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소변기 앞에 써붙인 "최후의 한 방울 한 발짝 앞으로(아데노 이떼기 니뽀덴신)" 어원을 아나?
저는 5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이런 문맹교육을 주도한 이승만, 민관식 장관, ..관계부처를 탓함니다.
뺀다고 빠질 국민성이야, 서로 통하지 않게만 만든 교육정책이었지!
그러니 정부시책과 상관없이 사설학원이 성(盛)하게 생겼지요.
까닭은 영어만 가지고 어림없고, 글로발 시대의 실세는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농담과 소통이 필요하기에, 부모가 국가보다 머리가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어 하나 더 아느냐 모르느냐로 냇과과장이 되고 안되고가 결정되는 미국입니다.
한편, 일본사람은 한자가 섞인 일어를 사용하기에 그들의 선조의 다음의 뜻을 알 겁니다.
기질여'풍'(其疾如'風'),
기서여'림'(其徐如'林'),
침략여'화'(侵掠如'火'),
부동여'산'(不動如'山')-다께다 신켄(무전신현武田信玄)의 풍림화산;
"달리는 것은 바람처럼, .서서히 움직일 때는 숲과 같이, .침입하여 약탈할 때는 불과 같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이."
*¹. 관화(關話). 일상회화. 우리 선조들이 중국 국경['관'문]을 넘어가기 전에 중국 회'화'를 배우던 교과서 <<관화약초(關話略抄)>>가 동경대학 문학부 오구라(小倉) 문고에 보관중. 박재연ㆍ원등광효(朴在淵ㆍ遠藤光曉) 편역으로 되어있답니다.
과거 우리 선조 역관은 물론 김인문, 최치원, 성삼문,..등이 이러한 초급교재를 끝내고, 중국인에게 이 상용회화, 한문을 종이에 쓰고 그리고 반벙어리 처럼 수화(手話)로 의사소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사람이 중국사람과 이와 같이 의사소통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이공계대학원을 나와도 중국사람과 전혀 의견을 나눌 수 없습니다.
참고로 현재 63년간 남북이 가로 막혀 문학작품, 사회정치 서적은 물론, 문물교환이 거의 없이 격리된 남ㆍ북한 통용어(관화)의 차이는 남ㆍ북공용어가 80 %만 남았으므로 '스웨디시 언어연대학(Moris Swadesh. Glottochronology)' 측정법에 의하면 서로 1천년 떨어진 격세지감의 세대차이.
지금 우리가 북한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광개토대왕과 이성계의 대화, 발해 대조영 후손이나 강감찬과 현재의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격.
북한 <<조선말대사전. 조선ㆍ평양 1992>>은 상ㆍ하 2권 총 4,150페이지.
'원수'는 '김일성 직책', '원쑤', '웬쑤'는 적(敵, enemy). 이대로 나아가다가는 100년 후에는 역관[통역]이 필요할 겁니다.
까닭은 위정자가 외교술이 부족하니까, 우리에게 돌아서서 한다는 말이 "북한? 나빠!"란 위화감을 주는 개념을 주입시킨 문맹교육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