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화분에서 빽빽히 자라는 갖가지 식물의 떼판이 안정을 찾은 시기를 '오르가슴 군락(群落)'(climax community)이라 부르더구만요.
그 언젠가 1962년도 늦가을부터 이대 강당 분위기는 학교에서 지정한 제복이나 된듯이 죄다 바바리 코트를 입은 학생천지. ← 사실이여! 교육학강사가 보고와서 한 이야기여~~ㅋ 이 것은 다양한 개성의 표현 스타일이 아니라 creative하지 않고 상혼에 말려든 패션.
그러기에 우리 서로가 엇비슷한 실력ㆍ능력이 있을 때에 소수민족ㆍ남녀를 따지지 않고 차별없는 그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적극 추진하면서 역시 다양한 창의력을 추구하는 재량권이 우리에게나 또는 대학 입학사정관에게도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떤 행위가 사회문제화되지 않는다면, 이 우리가 다른 이를 얼마나 생각하고 도와줬다고 대학 본연의 가치를 떠나서 그 대학당국의 패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이해관계에 얽혀있을 때만 관심이 많은 체하는 열심일 겁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그 극상(極相)은 자연스러울 표현이기에 마치 '보기에 좋았다'는 크리에이터와 흙반죽을 쥐고서 발틀 녹로(轆轤)를 돌리는 홍균(洪鈞)의 운치에 달렸지 그들이 상감(象嵌 쥐어 판 凹陰款)을 하든 양식(陽識 凸돋을 새김)을 하든 카누피 패션이든 접붙인 벚꽃나무든 그들의 올가슴 군락에 관여할 바가 못될 것입니다. 자율적인 표현의 자유.
대학 본연의 가치는 자제를 위한 전인(全人)교육에 일일히 가정교사, 궁정왕사(王師)를 붙여줄 수 없는 부모들이 보낸 자제들에게 '앞 사람은 이리이리 말했고 너희들이 평생동안, 모르는 것을 이렇게 찾으면 된다'는 논리 과학적 방법을 집단적으로 가르치는 콘베이어 연극장이지 세상에 나가자마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테크니션-장인학교가 아닙니다.
까닭을 노털들이 이렇게 말합디다.
『도(道)는 꼭 그래야만 하는 법이 없고, 도(道)라고 이름지어 불러야하는 법은 없고 꼭 이렇게 저렇게 획일하는 것은 자유를 묶는 것이고 자신들의 그릇 크기와 모양대로 받아주는 자유가 있으며, 그 곳에 깊은 뜻이 있든 그 즐겨 모으는 의미든 희한한 운영의 묘를 향유함에 자유가 있지 평등과 균점을 위해 힘으로 누르는 것은 평등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일 겁니다.
대학은 '유니버스에 대해 크게 배우는 곳', '글자들의 집합소(字字)', '괴짜들의 놀이터(者者)', '크리에이티브 형식 상아탑'.』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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