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광장
 
OPEN FORUM

 

총 게시물 3,265건, 최근 0 건
   
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글쓴이 : wind 날짜 : 2016-03-25 (금) 14:35 조회 : 842

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1.
물 건너 또 물 건너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봄바람 강뚝길을 걷다가 보니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어느 사이 그대 집에 이르렀구려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

위는 중국 명나라 때 고계(高啓)라는 시인이 화창한 어느 봄날 호은군이라는 친구를 찾아가면서 읊은 시이다. 시의 제목은 <심호은군 尋胡隱君>인데 은군(隱君)은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심은 “찾을 심( 尋)” 이니까 시 제목은 호(胡)씨 성을 갖인 은군자를 찾아 간다는 뜻이 된다. 이 시는 원래 4절까지 있는데 위 첫 구절이 가장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통 한시(漢詩)에서 같은 글자를 두번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기(起)와 승(承)에서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 오히려 읽는 이의 감흥을 높인다. “물 건너 또 물을 건너,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하는 “도수부도수(渡水復渡水) 간화환간화(看花還看花)..” 표현이 나는 너무 좋아서 아름다운 이 봄날, 수선화와 철쭉꽃이 어울려 피어진 동네 좁다란 길을 걷으며 이 시를 외운다. 시인은 그렇게 강뚝길을 걷다보니 어느듯 벗의 집에 이르렀단다. 맘 가는대로 걸음 내키는대로 친구를 찾아가고, 친구는 이렇게 불쑥 찾아온 벗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는다. 그래서 이어지는 다음 절,

“오늘 꽃 밭에서 술을 마시네 (今日花前飮)
즐거운 마음에 몇 잔 술로 취했네 (甘心醉數盃)
단연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但然花有語)
이 늙은이 만을 위해 핀 것이 아니라고 말 할걸 (不爲老人開)”

그렇지! 아름다운 이 꽃들은 유독이 나 만 보라고 핀것이 아니고 세상 모두를 위해 피어난 것이다.

2.
중국 남북조 시대(439-589)에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인품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양(梁)나라 임금인 무제(武帝)가 여승진을 지방 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그 임지가 바로 여승진의 고향인 남쇠주(南衰州)였다. 임지에 부임한 여승진은 행여 공무에 사(私)가 개입될가 염려하여 형제는 물론 친적들까지 관아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하였고, 부패의 근원인 군역과 조세행정을 바로잡고,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돌보듯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잘 처리하여 주었다. 참으로 여승진은 유능한 관리이면서도 깨끗하고 검소한 사생활에 교우 관계가 원만한 군자(君子)중에 군자였다.

당시 나라에는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은퇴한 다음 자기가 살 집을 찾다가 역시 고향으로 은퇴하여 살고 있는 여승진의 바로 옆집을 구입하였다. “얼마나 주고 그 집을 사셨습니까?” 여승진이 물으니 송계아 대답이 “천백만을 주었소” 한다. “아니 백만이면 충분할 집을 어떻게 천만이나 더주고 사셨습니까?” 하니 송계아 대답이 “백만은 집 값이고, 천만은 그대와 이웃하기 위한 값이요 (百萬買宅 千萬買隣)”했다. (출처: 南史 56券 呂僧珍傳). 사실 좋은 이웃과 벗하여 살 수 있다면 천만금이 어찌 아깝겠는가?

3.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주위를 보니까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행복이란 뜻밖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데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일상 보는 대로 포근한 가정에 좋은 친구와 벗 하는 사람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고 사는 사람,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기가 이제 끄쳤는지 내가 사는 실버타운인 로스모아(Rossmoor)에 찾아온 봄이 한 층 더 싱그럽다. 봄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이웃에 마실을 간다. 이렇게 불쑥 찾아 갈 수 있는 이웃이 있고 아무때나 부르면 나와서 만나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간다. 그러나 해 저물기 전에 꼭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사랑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마음을 비워 짐을 내려 놓으니 봄길 나들이가 더 더욱 가볍고 즐겁구나.


이태백 2016-03-25 (금) 17:37
시원시원란 내용에 서글서글하십니다.
심호은군이든 심호은자든 부도수, 환관화, 유독 늙은이만을 위해 핀 꽃은 아니지. 아주 멋집니다. 
댓글주소
     
     
wind 2016-03-26 (토) 00:02
이거, 또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댓글주소
이태백 2016-03-26 (토) 11:20
아니지요. 
그 숯다리미가 넘어져 포자백택이 눌어 울고가는 여종에게 톡벤 깁에 수 놓아준 사임당 솜씨처럼 본문의 paragraph development. 

