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 타령은 민족의 한을 푸는 공옥진 여사의 무언극 곱사춤과 비슷한 의미가 있지 않나 여깁니다.
각설이란 말은 한자로 '각설(覺說)'이라고 옮겨지는데, '거지가 따로 없고 천덕구러기 거지 생활을 하지만 자체내에 지켜야 할 기본 법, 명령과 규율을 챙겨 처신하기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뜻이랍니다.
이는 우리나라 '랩'의 원조요, 그 발상지는 거지떼를 받아주어 집단적으로 살던 전남 무안군 일로읍 천사촌(天使村. 걸인촌)이라고 전해지네요.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걸하러 다니며 꽹가리를 치면서 신명내는 이 굿판소리는 어느 한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고, '서울 동(洞)타령' 처럼 가사를 차츰 달리 붙여 점점 가지수가 많아지고 있는데 다음은 어쩌면 오리지널에 제일 가깝고 우리 귀에 생소하지 않은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구걸하는 배경음악이 어쩌면 껄죽한 농가월령가 비슷하지요? 시주받으러 오는 스님은 목탁소리와 염불을 했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앞에서 꽹가리를 치면서 굵고 탁한 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제치면 조용하던 집분위가 콱 깨지면서 어딘가 불안해지고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면서 제가 하던 일을 한동안 멈추게 만들었지요. 어머님은 쌀이고 좁쌀이고 한 박아지[바가지] 퍼다 주시더구만요.
가사 중에 '품바'가 나오는데 후렴구로서 시간이 흐르면서 모르는 사이에 그 뜻이 '각설이, 걸인, (세속을 비웃는) 입방귀, (입으로 소리내는 장고소리) 입장고'라고 전해졌답니다.
제가 열 댓살 됬을 적에 누이와 함께 학교가려고 단우물이란 곳을 지나가노라면 한 머슴애가 누이를 향해 꼬시?느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소리가 "뿜바, 품바, 뿜바, 품바!"였지요.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워이~워어이~~ 얼씨구씨구 들어가안~다~
고놈의 소리가 요래도 천냥주고 배운 소리 한푼 벌기가 땀난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일 자(一字)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수중 백로 백구 떼가 벌[판]을 찾아서 날아 든다.
셋에 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삼월이라 삼짓날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든다.
넷에 사 자나 들고나 보니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을 밝혔다.
다섯에 오 자나 들고나 보니 오월이라 단옷날에 처녀 총각 한데 모아 추천놀이가 좋을씨고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여섯에 육 자나 들고나 보니 유월이라 유두날에 탁주놀이가 좋을씨고
알곱에 칠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좋을씨고
여덜[덟]에 팔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팔월이라 한가위에 보름달이 좋을씨고
아홉에 구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구월이라 구일 밤에 국화주가 좋을씨고
남았네 남았네 십 자나 한 장이 남았구나.
십리 백리 가는 길에 정든 님을 만났구나. 어허 품바 잘도 헌다~~.
[제가 이어 붙인다면 말입니다, ㅋㅋ]
열 하나에 한 장을 들고나 보니 동짓날 팥죽을 먹을씨고, 눈밝기를 섞어 더 좋을씨고
열 둘에 한 장을 들고나 보니 섯달 얼음에 팽이치기와 화토치기로 멍멍이만 짖어댄다~~ㅎㅎ ~~~ㅎㅎㅎㅎㅎㅎ
그들은 적선을 요구하는 방식에 있서서 비록 소음일 망정 노랫가락을 주고, 음식을 요구함으로써, 보통 거지와 다른 처신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왔노라, 부르노라, 줍시사'라는 시여자로써, 보시[적선]하는 민가와 대등한 자존심으로 가사에 나오는 것 처럼 '한푼 버는' 일종의 상거래라고 보겠습니다.
비록 소음공해, 무위도식에 의해 민폐가 되기에 사회정화 안목에서 깡패, 조직폭력배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 때 제거됬고, 전두환 대통령 때에는 일자리 창출방식인 삼청교육대에 잡아 넣어 제주도 개발 작업장에 투입되었지요.
그러나 흔히 보는 거지인상은 몰골이 반병신같거나, 꾀죄죄하고 찌그러진 알루미눔 냄비를 내밀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 버림받고, 잃고(사고무친), 기회를 놓쳤고, 팔자가 기구한 사회낙오자임을 보는 이에게 확인시켜줌으로써의 무상걸식을 원하는 데 반해 그 각설이들은 신명나게 놀아주는 장마당의 사당패, 사물놀이패거리? 같은 면이 있지요.
그러므로 이 각설 패거리 존재의 의미는 기회를 놓친 이들이 자본을 투자하지 않은 일자리였고, 일본 식민지시대로부터 독립하고도 남북한 신탁통치, 한국동란과 박정희 대통령 집권 직전까지 사회와 정부에서 미쳐 손을 쓸 수 없섰던 제쳐진 찌끄러기 군상들이라 여깁니다.
비록 지금은 각설이 타령이 향토문화재로 꾸준히 계발되어 가고 있지만요.
하지만 그 속에는 슬픈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보겠지요.
'너와 나!'
이 우리 둘 중에서 '못 가진 편'이 있을 때, 비록 기거하고 먹을거리가 없서도 자결하지 않고 연명해가기에 그들이 오죽하겠으며, 그러기에 미미하게 알려진 사회적 의미이겠지만, 그 발상근원은 지속되는 정정과 사회불안이었으며, 어쩌면 한국역사의 불안에서 발로한 민가를 끼고 돌며 죽지 않고 잔존하며, 이는 걸식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한민족의 끈기있는 능력이었더랬지요!
흐흐 머리는 총명하나 돈 버는 재주(이재理財) 없서 "일단사일표음에 반소사음수라도 낙역재기중,.'이라던 안자와 같은 인생달관자는 아니드라도, 정정불안에 피난가서라도 산나물 캐어 됀장에 묻혀 먹이게 해줄 아낙네나 안자와 같은 레서피가 없는 우리 바지저고리 머슴애 형편에 도둑질과 뜨쟁이질을 빼고 살려면 말입니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