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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폭력 없는 학교
글쓴이 : dkp 날짜 : 2014-07-30 (수) 03:28 조회 : 1371
폭력 없는 학교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어쩌다 보니, 근자에 한 달가량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 가서 만난 사람 중 교사 다섯 분이 있었다. 은퇴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거나, 조기 은퇴를 작정하여 교직을 떠나기 직전인, 30년 이상의 교직 경력을 가진 분들이었다. 모두들 워낙 명랑, 쾌활하여 마치 소녀 다섯이 수학여행을 온 것 같았다. 재기발랄한, 순발력 있게 튀어나오는 우스개와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한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해외여행에서 소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이분들과 가까워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또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이어졌다. 이 다섯 ‘소녀’ 선생님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씀인즉,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줄이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제까지 교육 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특히 여교사의 말을 학생들이 털끝만큼도 존중하지 않고, 혹 매라도 들려고 하면 경찰서에 전화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일순 진지해졌고, 그 진지함 이면에는 ‘어쩔 수가 없다’는 깊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물론 아니다. 가까이 지내는 교수님의 부인은 오랫동안 중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정년을 10년을 남겨 놓고 천직으로 알던 교직을 그만두었다. 속내를 뚜렷이 밝히지 않았지만, 학생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다. 그만두고 싶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미루고 있는 분도 주위에 있다. 졸업하여 교직에 있는 제자들이 이따금 찾아와 털어놓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육관료에게 치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말, 수능에 나오지 않은 과목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다. 이런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그냥저냥 출퇴근을 반복할 뿐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듣기가 심히 괴롭다.

  다섯 ‘소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학창시절을 반추해 보았다. 정말 과거에는 학생들이 교사에게 싹싹하게 복종했던가. 결코 아니었다. 복종하는 척했을 뿐이었다. ‘질풍노도기’의 발랄함 혹은 철없음, 순진함, 가능성, 반항심 등은 모두 너무나도 만연한 폭력 앞에서 침묵했을 뿐이었다. 학교(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국가)는 폭력이란 간편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순치해 왔던 것이다. 폭력이 금지되자 학생들은 이제 통제에서 풀려나 학교와 교사를 조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폭력을 결코 행사하지 않았던, 결코 할 생각도 없었던 선량한 선생님들도,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만을 목적으로 삼는 현실에선

  폭력이 배제된 학교는 좋은 학교이고, 좋은 교육이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럴까? 폭력이 없어져도 문제는 여전하다. 지금 한국의 학교와 교육을 ‘학교’와 ‘교육’으로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는 출신대학이 한 개인의 카스트를 결정하는 사회다. 따라서 학교와 교육은 오직 대학의 입시만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미 교육과 학교의 본래적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교육은 이미 파산한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와 교사를 조롱하는 근본적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산은 짧은 에세이 「원교(原敎)」에서 ‘가르친다는 행위’의 근본적 내용을 따진다. 다산이 말하는 가르침의 내용은, ‘부모와 형제에 대한 사랑’에 근본을 둔 ‘효(孝)’와 ‘제(悌)’와 그로부터 연역된 인간 간의 윤리적 덕목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산이 제시한 윤리적 덕목에는 물론 동의하지 못할 것도 당연히 있을 터이다. 하지만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을 교육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던 데는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지금 학교와 교육은 어떤가? ‘윤리적 인간’이란 목적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으로 어떤 사람을 키워낼 것인가? 거기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있다.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 바람직한 사회상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의 교육은, 학교는 여기에 대한 어떤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다섯 ‘소녀’ 선생님들의 말을 듣고 황량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벌판에 서서 혼자 답답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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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폭력 없는 학교


우리의 생활 중의 가장 가까운 속담에 '선생 x은 개도 않 먹는다'란 말은 선생의 말도 듣지 않고 해찰하는 아희들에게 오죽속이 상했으면 열이 속으로 들어가 대변까지 단단해져 물에도 잘 안 풀어지는 열결변비(熱結便秘)에 걸렸으니 똥개도 않 먹는다는 말이 나왔겠지요.


더구나 돈될 것을 갖다주면 아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도 있거늘 더러는 엉뚱한 질문에 못 들은 척,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교실이 매우 고역스러운 약구.

여기에 외국과 비교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아무 질문이나 할 수 있으나 엉뚱한 질의응답하는 학생을 때려도 제도적으로 조정해주는 지역구 랍비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질문을 안 받아줄 수도 있는 주입식 교육인 반면에 학생을 체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스라엘사람들 중에 부자가 많고, 변호사가 유명하고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이 연준의장이고 노벨상을 많이 탄다고 이스라엘 교육을 비교하자는 게 아니지만 그들의  탈무드를 상상외로 그들이 많이 읽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탈무드를 준비한 기원전 1세기 힐렐(Hillel)이 '너무 부끄러워 묻지 않는 학생은 결코 배울 수 없고, 너무 딱딱한 선생은 가르칠 수 없고 사람다워라'고 말한 교훈(Pirkei 2:5)이 면면히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구트만(Uri Gutman)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창조경제에서의 창출이란 이스라엘 단어 '마쉬베르(mashiber)' 는 산모의 해산, 혼란 및 공황(恐惶)이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듯 여기에 참여하는 교사의 사명과 은총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태민족의 고유정신을 후츠파(chutzpah; 야동, 교동의 뻔뻔함) 정신으로 정의했고 그 형식의 파괴, 질문의 권리, 섞임과 상상력, 목표지향,위험감수, 끈질김, 실패로부터 얻는 소중한 교훈. 즉, 훈련에서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역시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에서도 의심[惑]을 풀어주기에 스승이 필요하고 비록 나보다 어리더라도 도를 들은 것이 나보다 나으면 도를 스승으로 하는 나에게는 스승이라고 강조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천년간 고려, 이왕조를 통하여 질문 없이 경서를 무조건 암송하면 관리로 임명된 주입식 교육이 성행해왔섰고 그 후에 억강부약(抑强扶弱), 손부익빈(損富益貧)등 실학이념으로 과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지기 시작한 것.

그러나 '실학'자란 말은 역사가들이 붙인 개념이기에 실용주의(프래그마티즘)란 철학적 용어가 맞을 성 싶습니다.
'실(實)'이란 '열매', '사실'이란 의미지만 혹 다른 분야에서는 감기, 설사에 걸려도 '당(當)했'기에 실증이라고 하기 때문.

어였거나 그 틈바귀에 수능에 나오지 않는 예(禮)의 효제문화를 가르쳐야 하니 여간 애를 먹지 않을 수 없을 줄 압니다.
까닭은 돈냄새가 물씬 나는 자본민주주의나 혹 투쟁을 목표로 한다는 유물주의 공산주의에서는 윤리를 강조하지 않기에 윤리도덕이란 상류사회에서의 노우브리이즈 오블리쥐 덕목.
그럴수록 예화를 들어 가르쳐줘야하는 현대 자본민주사회에서의 대중교사들의 고충.

더구나 유식한 학부형까지 자녀들의 편에 들어 교사에게 따지고 든다면 앞뒤로 적을 만난 처지에서 하루도 공부 안하면 편할 다음 날이 없는 고헐무상(高歇無常)직업을 가졌다고 자인하고 자부심을 지니지 않는 한 학생에게 체벌이나 주는 처지에 놓인 것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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