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린애에 대한 이상성욕자(pedophilia). 단, 16세 이상을 좋아했던 것 같고 부친이 돌아가신 다음에 친모에게 들어간 패륜아인 것 같지요.
그러나 그는 철학에서 만큼은 냉정한 이론가였고 매우 논리적이었습니다.
이는 'cum'이라는 전제로 이론을 끌어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논리는 '이것 다음에, 그러므로, 왜냐하면 이것(post hoc ergo propter hoc)'이라는 난삽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음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헤겔이 베를린大 요한 피흐테(Fichte) 교수가 사망하고 4년간 공석 중인 철학교실에 들어가고(1818), 쇼펜하우어 역시 같은 학교에서 강좌를 맡았을 때(1820-1831. 베를린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사직함)에 헤겔의 강의실에는 학생이 많으나 그의 강좌를 듣는 청강생이 5명으로서 '아카데미아' 자격을 상실했기에 그 헤겔에 대한 질투심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헤겔에 대한 그의 냉철한 비평은 옳았습니다.
과연 그의 지적대로 칼 맑스는 '헤겔式 철학의 정당성에 대한 비평'(Critique of the Hegelian Philosophy of Right. Introduction 1844)'에서 헤겔의 일부 이론을 철저히 비평했지요.
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불행의 철학자'가 아니라, 광범위한 통계에 의해 이지적으로 인간 성격을 관측했으며 그가 '불행'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고 하여 염세주의자라고 평할 수 없는 까닭은 마치 지그문드 프로이드가 성(性)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고 오직 성심리학자라고 몰아붙이는 경우와 같은 오해일 겁니다.
그 쇼펜하우어는 통계를 철저히 이용하여, 평화란 전쟁이 없는 무료한 상태를 말하는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그들에게는 '고통과 무료함이 최대의 적'이라는 걸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염세주의자들은 행복한 순간에도 과거의 불행한 시절을 회상하며, 불행한 시절에는 그 돌아올 수 없는 희미한 행복을 회상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성공이 무엇인지 몰라도, '성공'과 '행복'은 주위 사람과 비교되는 상대적,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새옹지마 운명일 터인데 안달.- Inscrutable are the way of heaven. 시편 126:5~6, 잠언 1:22
즉, 주전자에 들어 있는 물을 보고 이것밖에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절망적, 염세주의, 아직도 많이 있네라면 낙천주의.
염세주의자들은 산수할 수 없는 추상명사 '부요'와 '가난' 2분 법, 흑백논리로, '행복'과 불행'을 계량경제적으로 셈하려든다는 겁니다.
그들이 2분법을 그 계량할 수 없는 사물(imponderables)의 영역까지 확대하지만 부정(不定)이 아니고 중성적으로 '썸'하면 둥굴둥굴 원만한 성격.
제가 느낀 바, 다음 표는 그 '썸' 차이를
..................................... All 12시
.................... many 10시 .................. much 2시
..................................... some '썸'
....................... few 8시 ................... little 4시
...................................... no 6시
여기에서 사물을 보는 각도가 4시, 6시 그리고 8시방향이면 염세주의(페시미스트), 10시, 12시 그리고 2시 방향이면 낙천주의자. 그 가운데 '썸'이면 둥글둥글한 사람.
.............................................. 감사합니다. dkp 올림. Feb. 2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