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고려 개성사람 닮으라며, 일제치하 36년동안 상도를 지키며 한치의 땅도 일본넘에게 팔지 않아 일본이 패망하고 제 나라로 돌아간 후 남기고 간 적산(敵産)땅이 개성에는 하나도 없음을 예로 들며 민족정기 긍지로 삼느니라, 이 정상배들아! 쩝쩝
그러니 기본이 안되어 있다고 헐 수야 없지요. 까닭은 잘 알면서도 안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걸 징글러뷰우 ㅋㅋ
¹. 원래 백이(伯夷)ㆍ숙제는 본래가 모름지기 현인이었고, 안연(顔淵)은 똑똑하다 일컬으나 홀로 공부하여 공자 꼬리에 붙어 천리를 달릴 수 있섰다고 사마천이 사기ㆍ백이열전(列傳)에 기록한다.─승부기미이치천리(蠅附驥尾而致千里)
그런데 한국 위정자들이 후학에게 정치교육시켜주는 것을 모조리 호랑이 키운다고 생각하여 기우로 생각하고 제자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사법연수원, 육군대학 처럼 진솔한 연수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현재까지는 통치자에게 달라붙는 넘들은 독학ㆍ명상도 하지 않고 세월만 기다리는 영욕에 눈이 어두운 시커먼 똥파리들. 모조리 숯같이 시커면서 남이 검다고 나무란다.
². 동진(東晉) 때 사마예(司馬睿) 왕위를 찬탈하려한다는 모함을 받아 대역죄로 죽게 된 왕도(王導, 敦)를 살려주려고 백인(伯仁)이 그의 충성을 간절히 품의하여 생명을 보증해 줬는데(AD 323. 3월), 후일 백인이 곤궁에 처했을 때 그를 살려줄만한 위치에 있으면서 모른 체했다지요. 결국은 흉노 전조(前趙)에게 나라 망함.
³. 서진(西晉) 때 반악(潘岳. 字는 안인安仁)은 꽃미남으로 천고미정랑(千古美情郞)이라 불리워지는데 어렸을 때 이름이 단노(檀奴)요, 총각 때는 그냥 귀엽게 단랑(檀郞), 후일 그가 시문으로 이름을 날리자 반안(潘安)이라고도 불리워졌다죠.
그가 풍채 좋고 얼굴이 하도 잘 생겨 여인들은 침을 질질 흘리고, 그가 지나가면 "나 여기 있다!"고 "좋아라!"며 낭자들이 그가 탄 수레에 사과고 밀감이고 마구 던지며 "뒤돌아 날 좀 보라"고 했다지요.
그의 집안은 일대의 문장가요, 정치가. 조부 근(瑾)은 안평태수(安平太守), 부친 비(草+比)는 랑사내사(琅邪內史). 부모가 잘 살아 어렸을 적 때부터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섰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