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이 차야 인심이 난다'...관자가 말했는데, 헛간 앞에서 빈칸선생이 올가즘으로 은연 중에 날 왜 유인하시오? 내가 도전했나요? 그 런 묘수가 있다니 아르쳐 달랐지요,ㅋㅋ
올가즘이든, 고행이든, 타격적 경험이든 영감의 계기가 되는 수단이요, 오직 이름만 다른 도구일 뿐.
자신의 올가즘(성쾌감의 절정)은 자신의 것이요, 여인이 역치(threshold)에 오르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관음취미라 할 것이니, 대물(大物)을 유기적인 사회 올가니즘(organism)에 비유하면 당연히 곤란하구 말구,ㅋㅋㅋ
하면 물어 보겠소?
올린 글의 결어가 이명박 대통령께서 통일을 원치 않는다? 즉각적인 보복조치를 안 하신 까닭(이 말도 내포됬던가?)에 대해 그럴 용의가 없으심이 분명하다고 언급한 점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병자호란(1636년)의 경우 그 여진족 청나라에 대해 멸시하고 있섰는데 척화론의 김청음(淸陰 김상헌)과 주화론 최지천(遲川 최명길)이 있섰는데 어느 쪽이 애국자라 생각합니까?
국가의 의리(義理)를 생각해서는 굴복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나라가 결단나게 생겼는데 최지천 같은 사람이 있서야 합니다. 둘 다 충(忠)이며, 그 누구를 불충이라 할 수 없지요.
빈칸님이 올가즘에 대한 부연에서 분명한 판단하에 얼음과 미지근한 물과 뜨거운 물을 비유로 들었다 해도 다 같은 물이요, 북한과의 격돌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다 같은 전쟁입니다.-탕빙구시수, 승패구시전湯氷具是水, 勝敗具是戰
대저 우리가 깨달음에 있서서 그 깨달음의 처음을 견성(見性)이라 하는 바, 깨닫는 그 순간에 나와 진짜 나 사이의 문지방에 서있는 바, 여인과의 엑스타시를 맛보는 순간에 반드시 넘어갈 문지방(역値)에서 다음 생각이 들 겁니다.
"네가 있서도 못 살고 없서도 못 산다."─Nec possum tecum vivere, nec sine te.(죄송합니다 모두 인용이지 내사 뭘 압니까,ㅎㅎ)
그러므로 우리가 깨닫기 위해서는 올가즘이든, 누구는 똥누면서 영감을 얻고,(이 사람들은 배설욕구에 의했고) 어느 누구는 고행하여 득도하려 하든, 주돈이가 뜰에 자라는 이름모를 잡초를 물끄럼이 응시하든, 원효가 해골박아지 물을 마셨던 타격적 경험이든, 흡수력있는 수사학적 웅변이든, 하이든의 경악교향곡이든 간에 그 작품이 나오기 이전에 준비된 영혼, 즉 예비적 사항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성(理性)은 스스로 욕망을 자제하는 욕망이라면 이성적으로 남에게 얻는 것이 둘이요, 즉 배움과 자세히 물음이니 여기까지는 지식을 얻기 위함이요, 이 것을 뀌어야 진주목거리 꾀(슬기, 지혜)가 되는 바, 이제부터는 자신이 돌보아야 합니다. 까닭은 남의 것을 공부만 하면 중구난방에 아둔해지기 때문이지요. 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분명히 판단하고 그리고 독실히 행해야 한답니다. 이 것이 중용의 다섯 요체라더군요.
이 중 빈칸님이 몇가지를 짚어 넘어갔지요.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지요.─ Labor omnia vincit.(함봐! 이 것도 주워 들은 말이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