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틀동안, '촬스 김'의 소마리아 해적나포 구인(拘引)에 대한 지극한 글을 읽고 이 해적들 행투에 분개심이 나기에 가만 생각해 보니 해적이 큰 상선을 끌고가는 게 마치;
어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고기에게 신통하게 끌려가는 작은 배 대목이 생각납니다.
큰 바다에서 3백킬로그람 이상 나가는 돛새치가 낚시에 걸렸거나, 통나무 배를 타고 나간 인디언이 작살을 고래 등에 세게 꼽아 박고 마냥 끌려가며 그 것이 기력이 빠질 때를 기다리는 병법이 생각난다는 말씀.
일찌기 '노자'가 말한 걸 우리 같이 생각하면 그의 절묘한 정치철학인듯;
『쪼그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펼쳐야 하고, 그를 약하게 만드려면 반드시 강하게 한 다음에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를 없애려면 살찌게 한 다음이어야 하고, 내가 취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권해야한다는 욕취고여(欲取固與)』란 말씀.
하─그러면 그 해적단을 어떻게 말끔히 씨를 말려버릴까 궁리해봤습니다.
그래서 잡혀온 서너명 그 해적이 물밖에 나온 고래새끼로 여겨지는 까닭은 고래가 모래사장으로 나오면 한낱 통나무에 불과하고, 마치 호랑이가 산을 나서면 잡견(똥개)에게 치욕을 당한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이 서너명의 소마리아 해적을 이용하여 이간계(離間計)를 써서 8조(組. 가정) 이상의 두목을 잔살(殘殺)시키려면 우둔한 리더를 스스로 개가 되도록하고, 해적 골드 D. 로져 급수를 사략선장으로 임명하여 권능을 부여한 후 해적을 소탕하고. 이 넘이 타락, 배신하도록 기름을 부어 불나게하여 마치 호랑이가 산을 떠나도록 하는 조호이산계(調虎離山計)를 써야겠네요.
과거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게된 일본측, 특히 대마도출신 기독교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밀정, 통역 '요시라'가 있섰지요.
이 '요시라(要時羅)'의 본명은 '카케하시 시치타이후(梯七大夫제칠대부)'.
이 한 사람의 반간계(反間計)로 선조대왕의 조정이 흔들렸섰지요.
이런 마타하리 첩자를 보내자는 궁리입니다.
남장여인 '가와시마 요시꼬(천도방자川島芳子. 중국태생 金璧輝), 초선(貂蟬), 안강(安康)공주, ..역(役)을 보내자는 게 아니고, 주은래(周恩來)의 오호책획(伍豪策劃)을 하잔 겁니다.
그렇게 환송한다면 우리가 그 해적소굴에 들어가 진멸되는 기간을 몸달아 지켜볼 필요가 없다 싶네요.
마치 조폭 A를 소탕하려면 형사가 깡패 B를 써야 하고, 깡패 B를 조지려면 깡패 C를 부리고, 이들이 하나씩 잔멸되어 나가면, 땅바닥에 자빠진 마지막 도미노 깡패에게 쉽게 수갑을 채우면 되겠지요.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언제나 그 조직폭력단, 큰 도적떼(대도大盜), 해적에게 도(道)가 있는 바 군대 규율. 배반하면 죽이는 것을 의(義)의 첫째로. 그리고 자신하고 나갔다가 실적없이 헛되게 돌아오면 처벌.
그러나 세상은 그리 냉혹한, 그 무자비한 형벌이 가해지지 아니함에도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듯, 처자권속 배 굶길 수 없서 할 수 없이 해적질해먹고 사니 그 삶은 창녀행위에 가히 비교할 수 없이 나쁜 약탈, 상해살인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소마리아 경제를 '부흥'시키는 방법을 쓰면 얼마나 좋겠서요? 까닭은 그들이 왜 해적소굴이 됐을가를 생각하면 정치부재.
주민이 가난하여 굶어죽음에 처한 사람이 자진해서 정부에게 구조를 요청하지 않고, 위정자는 그들이 죽게 될 템이 뻔한데 그저 모른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레 8:11
물론 '부흥'이란 말은 적확하지 않겠지요. 갸넘들이 언제 문명이 발달됬다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초토화되어 홀딱 망하기전의 문명이 있섰서야 '부흥, 재건'이란 말을 쓸 수 있읍니다만, ..안쓰럽게도 현하 북한주민 실정 또한 이와 같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사마귀(버마재비)가 매미를 잡으려는 괴이한 모습, 당랑포선(螳螂捕蟬)의 순리로도 제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전에 장주(莊周;장자)가 밤나무밭을 거닐다가 ... 약한 놈이 강한 놈에게 당하는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을 보게되는데;
나무가지에 붙은 매미가 정신없이 울고 있는데 사마귀가 그 목을 쳐서 잡어 먹으려고 살금갈금 다가가는데 이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참새가 목을 빼어 막 쪼으려 하고 있섰고, 참새는 자기가 활을 내어 참새를 쏘려하는 걸 모르고 있섰고, 장자 역시 밤나무밭을 지키는 사람에게 도둑으로 오해되어 자기 뒤를 밟고 오는 걸 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참새와 장자는 죄의 대가로 벌을 받지 않아도 될 성 싶기에 의로운 체하는, 필요없는 의로움, 괴물의 심술 벌을 이 세상이 피하면 좋겠다 여겨집니다.
까닭은 역사이래로 언제나 곤궁에 처하고 가난과 전쟁 속에서 거부가 태어나는 이재(理財)의 기회가 있고 그 고통의 기회를 선용(善用)하는 '큰 사람'이 그 어지러운 세상에 나와 뼈를 깍은 의로움이 태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아예 별볼일 없기에 저를 포함한 별볼일 없는 우리 민족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의 세계지도자적 사명에 소망과 자신을 가지고 있는 분깃을 생각하곤 합니다.
외세에 밤낮 당하고고만 산 우리 민족이 그 까닭을 직시한다면 역대 왕조의 창업(創業)이 세계사(史)적 사명이 없섰기 때문이요, '성을 잘 지키지(守城)' 못하여 매미가 된 것이요, 나누어줌이 부족한 창업이었고, 내(우리나라)가 매미이기에 참새를 쏘아죽이지 않는 인간 장자의 식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그럼 대양을 지나가는 상선이 매미, 버마제비가 해적, 우리나라 해병대가 참새라면, 이 버마제비를 미국에서 데려간다면 한국의 처지는 뭐가 됩니까?
소마리아 소탕작전에서 제가 느낀 점이 범위가 넓혀저 제 마음의 초점이 흐려지는데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이념을 초극하고, 민주ㆍ공산이념, 제 3의 이념 그리고 군사정권정치든 선거에 의한 정권이든 그들이 국민을 굶긴다면 소마리아, 북한 그리고 이집트에게 양곡을 공여해야 우리나라의 세계사적 의미가 의롭다 여기는 걸 어찌 합니까?
아이 휴~~ 이 세상엔 혀 내두를 만한 무지 똑똑한 분이 많아 이 방책을 명철한 이가 있서 차시환혼(借屍還魂)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더구만요, '시끄럽고 못생긴 넘들을 상대하는 환유'라면서.
제 생각에 우리나라가 구인(拘引)해온 해적을 미국, 소련 아니면 유엔에 넘겨줄 경우 양곡을 받아 그 가난한 나라로 송출해 줌이 이 글을 올리는 해결책이라 여깁니다.
제가 소마리아, 북한 그리고 에집트 주민을 편들어 줌은 하느님이 제 멋대로 행동해온 그들에 대한 격노를 돌이켜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예레 18:20, 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