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춤추는 콜크마개보다 가볍게 춤추는 무희들이란 알툴 랜보(Arthur Rimbaud 1854-'91)의 말을 듣고, F. H. Bradley(브래들리)는 고생하는 발레리나의 발을 보고는 '발레 댄스는 냉혹한 예술'(논리학 원론 1883)이라고 언급.
춤은 못가진 자가 지배자, 가진자에게 보여주는 한(恨)의 눈요기.
마치 성양후 조임(趙臨)의 딸, 가무에 능하고 몸의 가벼움이 제비와 같다고 하여 그 나르는 제비; 비연(飛燕. 후한 성제의 후궁)이라고 불리워진 원인이 발레리나처럼 엄지발가락을 질긴 베로 발과 함께 묶인 전족 (纏足)으로 성장이 둔화됬기 때문이라는 전설.
오직 다름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율동으로 최고급으로 표현하고자 하려면 발레리나 주니어급 이상의 앙상블 지원자는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발 끝에 댈 나무조각, 플라스틱 조각을 발(足)의사로부터 칫수를 처방받아야 함.
존슨 캄퍼니의 발비누, 귀리(Aveeno) 비누, 온 몸이 쑤셔 사우나, 마사지, 엄지 발가락 활액낭염 (bunion) 통증 및 예방, .. 발보험을 들 정도.
이 댄스 가무(dance 'to' music)는 흔한 춤, 가수들의 제스추어, 춤음악 유행가수, 은반의 피규어 스케이팅, 오페라 장르가 있겠지만 이 모든 율동을 융합하고 무언극에서 독창, 합창을 가미했기에, 동시에 셰익스피어가 말한 바, '인간이란 천재성을 지닌 채 사라질 수밖에 없는 도구 역활'을 하기 때문이기도.- 줄리어스 시저 II
그러므로 철학자인 그 브래들리의 안목으로도 발레 댄스를 시청한다는 것은 마치 검투사 격투를 관람하거나 바늘로 물고기 아가미를 꿰는 잔인한 낚시 취미에 비유한 것 같음.
그 위나라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묘사된 무희의 동작이 바로 이 발레 댄스인 성싶음.
오페라(가극)에 여배우 프리 마돈나 주역이 있는 것처럼 발레 댄서 역시 CEO가 있고, 솔로(solo) 역시.
이 발레 댄스에 비하여 그 오페라, Hip Hop 4 고체급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
오키스트러, 오페라 이상의 수준을 가진 대본작가, 작곡가, 음악, 무대소품, 조명을 포함한 무대시설, 안무가(choreographer), 감독 지도아래 공연.
그 중에 수 십명의 발레리나가 앙상블로 열병식처럼 가로 세로 줄을 맞춰 음악에 맞추어 댄스할 때의 그 단체성을 시공관(時空觀)시켜주는 그 안무를 포함한 종합예술의 최고봉.
그 문소황후 복비(宓妃)를 흠모하지만, 먼 길을 재촉하는 그가 그녀의 춤사위를 몽상한 '낙신부'
뻣뻣한 주름치마 날개의 나부낌(體邊飛鳧),
규칙이 없는듯 자유스러운 동작(動無常則),
앞으로 달려나감이 표연한 여신같고(飄悤),
위태한듯 보이다 이내 편안한듯(若危若安),
늦추어 가는 듯하다가 돌아서니(若往若還),
나가고 멈춤을 예측하기 어렵네(進止難期),
환해진 조명이 흩어졌다 모이고(神光離合),
그늘이 잠간 되었다 밝아졌다가(乍陰乍陽),
날렵한 몸은 학이 서있는 듯하고(輕軀鶴立),
고전에 없는 자기 몸을 팽이돌리기(體干樂),
그리고 주변을 빙빙 춤추며 돌다가(旋舞踊),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끝내네(踐楸塗地郁).
교묘하게 음악에 맞춘, 발레리나(芭雷舞姬).
오페라의 영역을 파고드는 발레;
잔 뱁티스트 룰리(Lully): <Noce Villageise (마을의 호두나무) 1672>
요한 스트라우스: 왈츠, <Wiener Blut (비엔나의 피) 1873>; 다혈질의 센슈얼 쾌락주의.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1877>, <Elergy and Waltz (애가와 원무곡) 1881>, <잠자는 미녀 1889>,<호두까기와 새양쥐왕 1892>
Pedro Sanjuana(파트로 샌화나): Cuban Dance Suite, <Liturgia Negra 검은 성찬식 1906>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발레 댄스를 도입한 분은 국립무용단을 이끌던 송범(宋范)이 아니라 <백조의 호수 2부>를 선보이고 뒷 날에 국립발레단(1972)을 이끌던 임성남(林聖南) 무용수.
처음 이 두 분이 새로운 춤사위를 같이 안무했을 때에 필자는 송범의 조카벌 송관(宋寬)에 이끌려 시공관에 가서 친구인 송관이 시키는대로 송범의 공연에 기립박수하고 임성남 발레를 큰 소리로 야유해줬지만,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발레 댄스만큼은 임성남씨가 낫다고 확언하자 내, 이 친구가 화를 벌컥 내더라고.
물론 이승만 정권 때부터 박정희 정권 때까지 '국제보도연맹' 출판사를 경영하시던 엄친 덕에 그 송범 역시 음덕을 보았고, 이 필자 역시 취직할 적에 친구 아버님이 재정보증을 서주셨지만, 안쓰러우나 공과 사(私)는 별개라고 생각.
이 친구 지금 무얼 하고 사나? 그 때 대한전선 사장이요 우리 동기동창인 설원량을 만났을 때에 그의 비서겸 직원심리담당 자문이었섰는데. 세월이 유수로군.
................................................................................................. 감사합니다. dkp 올림. 7-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