그 고계의 시에 '호'가 친구 이름인지 물 건너 또 건너 '먼 곳'이라는 의미인지, 한 없이 꽃 피운 길을 따라가는 어느 꽃동내 이름인지, 읊노라니 가상적인 이름인지 중요하지 않겠지요. 
댓글주소
wind 2016-03-26 (토) 15:06
태백 선생의 코멘트를 읽으니 '호'가 꼭 사람 이름일 필요가 없겠군요. '물건너 먼곳?' 그렇다면 봄 나들이로 휘적휘적 다녀올 거리는 아니겠지요. 아마 강상적인 이름인것 같습니다. 
댓글주소
html
   

총 게시물 3,265건, 최근 0 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65  韓갈보냐, 아니면 洋갈보냐? 선열반 05-19 849
2264  향심기도 지향 이건희회장 이태백 09-29 849
2263  예언요술가 노스트라다무스. 저주받은 물이라고 목욕들 안하니 돈을 벌어 +2 이태백 04-20 849
2262  왜 저땀시 ㉿ 마크라고 말해야하나 dkp 09-25 848
2261  백설공주, 황소흉내내는 암개구리 +1 dkp 10-29 848
2260  허큘리스의 정력과 사사오입 슬기 +2 dkpark 03-14 848
2259  착함으로 살지 옳음으로 사는 세상이 아니다 dkp 04-12 847
2258  열린마당 밑에 메기(namazu)가 사나¿ dkp 05-20 847
2257  레밍턴 총으로 강탈한 알젠틴땅이나 상원에서 부결된 총포단속법이나 이태백 06-23 847
2256  사드보다 1만배 값싼 200만불 북한 화성 "Scud-C" 미사일을 구입한다면? +2 이태백 07-28 847
2255  이석기이서끼이세끼이새끼로 변형 dkp 06-21 846
2254  박통 조소하려면 요로코롬 해야줴 제임스 돈 dkp 07-22 845
2253  청량리문배. 열매ㆍ꽃받침 기(氣)싸움 +6 dkp 11-22 845
2252  악플 비아냥대면 오래 사나? 그 배설ㆍ통풍쾌감으로? 이태백 04-20 845
2251  늙으막에 제 아내를 위하는 건 +1 dkp 09-22 844
2250  홀아비ㆍ과부를 짝맺어주려는 정약용 dkp 10-29 844
2249  음참마속 박 순, 오비드의 슬픈 죽음 dkp 12-11 844
2248  순진, 덜 된 남자의 모르는 아들 아브라카다브라 +2 이태백 10-21 844
2247  실무율: 간책으로 봉급어치도 일 안하는 방통(龐統) +5 이태백 11-14 844
2246  동부3성공략에 한국의 교린정책 디렘마 dkp 06-01 843
2245  인생정점 오르가슴 정년기 클라이맥스 dkp 01-28 843
2244  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4 wind 03-25 843
2243  학벌 써니 06-01 843
2242  2009년 5월 23일 써니 09-06 842
2241  불길한 예감. 일가(一家)냐 정부냐? dkp 05-20 841
2240  이거 한번 볼만 합네다 선열반 03-28 841
2239  보편[공번共繙]과 지역특성 이태백 09-26 841
2238  안철수의 프로필. +3 써니 03-31 841
2237  캐슈넛. 배보다 배꼽이 가치. 연두색 피스타시오 +1 이태백 09-06 841
2236  강성대국을 예언한 김소월 초혼곡? 6070 04-15 840
2235  그래 난 땅을 일구는 사람이다. dkp 06-01 840
2234  저 산 밑의 밭뙈기는 dkp 07-01 840
2233  삭수가 틀렸다 이태백 07-26 840
2232  온라인 포르노. 추락한 양심. 힘든 세상. +10 이태백 09-06 840
2231  대목이 감추고 고치는 건 그 다음을 염려해서 6070 04-18 839
2230  은퇴남편증후군, 미리미리 대비하라! 단미 05-25 839
2229  싸리나무에 꽂아 말린 곶감 dkp 11-28 839
2228  미군이 매년 1조원 받는다면 철수하라고 그래! dkp 05-21 839
2227  보스김 나오시요. 그 달동내 향해 오줌도 안 누시요? +2 dkpark 02-02 839
2226  미국에서 깨진 꿈 +2 이태백 05-19 839
2225  미불유초(靡不有初)선극유종(鮮克有終). 시경ㆍ대아ㆍ탕지십. 모자미사(眸子靡徙) +1 이태백 09-05 839
2224  문ㆍ물이 맞춰지지 못하고 어그적 어그적 <댓글> dkp 07-31 838
2223  그것은 그것으로 지워지고 망한다 +5 dkpark 03-28 838
2222  꿀벌의 떼죽음, 군집붕괴현상은 굶어 죽어서이다. +1 이태백 05-30 838
2221  학스타우젠; 기민한 4형제 이야기 이태백 09-07 838
2220  채식주의자. 한강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한국문학 김치 위상 이태백 05-19 838
2219  ↓사과했으면 그만이지 왠 말이 많냐! dkp 07-08 837
