp 07-30 1418
6  Re: 이해할 수가 없다 +1 dkp 07-30 1481
5  Re: 국민의 수준 dkp 07-30 1372
4  현대판 조광조의 촌철살인과 공도 dkp 07-30 1538
3  Re: 분노하던 다산은 시라도 읊었는데… dkp 07-30 1420
2  Re: 세월호, 상징과 은유로 경고하다 dkp 07-29 1659
1  dkp님의 독도ㆍ정책연구소 +7 100se 07-29 1601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