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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茶山詩 독서일기(1)
글쓴이 : dkp 날짜 : 2014-07-30 (수) 02:59 조회 : 1450
茶山詩 독서일기(1)
박 무 영 (연세대 국문과 교수)

  <우울 따위, 꺼져라!> 

  좋은 시란 어떤 시일까? 이 문제야 수이 답하기 힘들지만, 삶에 힘이 되는 시가 꼭 문예적으로 아름다운 시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울을 쫒아버린다(遣憂)>라는 연작시의 한 편인 다음 시가 내게 그렇다.


          盡茹天下書    천하의 글들을 다 씹어 먹어서
          竟欲吐周易    마침내 「주역」으로 토해내리라.
          天欲破其慳    하늘이 그 비밀을 드러내시려
          賜我三年謫    내게 삼년의 귀양을 내리셨거니.

  무미하기가 더할 나위가 없다. 아니 도대체 ‘시’라고 할 수나 있는 건지 - 처음 보았을 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시들이 다 그렇듯이, 이 ‘시’도 아주 한참 뒤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내 삶 속으로 걸어와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시에 마음이 끌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들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나의 싸움> 신현림)

  이 시는 알아듣기 쉬웠다. 자신을 삼키는 감정적 함정들에 대해 분연히 “꺼지라구!”를 외치는 목소리는 고통이 묻어있었지만 당당했다. 그 고통스러운 명령문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시적인 외장, 문예적 세련 같은 것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위해 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루아침에 동지들은 사라지고 사방에 적들만 

  <견우(遣憂)>란 마음속에 서린 근심들을 시를 통해 배설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누리겠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시 <견우(遣憂)>는 다른 목소리 톤으로 내게 들려왔다.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 따위, 꺼져라!” 그렇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목소리로 읽히면서 비로소 이 시는 내게 다가왔다.

  천주교 문제로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기는 했을망정, 자기 말마따나 “금마를 타고 옥당 사이에서 날아오르던” 것이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던 시절의 다산이었다. 적도 많았지만 친구도 많았던 시절, 포부와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해서 위태로워도 외롭지는 않은 시절이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땅 끝 강진 바닷가로 유배되었다. 동지들은 사라지고 사방에 적들만 남았다. 이 시를 보면 엄동의 강진 주막 골방에서 했을 다산의 싸움이 보인다. 요동치며 심신을 감아오는 분노와 무력감, 공포, 살을 저미는 외로움을 향해 - 나를 망치는 것들에 나를 내어주지는 않겠다. -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그래서 삶을 망치는, 모든 감정적 나약함은 - “꺼지거라!”하고 외치는. 그 싸움이 쉬웠을 리 없다.

          愁將石壓猶還起     슬픔은 돌로 눌러도 다시 일어나고
          夢似烟迷每不明     꿈은 안개 낀 듯 번번이 흐릿하다. 

  바위로 꾹꾹 눌러놓아도 자꾸만 다시 고개를 쳐들며 일어서는 슬픔이야, 밤새 안개 속을 헤매는 불안한 꿈자리야, 끝내는 그저 오랜 친구 같이 익숙해졌을 것이다.

지상에서 남은 날들을 사랑하기 위해 

  이 시는 천하의 책을 다 공부해서 「주역」에 대한 저술을 하고 싶다고 ‘뚜벅’ 말한다. 너무나 담담해서 그 담담이 겪어온 격랑을 구체적으로 눈치 채지 못하면 이 시는 너무나 무미건조한, 시 같지도 않은 시일뿐이다. 그래서 이 시는 감정적 격랑을 스스로 다 말하는 <나의 싸움> 보다 알아듣기가 힘들다. 이 연작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民飢不我怨      백성이 굶주려도 나를 원망하지는 않고
          民頑我不知      백성이 완악해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後世論我曰      후세에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말할 터,
          得志必有爲      “기회를 얻었으면, 큰일을 했을 것”이라.  

                                                    <우울을 쫒아버리다ㆍ12(遣憂十二章 其十二)>

  젊은 날의 열정을 온통 바쳤던 일들이 이제 더 이상 내 책임도 내 알 바도 아닌 것은 얼마나 가슴 쓰라린가? 그러나 다산은 여기에 잡히지 않는다. 내 작업은 먼 훗날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할 것이다. ‘기회를 얻었더라면, 대단한 일을 이루었을 사람이었다.’라고. 그 먼 훗날을 위해, ‘지상에서 남은 날들을 사랑하기 위해’ 다산의 이런 시들은 지어졌을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명령하느라고, 자신의 나약한 감정들을 향해 ‘꺼져라’하고 명령하기 위해. 무엇보다 그 ‘일’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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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茶山詩 독서일기(1)


광세지재정다산 曠世之才丁茶山 

다정다한외향성 多情多恨外向性 

흔흔만사어십익 圂圂萬事於十翼

외재비평조고계 外在批評操觚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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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가 조심해서 '세계적인 관점'이란 단어 'Weltanschauung' 을 '인류의 이상적인 일종의 소망'이라는 의미로서 원용하면서 이를 구현하는데 인간의 감성을 지배하려고 악령을 기초로 여기는 종교가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고 말합니다. 아마 모든 미신, 토속, 종교적 교리를 우려한 것 같지요. 

그 역시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대부분의 못된 정치가 역시 '반사회적인 사람(sociopath)'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부류들이 영웅인 체하며 계층사회의 일개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를 타고 자신의 능력을 넘는 수준까지 출세하여 세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 염불위괴(恬不爲愧).
이러한 역사적 분위기에서 도량이 넓고 광방(曠放)한 대로 정치하고픈 다산이 볼 때에는

忮求無量 기구무량 남들은 시기하고 해쳐서 탐욕을 한없이 채우려 하지만
怖苦發心 포고발심 세상 고통이 두려워서 참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지만
念念生滅 염념생멸 우주만물이 시시각각으로 나고 죽고 그치지 않는데
天罔恢恢 천망회회 넓고 커서 크게 포용한다는 데야 누가 나를 해하리요

그러면서도 관직에 있으면서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그 광관(曠官)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을 알아주던 정조와 같은 광은(曠恩)이 끝났음에 깜짝 놀랍니다. 

까닭은 그의 정신작용이 외부에 관심이 많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며 남도 같이 행동하기를 바라는 외향성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사유(思惟)경제적으로 주역을 아는 자신의 주변이 수화기제(水火旣濟)인 줄 알았다가 완전히 화수미제(火水未濟)로 끝났음을 알았기 때문.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죽습니다.
물론 다산이 기회를 얻었으면 큰 일을 했겠지만 탈무드에 '세상에 세 개의 관(冠)이 있는데 그 중에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제일 큰 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

다산이 스스로 못 다한 관직보다 더 위대한 저술로 이름을 남기게 됬지요.
퇴계 역시 자성록을 남기면서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던 일을 후회했거들랑요.

다산이 영탄한 원래 주역의 법칙이란 영원히 미완성이기에 종결이 없고 인생도 영원히 종말이 없다는 의미로서 '나의 사랑이 끝남이 없음과 같이 이 곡도 끝남이 없을 것'이라며 슈벨트가 '미완성교향곡'을 남겼다잖아요.
하지만 그의 미완성교향곡은 완성된 일단의 교향곡이지요.

다산이 우리를 찾아온 혜고(惠顧)는 꽹과리 없는 미완성, 금마 탄 인간승리.
이 것이 다산학회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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