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이 처녀와 하룻밤 자고 ............술탄(왕) 샤리야 마가마 하룬 알 라시드
다음 날 목을 베어 죽이고 ............. Sultan Shahryar Magamah Harun Ar Rasid
하룻밤 자고 ..................................박다드 제 5대 칼리프 786-809
다음 날 목을 베어 죽였다.
까닭은 왕비가 음사스러워 배반당하고
동생 역시 제수씨에게 배반당해 여인을 증오했기 때문.
처녀 목을 베는 책임자가 야야 빈카리드 빈 발막(Yahya Binkhalid bin Barmak).
이 때에 자원하여 천일야화를 들려준 처녀가 그의 큰 딸 쉬헤르자아지. ..Scheherazade
신밧드 모험,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 이야기가 독일 그림형제 동화집에서 'Simelei Mountain'
귀신의 도시, ㆍㆍㆍ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 1,001날 밤이 지나자 그녀를 왕비로 삼았다.
그 마지막으로 왕의 귀에 넌덜머리나게 들려준 이야기가 끊임없는 레밍 쥐가 앞 선 놈 흉내내어 물에 떨어지며 반복되는 '퐁당!', '퐁당!' 소리.
"야- 됐다! 그만 얘기하라!"
그 중공군 인해전술.
유엔군이 중공군 한 명 죽이면 또 넘어오고
죽이면 또 넘어오고.
비유할 수 없는 레밍쥐처럼.
중국 통계에 의하면
그 22만5천명을 죽인 주인공 적장 이름이 미해병 스미스 소장.
중국에서는 그의 부대를 '해군육전대(陸戰隊)'라고 불렀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은 정권야욕으로 야기된 동족상잔의 내란, 6ㆍ25 사변.
같은 해 1950년 7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한국군통수권, 작전권을 이양한다.- 대전(大田)각서.
중국 각주(州)에서 의용군 형식으로 강제 징집한 인민지원군이 같은 해 10월 27일~31일 총공격, 11월 25일~12월 9일까지 제 2차 공격에 장진호(長津湖) 전투가 포함됨. 11월 24일에 북한군 4만 명이 이에 합세한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5일까지 8일간의 장진호(Chosin, 또는 Changjin reservoir) 전투.
중국인민지원군은 4병단(兵團), 9병단을 필두로 12, 15, 20, 25. 27, 39, 40, 60, 63, 64 및 65병단.
아군이 그들을 포격, 저격사시켜도 천일야화에 나오는 레밍쥐(lemming)처럼 계속 밀고 내려 왔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 중공군 인해전술로 장진호 전투에서 패주해 오며 희망을 안고 남하하는 행복한 피난을 묘사한 아비규환의 사극적 명화.
이기위(李奇威)의 작전으로 제 9병단(兵團) 15만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함경도로 진군하며 알몬드(59세) 중장의 10군단을 공격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숭쉬룬(宋時輪. 由松 44세),
저 황해도 서쪽은 제 4병단 18만 군사를 이끌고 워커(62세)가 이끄는 미8군을 공격하는 림피아오(린바오 林彪 44세).
그 숭쉬룬은 장진호(長津湖) 덕동 산구(德洞 山口)를 공격하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미해병대 22,000명이 안되는 군사를 이끌고 대적하는 제 1사단장 스미스(58세) 소장의 노련한 작전에 95,000명 전사, 얼어죽은 자 4만 여명, 동상 걸린 군사 수 만명, 민간인 9만명의 손실을 본다.
역시 합동공격했던 유호천 군장(劉浩天軍長)이 이끌던 중공군 최정예부대 제 27병단 79사단 및 합동작전을 폈던 제 20군 59사단이 전멸한다.
이로써 중국에서는 미해군육전대(해병대)의 스팔타식 10대 1승리라고 자인한다.
이에 홍수에지(洪學智), 제 1부사령관 덩우오(鄭華), 정치부주임 두핑(杜平)이 총사령관 펭데훼(彭德懷), 그와 동반한 당연직 정치위원 증여청(曾如靑)을 비판하여 펭데훼의 말로가 일정한 제거방식에 의해 비참해지기 시작한다.
1951년 4월 21일 중국인에게 이기미(李奇微)라고 불리워지는 리지웨이 장군이 미군 7만 8천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100 킬로미터 북진하며 38선을 넘어간 작전과는 비교가 안됨.
그 스미스 소장의 principal 전투는 Talasea, Peleliu(Beliliou), 오키나와(1945), 인천상륙작전, 제 1, 2차 세계대전 참전.
훗날 그 유호천 군장이 물에 빠져(1966) 죽자 숭쉬룬이 이를 갈며 화를 냈다고 한다(교아절치咬牙切齒).
그 후 숭쉬룬이 이끄는 9병단 제 20군 60사(師) 178단(團) 2영(營) 5중대 모장묘(毛張苗)가 이끄는 150명이 소양강 현리(縣里) 전투에서 알몬드 10군단, 한국 유재홍 3군단 제 3, 9사단을 격멸한다.
알몬드의 천적은 숭쉬룬.
알몬드는 이 전투 후 육군대학으로 쫓겨났을 때에 자기에게 항명하며 전쟁을 불굴의 승리로 이끄는 스미스를 죽을 때까지 못 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은
1950~51년도에 군사비 $48.2billion
1951~52년도에 군사비 $60.0billion
우리 한국은 돈이 없섰다.
휴전협정(1953. 7. 27)을 반대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6월 18일 미국과 의론없이 반공포로 2만 7천명을 풀어주었다.
이에 트루만 정권이 이승만에게 격분하며 '늙은 고집쟁이'라고 혹평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짱 좋게 같은 해 11월 4일 자주통일정책을 표명하며 무기를 대달라며 북진하겠다고 미국에 위협하자 기가 막힌 미국이 할 수 없이 이 능구렁이 이승만 대통령과 12월 14일에 한미합동경위(한미방위조약)를 체결할 수 밖에 없는 이승만대통령의 외교술 밖에는 아무 군자금이 없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는 오직 사타구니에 감자 두 가마니만 달랑.
배고픈데 정권투쟁이 살 길이라면 공산주의 가리지 않고 국력을 소비했다.
목표가 정권탈취 용공주의자라면 북한 정권이 흡수하여 해체구축하고 제거한다. 좌익이 자진하여 꽥꽥거리며 양파 물고 냄비 속으로 들어간 그들의 표적이라는 걸 모른다.
그러므로 장진호 전투, 흥남부두, 국제시장의 애화 속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절대적인 미국의 경제군사적인 도움에 감사한 마음이 그지 없을 것이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