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인은 '천지신명께 고마워하는 감성(sense of gratefulness)'이 있서요.
이건 한국남성에게 내린 축복이에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해줘요. 비록 그 여인이 100번째일찌라도.
옆에만 있서도 좋다면 미안해요.
견우ㆍ직녀는 1년에 겨우 한번 만난단 말해줘요.
사랑은 어린애 장난, 서로 감싸주고, 거짓말인 줄 알면서 속아주는 거.
사랑은 자극적, 사랑을 먹으면 이상해지며 화나는 거.
사랑은 매운 냄새나는 양파같기에 도가(道家)들이 피하는 거.
사랑은 비린내 가셔주는 파슬리, 타임, 베이실 아니지요.
사랑은 마늘, 달래냉이, 세파(細蔥), 무우배추, 평지, 무릇. 부추, ..같지요.
사랑은 성깔, 속을 쓰리게 하는 생강 성질, 오~~
사랑은 속을 달래는 고들빼기.
사랑은 멸치젓, 황새기젓, 조기젓, 오징어, 굴, 전복, 우엉, 인삼, ..
사랑은 재료와 담근 법에 따라 수천, 수만가지.
김치,─양념~~은 찬 바람과 삼복더위 잊게하는데, ..♪
그 누가 파마늘고추가 음욕을 돋구고, 분노내게 한다며 염교(비菜)만 먹었던가?
무릎꿇어! 맹자, 장자, 와습(WASP. 영국인) 게 있거라, 아님 이 dkp 표창 받아라!
"장자는 그래도 봐준다마는, 맹자야 게 섰거라! 네가 우릴 보고 야채를 썩혀먹는 마늘새끼(훈족)라 하지 않았더냐,
'일루' 와 어서! ☜ (맹자에게 코침주겠단 말.ㅎㅎ)
맹자도 실수할 때가 있단말이요.
김치냄새난다고 동이(東夷)에게 '마늘'이라 하지 않나, 중국어와 달리 이방인 언어는 딱다구리 소리같다고 말하질 않나, 맹자, '지(제)'가 태어날 때 공자 얼굴 못본 형편에, 공자도 그러지 않으셨는데, 제 혼자 자칭 중국적 '히브리인'인 사도 바울처럼, 중국인 중의 중국인이라고 까불어 댔지요.)
네 앞서 공자님이 구이(九夷)로 가고프다고 말씀하지 않았느냐?, ㅋㅋ"
매워! 매워? ЗЙЖ. ........ㅹ이나 '믁'으라. 매운 걸 먹으므로 혈액순환을 도와 미열을 내리고 뼈마디 아픔을 땀으로 풀어주는데, 생강, 강황(커리), 궁궁이 참나물이 어떻기에, 자기들은 느끼한 음식에 더 채종유를 밤벅하고 매운 회향과 후추를 먹어 병이 잦으면서 그 무슨 허황한 말을 감히 하냐?(이에 맹자 혼백이 나타나 dkp에게 무릎꿇고 백배사죄했음.)
"흐흠! 우리는 히말라야 등반, 남극과 북극 탐험할 때 너희들처럼 코케인 복용 아니라 바로 이 김치란 걸 알아야 한다.
너희 알다시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고기없서 못 먹고 김치에 좁쌀밥 먹은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따자 동경대학 실험실에서 김치에 무슨 마취제, 마약, 흥분제, 환각성분이 들어있음이 틀림없다고 분석한 후 아무 이상 없다 증거하지 않았느냐!
어렵게 생각마라. 그냥 단순혀! '김치'는 야채를 가진 양념에 소금으로 버무려 익힌 갈무리, 겉절이는 소금과 방향(芳香)으로 푸성귀 숨만 죽인 거. 맹서방, 자 알긋냐? 이해했다면 자 가서 공부 더 하그라!, ~~~~~~~~~~~~"
그러나 점잖은 도가 장자와 안자의 스승 공자에게는 먹을 것 못 됩니다. 맵다고, 쓰다고, 탓다고 짜다고, 비리다고, 냄새난다고 여인이 솜씨껏 차려준 음식을 안먹는 그의 행투에 열불나는데 내 손끝을 나무라는 공자에게 어찌 사랑을 느껴 그에게 안기워지고 손끝으로 밀어넣을소냐!
사랑은 분노, 사랑은 음욕.
사랑은 "나 여기 있다"는 표현, 사실 그리고 형상(모델).
사교적인 프레젠테이션, '나'에게 친 빨강 동그라미, 영육간의 그 교제가 궁중. 뒤늦게까지 머무르며 지나가는 사람과 더불어 괴롭게 읊을 일이 아니려니.─정약용. 유여행인입고음(丁若鏞. 留與行人入苦吟)
그 누가 일찌기 사랑을 아는 몸 묶듯, 양념없는 무짠지로 알고;
《ㅁㆍ음이 어린 後ㅣ니 ㅎㆍㄴㆍ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만중운산)에 어ㄴㆍㅣ 님 오리마ㄴㆍㄴ ..지ㄴㆍㄴ 닙 부ㄴㆍㄴ ㅂㆍ람에 ㅎㆎㅇ여 긘가 ㅎㆍ노라》 ....서경덕 『무제』
이 남정네의 멋없는 무뚝뚝함, 찜찜한 맛을 알아 듣고 화답하니;
《☆누가 둥근 옥을 끊어서 말라서 ..직녀의 빗◑을 만들었는고♡ ..임이 한번 떠난 후에 근심에 못이겨 ..푸른 하늘 텅빈 곳에 던졌노라》....황진이 『반달(半月)167♧』
그리고 팔, 다리의 피로, ..그러나 멀쩡한 눈과 귀, ..오감(五感) 그리고 직감. 유기체로써 조화를 이룬 정체성(整體性), 이해될만한 유기체 철학으로 살아갑니다. 복잡성 속에서의 질서있는 향방(向方)으로, ..사는 날까지.