2218  Shangri-La란 곳에서는 한 여자가 +3 선열반 05-01 837
2217  똑똑한 아버지가 버린 아이 아다 이태백 05-01 837
2216  나향욱 개ㆍ돼지 조련법 +4 이태백 07-14 837
2215  오줌눠버린 우물물 다시 마시는 날 dkp 06-01 836
2214  나, 집안, 나라가 자멸하는 길 dkp 07-03 836
2213  안녕카고 갑자기 사라져야 하는 공작새 신세 +1 선열반 04-11 836
2212  메밀잠자리와 용파리 漢詩 +2 이태백 12-20 836
2211  링컨 54세 3분, 하버드 총장 69세 2시간 연설. 유머꾼이 연설을 제대로 함. +3 이태백 01-01 836
2210  아까운 청춘 +1 써니 07-05 836
2209  야비[불온]한 문구삭제는 온건한 태도다 dkp 05-17 835
2208  법자야인(法咨野人) 철학이 생각나서 dkp 04-18 835
2207  엿 먹어라 +1 dkpark 03-27 835
2206  안락사와 사자의 고통사(死) +5 이태백 10-29 835
2205  관리자님께: 야마모토 이소로쿠 이미지 이태백 12-18 835
2204  반기문. 돌아오지 않는 영산강. 황제내경, 잡아함 +2 이태백 05-27 835
2203  호치민. 깐작깐작 박호(伯胡) 아저씨 +3 이태백 06-06 835
2202  난세에 세상의 소금 찾는 광고 이태백 06-27 835
2201  산악인 자유의 '얏호!'와 게딱지만한 형호(荊浩)의 자존심 +1 이태백 08-30 835
2200  나이 값, 배운 값 6070 04-16 834
2199  열린마당이 요상해지누나 dkp 06-23 834
2198  강적을 죽이면 그 다음 졸병쯤이야 dkp 07-12 834
2197  π=3.141592653589793238462643383.. +1 dkp 09-17 834
2196  청출어람. 이 뜻을 알고 쓰면 좋은데 dkp 02-17 834
2195  부자를 증오함은 반면의 진리 dkp 04-18 834
2194  물망초. 날 잊지 말아요. 아주 조그만 뭉치 꽃 이태백 04-01 834
2193  대궁(大窮)과 소궁(小窮) <'다산' 펌> +11 이태백 04-24 834
2192  울다 웃을 5가지 사랑; E.S.P.A.S. 이태백 08-16 834
2191  함경평야로 흐르는 물을 압록강으로 dkp 07-06 833
2190  3품인생. 맛,(품미) 질(품질) 그리고 덕(품덕) dkp 07-12 833
2189  구정물 속에 뜬 검불 일도창해하면 다 똑같.. dkp 07-22 833
2188  법법짜 아들자 한비자 법학각론 dkp 07-31 833
2187  날씨도 더운데 해는 여전한 모습.-잡기 dkp 07-31 833
2186  장자 莊子. 새발의 피 鳥足之根 dkp 09-09 833
2185  쌍넘같은 법자 일화자 인중황 똥떡욕 +1 dkp 10-06 833
2184  스타벅의 외침:석녀 사이렌 주의해! dkp 01-28 833
2183  중개자 없는 한국인의 닭대가리 정신 dkp 04-18 833
2182  대머리와 핥는 기술의 비율 이태백 04-09 833
2181  통정하지 말라니까 쇠창살을 휘고 들어와. 귀너비어, 랜서럿 +1 이태백 03-26 833
2180  미국 트럼프가 막은 7 개국 +1 써니 01-30 833
2179  [한현우의 팝 컬처] "너희 늙어봤어? 난 젊어봤다" 6070 04-16 832
2178  2. 심(尋)봤다! 사람같은 거 봤다! +1 dkp 08-21 832
2177  올가즘 여심은 임신과 영 대조적임 dkp 02-10 832
2176  한국인과 같은 골격 아메리칸 인디언의 원성 +2 dkpark 02-22 832
2175  뚫어진 통발. 공구(공자)가 싫어한 시경제풍 +1 이태백 08-30 832
2174  차라리 없는게 낫다 dkp 07-01 831
2173  정의는 힘이다. 의리는 없다. dkp 07-06 831
2172  서울풍수 이미 나와 있음2002, 저작권 2004 dkp 09-19 831
2171  프랜 B®는 윤리적인 낙태약 dkp 12-17 831
2170  케일(Kale, Kail,개채介菜)도 드시요 dkp 02-10 831
2169  완사모 #1: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1 이태백 04-20 831
2168  "한국 정부 미쳤나" 지꺼리며 협박하는 뙤놈 신문. +2 써니 10-13 831
2167  징기스칸. 고원에 버려진 애비없는 소년. +1 dkp 10-09 830
2166  안철수는 약은가, 정치간가, 사업간가 dkp 12-28 830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끝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