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성군성현(聖君聖賢) 요(堯), 순(舜)의 아들, 탕(湯)의 아들ㆍ손자, 제갈량, 세종대왕의 아들 수양대군, 이순신 아들은 개꼴. 제퍼슨, 링컨 자식 역시 밖으로만 점잖았지 실속이 없섰다.
그 링컨이 저격사당하고 나서 주머니 속에 오려낸 신문기사 아홉쪼가리, 남부 연방의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찾아낸 것이 그 아들. 이 것이 링컨 아들의 이미지, 아버지 죽고나서 불쌍하게 보이는 상(像).
이를 보면 대기업가가 오히려 자식을 키우는 성의가 많다는 점을 확인하는 셈일 것이다.
까닭은 정치가는 밖에서 힘 다 쓰고 젖은 걸레 되어 집에 돌아와 자식을 만나니 자식 농사가 개차반.
개천에서 용나기보다 어렵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우선 그 자유투사 토마스 제퍼슨에 대한 본론으로 돌아와;
자유, 정의 및 동등권은 사회발전의 특성.
자유는 개인마다 다른 분깃의 힘의 향유.
동등권을 찾기 위해 압력을 가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경찰, 군사력은 좋은 목적에만 쓰여야 하며 압력이 강하면 자유는 위정자의 손에서 놀게된다.-
Thomas Sowell: A Conflict Of Vision. Burke p. 121 William Morrow and Co. 1987
그러나 금방 체험되는 것이 아니기에 가시밭을 걸어가는 역사를 순환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토마스 제퍼슨은 '자유의 나무는 반드시 시간이 흐르면서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에 의해 한 걸음 새롭게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여기에 개천에서 용(龍)난 그 애국적인 토마스 제퍼슨의 경우는 결혼 때부터 처가의 빚을 떠맡기 시작하여 퇴임 후 죽을 때까지 빚 속을 벗어나지 못한 빚통령이 필연적으로 된다는 것이 본문의 화두요 결어입니다.-
Maureen Harrison, Steve Gilbert: Thomas Jefferson. Word For Word. p. 39-52, 127, 355, 372 Excellent Books, Co. 1993
William J. Bennett: The Book of Virtues. p. 341-2. Simon & Schuster 1993
다시 말하여 위정자 이MB, 부시, 이멜다 가문처럼 정권을 이용한 땡잡는 개인사업으로 치부하거나 전두환, 김대중처럼 뇌물수수, 부정축재하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가정경제가 망하는 남자/여자의 직업이 대통령직.
예를 들어 그 위정자 제퍼슨 당시 물가는 지금 달러시세로 100분지 일이었고, 흑인 내니 헤밍스와 자식을 다섯 낳기도 한 여러가지로 자유분방한 만물박사 제퍼슨 대통령이라 비방하지만;
퇴직후 연금 없고 월급 2,083달러(연봉 $25,000; 현시세로 250만달러 연봉에 상당)
본인 및 접대용 경비: 대통령 본인 부담
루이 XVI 식단을 모방한 프랑스 주방장을 고용한 화려한 식단: 마치 서경 주공단(周公旦)같이 빈객을 맞아드리는 제퍼슨의 프랑스제 와인 값: 매월 평균 833달러(연간 $10,000; 현시세로 100만달러에 상당 )
그는 자유를 구현하려는 정치가, 외교가, 문장가
미국 독립문서 초안자; 그의 초안 1,603 글자가 1,354자(84.47%)로 퇴고되어 독립선언문으로 발표되다.
미국을 위하여 국회동의 없이 미국 예산 ⅓, 270만 달러.
미국 영토의 ⅓에 해당하는 2,147,000㎢ 루이지아나를 매입.
매 ㎢당 $7.00( 매 mile²당 18센트). 고정부채로 인하여 정부에서 갚아야 할 금액이 실제로는 2,300만 달러.
이 때 제퍼슨이 개인적인 부정,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았음.
그는 변호사, 철학자, 예술품 등 박물학자,
솔라나인 독이 적은 토마토를 육종개량하고 특허청을 신설하여 특허를 받아냄.
일기 및 어록[금언집], 인명록 및 법률제안 및 해설집.
신약해설가, 초록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정리한 '제퍼슨 바이블'.
의식주 이외의 과외 비용으로, 그는 책이 없으면 죽는 사람.
집에 화재가 나자 1만권을 의사당에 팔려고 했으나 거절될 정도의 장서가.
그가 1789년 James Madison에게 보낸 편지에 '개인 생존시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부채는 자손에 넘겨지지 않는다'라고.
그는 준비하는 대통령, 청렴한 대통령은 내일이 없는 버릇같지만 돈이 안 벌리는 직분이라는 걸 알고 있섰음.
그가 1769년에 버지니아에 5,000에이커 땅 위에 Monticello라고 이름한 저택을 짓는데 40년 걸려 1804년에 준공했음.
그에게 남은 것은 어록과 50년 사귄 제임스 메디슨 친구 하나 뿐. 이 친구에게 자신의 빚과 후사를 유언함.
1743년 토마스 제퍼슨 출생
1751년 제임스 메디슨 출생
1776년 토마스 제퍼슨이 제임스 메디슨 만남
1801년 토마스 제퍼슨 57세로 미 제 3대 대통령 취임
1803년 보나팔트 나폴레옹과 사절단 제임스 몬로(후일 제 5대 대통령)의 구두합의. 루이지아나 정식매매계약(4월 30일)
6천만 프랑(채무변제 1,800만 프랑)
1809년 토마스 제퍼슨 65세로 대통령 중임 끝남
1809년 제임스 메디슨 58세로 미 제 4대 대통령 취임
1817년 제임스 메디슨 66세로 대통령 중임 끝남
1826년 83세 제퍼슨이 죽기 4개월 반 전에 75세 제임스 메디슨에게 자기 죽음의 뒷 일을 부탁하는 편지
1826년 제임스 메디슨. 일주일 후에 그 동안 두 사람이 공익을 위한 헌신적인 우정을 확인하는 답장을 보냄
1826년 토마스 제퍼슨 83세로 서거
1836년 제임스 메디슨 85세로 서거
................................................................................................................... 감사합니다. dkp 올림 7-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