그러므로 열한가지 맛이 나는 보쌈김치와 같은 11面(낯) 관세음보살의 삶.
일찌기 스티브 잡스(Steve Jobs) 교훈 열가지를 동의합니다. "다른 이의 인생을 살지마라"했지만, 저는 이 말에 대해 다른 각도로 튕깁니다.
질적 고하를 막론하고 삶의 방법, 즉 사랑은 다른이의 인생을 받아주는 거.
그러기에 그가 그 말을 금방하고는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최대한으로 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버렸지요.
'지(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 세상 혼자 절대로 산 사람 아닙니다.
헤밍웨이의 바다의 노인은 그와 자연과의 관계였고, 홀로 불행하게 禪하는 이 역시 자신과 마음의 사랑이었고, 내가 내 마음을 일치시키는 '독존(human separateness)의 사랑'이고, .... 그건, 그 사랑하는 한 쌍은 하나, 인간을 읽어주는 묘비의 숨결, '사리'였지요.
스티브 잡스는 "누가 나처럼 일년에 2,500만(¼ of a billion) 달러 잃어버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말했지만, 그는 죽음을 앞둔 건강에서 깨달은 교훈이었으니 손재수(損財數) 보다 더 중요한 건 인생의 잃음일진져.
삶의 소중함을 스쳐버림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느낀 것보다는 사생결단을 경험한 것 처럼 느끼며 생사를 마음으로 융합통정한 살아서의 깨달음을 모를 때가 아닌가 느껴집니다.
왜냐'믄' 그는 이미 지나간 세월에서 마음ㆍ즐거움을 몰랐기 때문이리라.
그 어느 누가 가버린 후, 그 죽기 1년 전, 1년간 앉았던 더블린(Dublin)층계에 그가 '루드비히 비트겐스타인(Ludwig Wittgenstein)'이었단 님의 추억을 기록한 묘명.
그는 될 수 있섰는데 아니하고, 추켜세움에 사양하고, '생각과 언어 사이'를 곰삭이며 무소유의 구도자의 길을 걸어간 20세기의 비엔나 철학자.
우리에게는 선언이 중요한 것.─ "나 여기 있서!"
스티브 잡스는 우리 인생이 자신을 표현하는 멀티이미지,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의 쇼라야만 능력의 길이요, '나'라는 것 같지요.
비트겐스타인은 우리의 시각 감성을 오리 도형이 토끼로 바뀌어가는 변형(메타몰포시스)으로 표현했고요.
먼저의 나를 완전히 버리는게 아니라 남겨두는 연화(衍化. infinite divisibility).
이것이 스티브 잡스가 불교의 '초심자 마음(Beginner's Mind)'을 공감한 순진한 초등학생 그림이 아닌가요?
그 오비드(Ovid)의 메타몰포시스(metamorphosis. 변형變形).
묵은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이면 돼지고기에 김치맛이 배어들고, 김치에 느끼한 돼지고기 맛이 나는 이 것이 '동화'란 낱말.
그 어원적으로, 언어분석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변화(變和), 동화(同和)란 개념.
옥타비아누스가 버질을 시켜 족보를 만들 때 선조를 아네아스로 설정한 후 줄리어스 시저를 직계로 끌어 모으자 이거야 말로 메타몰포시스라고 혹평하자 축출당한 게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리 그 화잇헤드(Whitehead.1861~1947)가, ..생명의 자기향유는 자연의 물리적 과정에 의해서 적당한 것으로 제공된 많은 소재(素材)를 생존에 있서서 통일해가는 복잡한 과정이라고, ...174
이게 보쌈김치 생활철학.
이 건 사랑하는 님과 나를 위한 사랑싸움(대립. opposition),
몸은 둘이나 마음은 하나, 의존(interdependence)이요,
그 우리 두 사람은 둘이 아니요 하나, 서로 소모시키며 도와줌(소장消長. inter-consuming-supporting)이자,
새로운 다른 거, 전화(轉化inter-transforming)
그리고 통메장이(header)의 쉰소리(raucity), 귀여운 새끼낳는 연화 중의 하나가 아닌가요?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와 루드비히 비트겐스타인은 서로 다른 때에 "나 여기 있서!"라며 서로 같은 생각.
그 스티브 잡스는 물론 빌 게이트도 "우리가 먹고 크는 동안에 신세 않진 적 없다"라 말했잖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남을 도와주지 않는 단 말 할 수 없읍니다.
일찌기 청구연언에 '시조¹' 배구(俳句) 화답송을 연(鳶)에 띄워; ¹. David McCann. 한국 시조는 'Urban Temple(도회風의 쳇발)'
『내 언제 無信(무신)ㅎㆍ여 님을 소겻관ㄷㆎ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ㅳ─ㅅ이 전혀 업ㄴㆎ ..추풍에 지ㄴㆍ닙 소릐야 낸들 어이 ㅎㆍ리』....황진이 《무제》위키문헌 퍼블릭 도매인
일찌기, 훨씬 이전에 노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워하는 이를 찾아 그 푯대를 향해 항해할 때에 '여인이 없서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천문개합(天門開闔) 능무자호(能無雌乎?)─도덕경 제 10장. 頁 249~311
이에 대해;
"못한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아픈 것, 무식, 떵떵거리고 싶은 마음, 꾸밈에 의존하는 우두머리 현덕(玄德) 짓, ..그 모든 양념 다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