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소출. 이건 천국을 비유하여 비옥한 땅에 심으면 소출이 그와 같이 나듯 본래 마음이 돌같은 넘에겐 어쩔 수 없고 어려서부터 착한 사람에게 복음이 심겨져야만 그 사람이 30명, 60명, 더러는 100명을 전교할 수 있다는 것이지 헌금을 하면 하늘나라 곳간에 30배, ...로 채워준다고 전도사가 말하면 못 쓴다.
사람은 자연이다. 자연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고로 인간품성에 성선설이고 성악설을 나불거릴 수 없다, 맹자도, 순자도, 바울(사울)도.
그래서 순자는 애들을 키우는 환경론으로 마중봉생이라 했고, 사람이 본시 착하다 한 맹자도 엄마에 의해 세번 이사가 책이 많은 삼촌있는 글방 옆으로 이사간 것. 세살이전 어려서 이미 애들 마음 텃밭을 비옥하게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허─?
"이 독사같은 놈들아!" 욕하셨다. 이 예수님께서 제사장 선조를 둔 사두개파, 율법학교를 이루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 했지, 이브에게 사과를 유혹한 뱀같은 넘이라는 비유가 아닌 줄로 안다. 이 넘들은 어려서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 나쁜 어른으로 컷는데 착한 척 하는 자를 일컫는 말일께다. 율법으로 착한 척함은 위화감이지만 악한 이가 착한 척하면 친절이라도 되겠지. 둘 중에 하나라면 나는 악한 이가 노력하는 위선을 택한다.
사울이란 사람은 영특총명. 로마 통치하에서 터키땅에 태어나 로마시권권을 가진 히브리사람이요, 산헤드린 랍비양성학교에서 가마뮤엘 제자로서 제 히브리어, 아람어는 물론, 로마어, 그리스(헬라)를 알고 성경과 프라톤 철학을 암송하는 수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율법윤리를 배우면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¹ 랍비로 임명될 학생이었으나 그 전문직이 새로운 사조를 이해하는 풍성한 그릇으로 크지를 못했다.
이 말은 아무리 율법, 교리를 떠들어대도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성격은 바꾸기 어렵다는 뜻.
그래서 후일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세례로 사람을 새로 나게하여 착하게 만들려고 했나 보다. 그러나 세례로 어렵고, 잇대어 견진으로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의 본심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 편이다.
현하 목회자들이 하느님을 경호하는데, 또 이들을 누가 감시해?─Who will guard the guards themselves?-Decimus Juvernalis
나는 폭로자가 아니기에 말하기 참 어려워. 여론이 폭로자(debunker)라 여긴다. 바로 알렉산더 최같은 사람이 쌍욕을 빼고 말이다. 쌍욕하고 말하면 서로 체면이 꾸겨져 사양하는게다. 충고가 구린내가 나서 피함과 같겠지.
다시 말해 목회자가 자기의 그 세살 때 욕과 간특함을 배우지 않았다면 좋겠다는 뜻이다. 직업이고 뭐고 간에 사람됨됨이가 먼저 낳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뭐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가² 20여년 전에 통계낸 적이 있섰다.
첫째가 화를 더디 내는 것이었다. '화'가 성경에 700번 나오더라고. 윤리학적 기본가치와 성서적으로 성 어거스틴의 기본 7덕목에 대한 순서가 바뀜을 알았다.
자존심, 욕망, 탐욕, 노여움, 폭음폭식, 질투, 게으름의 순서에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고자 하는 소망은 고귀, 풍성, 순결, 지혜, 용기, 절제, 정의, 믿음 그리고 사랑이었다.
이 중에 정의, 지혜, 절제, 용기, 사랑, 믿음과 소망은 프라토[프라톤]의 기본 7덕목이었더라고. 이 프라토의 기본 7덕목이 바울 고린도 전서 13장에 그대로 인용되면서 사랑이 첫째라고 신학적으로 승화시켰다고 윤리학에서 말하는 걸 다 아실 것이다.
발문(에피로그).
죄악의 첫째인 성질부림[화내는 것, 욕하는 것]에 대하여;
하느님: 나는 이브가 사과 따 먹고 부끄럼을 알아 알고 보니 뱀이 먹으면 졸꺼라 해서 따먹은 것 뿐이고 제 잘못은 뺌땜시랄 때 하느님이 뭐라 욕하시나 찾아 봤더니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였다.
이순신: 나는 이순신장군이 원균을 어떻게 욕하시나 난중일기를 봤더니 "안타까운 놈"이라 2번인가 나오더라고.
¹솔로몬의 첫 재판에서 한 아이를 두 여인이 서로 제꺼라고 잡아당기는 묘사가 나온다. 그 때 끌려간 여인이 친모라고 판결했다. 그 후로 재판권을 가지려면 애를 가진 부모라야만 되는 법이 정해졌다.
쿠빌라이(홀필 열) 병사간에 종군부인들의 친자확인소송. 찰합이(Chahar) 부족의 하북성 거용관에 인접한 (만리장성으로 국경) 내몽고 다륜현 개평 성곽 축성 8월(1256)의 판결 역시 다 칠가 봐 끌려가 승부에 진 여인을 아들의 후견인으로 판정해주다. 이 재판을 소재로 헨스케(Henschke, Alfred. 1890-1928)가 '동그라미 백묵(Der Kreidekreis.1924)'을 쓰다.
몽고의 유럽 원정에 장군의 아내들이 애들을 남기고 남편따라 종군할 때 벌어지는 사건으로 처리하여 브레흐트(Brecht, Bertolt)가 '코케시언 백묵 동그라미(The Caucasian Chalk Circle.1948)'로 연출하다. 테무진(징기스칸) 재위 2년에 발도(Batu) 장군이 백인 우즈벡(Uzbec) 지역을 점령하고 세운 금찰왕국(Khwarizmia) 이슬람 성묘(dargah)에서 원무곡을 펼치며 그 원 안에서 재판한 사건으로 각색했음으로 여겨진다. 졸저 멸절의 문명 p.644-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