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생각해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사주일께야! 이 저슥은 철저하게 한국을 낮잡아 말하는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였졔.
이 늠아가 틀림없이 반한적인 글을 올리는 前 전남大 일어일문과 미즈노 순페이(水野俊平) 교수로 하여금 "한국에 뼈를 묻고 싶지 않거든 얼른 표변하여 반한적으로 돌아서서 글을 써야 일본으로 귀국 후에 살 수 있다"라고 설복시켰을께야.
여담이지만 언제든지 표변하는 박쥐같은 도국근성. 그 성질이 언제나 태평양에 쓰나미 이는 타이푼 카미카제같다고 비유될지.
그 하루밤 사이에 변절하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그와 같이 반씩 나눠가졌던 7호대장군 친구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 ₁땅을 차지하네. 쇼건에 목숨 걸기 전에 언제든지 토겨 강자에게 투항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어제의 친구에게 참수당하고 모조리 멸문의 화를 입은 사례라 할 것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의 임진왜란을 반대했던 도꾸가와 예야수(德川家康)와 고니시 유끼나가. 토요토미가 화가 나서 도꾸가와는 건들지 못하고, 고니시를 제 1번(선봉)대장으로 삼아 우리나라에 먼저 침공케 했다.
그런데 오히려 조선침공하자던 가토 키요마사가 주공 토요토미가 죽자 그의 아들(히데요리)을 옹립하려 하지 않고 확 돌아 도꾸가와 편에 들어가 2번 대장이 되어 세키가하라(關ㆍ原전투)에서 친구 목을 베어버리고 친구집안을 모조리 죽여버렸죠.
이 열린마당에 재일교포 한 명이 'Ugly Korean'이란 익명으로 한국인을 짖밟아버리는 필살(筆煞)풀이를 하고 있다. 한글 맞춤법과 문맥을 보면 아직 생기가 팔팔.
이 사람은 여체미학이 아니라 죽음의 미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엽기적. 역시 이 오살날 늠의 저주내린 구라에서 많은 걸 깨우치고 있다.
^-^ ₁. 가토 기요마사는 영토확장으로 국부론을, 고니시 유끼나가는 통상으로 국부론을 주장하지만 조선침공시에 포로 2천명이 남양(Southern Pacific)에 노예로 팔려가게 됬을 적에 마드리드 출신 예수회선교사로서 고니시 유끼나가를 따라 진해 웅천성(熊川城. AD 1594)까지 따라왔던 세스페데스 종군신부에 의해 구출되고 영세, 입교시킨 것으로 가톨릭계에 전해지고 있읍니다.-Gregorio de Cespedes. 1551-1611
이 여담을 하는 이유는 좋든 궂든 고니시의 영세명(본명)은 아우구스투스, 기독교신자라 그런지 몰라도 조선인과 명나라 군인의 코와 귀를 베어간 가토, 시마쯔 요시히로(島津義弘)보다 덜 잔인하고 덜 비겁했던 것 같단 말씀. 그가 평양에 주둔 3개월 때문에 선조가 간신히나마 중국땅까지 몽진하지 않고 의주에 머물 수 있었고, 명나라-조선에 강화조약을 맺자고 제의한 사람.
그는 전형적인 장사꾼. 조선을 상대로 무역을 독점하다싶이 한 대마도 도주(島主) 소오 요시도시(宗義知)의 장인. 일본인이라고 모두가 철저히 나쁜 사람은 아닌데 재일교포로서 철저히 극단적인 반한사상을 가진 익명 Ugly Korean'추악한 한국인'으로 투서하는 못된 늠은 도대체 어느 편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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