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이 말하기를 "지난 해 크리스마스 무렵 낌새가 이상했어. 뇌경색 기운이 있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급하게 치료받은 거고 요즘 전에 없던 건강 챙기느라 바빠.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게 있서야지. 혼자서 따분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뭘까? 탁구가 딱이다 싶었어. 중학교 때 조금 치기는 쳤지만 학교 졸업하고 부터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 지금 하는 탁구, 내 평생 첫 운동이라 할 수 있어."
그가 친 공이 빗나가 탁구대 밖으로 휙 날아와 인터뷰하던 주부생활 팀장 이영민씨가 주웠다.-7/20/10. P. 356~
그런 그가 지난 해 7월 '요셉보이스와 영남보이스전' 오프닝 행사 때 파격적인 장례 퍼포먼스에서의 유서문;
"나는 원단 이기주의자였다. 추모를 받을 만한 인물이 못되니 내 시체를 발견하는 사람은 발견 즉시 담요나 이불에 말아 화장터로 가져가 태우라. 남은 유해는 영동대교 위에서 뿌려 달라. 그리고 재산의 4분의 1은 죽을 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갖고, 나머지 4분의 3은 두 아들과 딸이 똑같이 4분의 1씩 나눠가지라. 다만 옆에 있는 여자가 바람 피웠을 경우 취소한다."
아마 아들? 사실일 겁니다. 30여년 전 윤여정에게서 두 아들을 낳고, 다음 여인에게서 딸을 낳아 이 딸이 '아빠 아빠!'하며 시장을 봐다 준다고 들었지요. 그리고 유서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내 인생은 한 판 놀이였다. 재미있게 놀다 간다."
이 조영남 선생은 하도 쑤시고 다닌 전공과 부전공이 많아 스스로 '너저분한 천재'라 말하는데 틀림없는 것 같다. 그는 시인 '이상'을 돼게 좋아 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시인 이상(李箱)에 대해 빠졌더니 내 몸이 이상(異常)해졌다."
시인 이상(강릉김씨 본명 김해경金海卿). 1910년 음력 8.20(양력 9월 23일. 금요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生으로 그림재주가 있는 공학도. 조선총독부 조선건축연구실에 취직하여 표지도안 1등, 3등. 그러나 23살 때 결핵으로 인해 기침가래에 피가 섞여 나와 이 객혈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지만 23살된 그가 찾아 좋아하던 술집 여급 금홍이가 그를 39살로 볼 정도로 쇠약해졌다.
물론 이상은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던 변동림(본명 김향안)이란 여인과 결혼한 적이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아니했고, 그가 정을 준 금홍이가 다른 남정들에게 매음을 하고 집에 와서는 옆방에서 다른 남정과 희희덕거리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그가 돈도 벌지 못하고 기침이나 하고 기둥서방 노릇도 제대로 못하자 그 시인 이상을 느닷없이 두둘겨 패곤하여 갱신을 못해 일어나지 못하면서 쓴 글이 "난다 난다 '날개'"였다. 그녀가 그의 진실한 심적 아내였다.
그가 그 '매맞음을 쾌감으로 느끼며 쓴 날개'(마소히즘)라고 분석하는 현대문학 비평가들에게 조영남이 반기를 든 것이다.
조영남은 말한다. "이상은 보들레르, 랭보, T.S. 엘리엇, 포어 같은 서양 시인들보다 몇 수 위라고 생각해. 현대시의 제왕은 누구냐? 현대시의 피카소는 누구냐? 현대시의 엘비스 프레슬리는 누구냐?
그 답안지에 나는 이상을 쓴 거지. 이상은 나한테 감사해야 돼. 내가 이상의 장례식을 치뤄준 셈이니끼. 한데 조만간 책 나오면 국문학자들이 분명 이럴 거야. '뭐야, 이거!' 완전 조영남식으로 맞아 죽을 각오로 썼거던."
과연 조영남은 못 속여. 조선됀장 기질, 고집과 주의주장 잔소리, 개혁과 보수성향 그리고 모든 멍에를 벗었다. 문학비평가와 붙어 보잔다.
아이구 물렸다. 이 글을 쓰다가 금방 파리보다 적은 깍다귀에게 어느 틈에 한 방 물렸다. 돼게 간지럽네. 전에 빌리 그레함 목사님을 따라다니던 조영남이 목사가 되겠노라 말할 때에 그의 싸인을 내 성경책에 받으며 느낀 인상은 지독한 사람이라 느꼈는데, 내 어렸을 적에도 조영남 같은 깍따귀 때문에 물린 적이 있섰다.
줄을 서서 차례대로 공중변소에 들어 갔는데 아무말도 않하고 갑자기 내가 앉아 있는 변소문을 열고 나를 안아 준다며 내 궁둥이에 붙어 냄새도 구리게 크게 싸고는 '시원하다'며 나간 호메이니 같이 생긴 숫캐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는 하도 불안하여 나갈 것이 쏙 들어갔서도 아저씨는 그냥 싸시기나 하시지 '같이 하는 거라고! 여행은 같이 하고 같이 잘 싸는게 좋은 거야. 하느님을 아는 것도 맘적 여행, 이렇게 같이.' 나에게 앞으로 좀 닥아 앉으라며 미는 그 아저씨에게 두 팔굽을 휘두르며 "날 만지지 말아요"라 짜증냈다. 그 아저씨 나가신 후 나는 시글거리는 파리 중에 섞인 깍따귀에 물렸고 내 뒤에서 똥 누시는 믿음에 대한 양심선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아무 말도 듣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마호멧 아랍이슬람 종교가 이란에 전파되고 이란나름의 싯(Shiit)파 '이맘 알리'(Imam Ali) 생일 1월 1일로 나라의 축일을 정하려 해도 페르샤의 토속을 벗겨 내지 못하고 수천년간 세던 춘분축제(Nowruz)를 같이 지내고 있다. 정월초하루로 축제를 바꾸려고 사람들을 많이 죽였서도 우리는 아랍사람이 아니라며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결코 바꿔 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이다. 무의식이든 잠재의식이라 불리우든 말든 간에 자기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말한다.
지금 조영남 선생이 한국문학작가, 평론가와 배설의 쾌감을 같이 싸겠다는 것이다. 나는 조영남 선생이 국문학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안다. 오히려 그는 한국의 오래된 전통, 음력설-양력설, 미신의 가르침, 음악, 그가 현대의 피카소라 부르는, 존경하는 백남준 같은 그림을 그리는 등 추억의 상념에서 벗어 나지 못한 진짜 한국남자 팔남봉꾼이요, 그 아무도 그의 토속적인 멍에를 벗겨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중한 우리 문화 유산을 우리 고유의 방식에 조명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진짜 한국 남성! 나는 그를 좋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