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옛날을 탐방해본 구경꾼.
그 죽어간 수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인 덕성'으로 나아가는 그 '목표가 진리'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길에 진리를 낚으려는 한 낚시터 돌팍에 앉아 저도 구경했더랬지요. 반계(磻溪)라던가 하는 곳. 맞군요. 드리운 낚시대 끝에 낚시바늘이 없어요.
부처님이 물을 바라보며 설법하시는 모습은 중간크기 물고기를 보시고 있고, 예수님은 어느 쪽에 가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고, 그 중에 돈을 삼킨 물고기가 어느 놈인지 아시데요.
이 두 분이 물고기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윤리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물고기 자체를 말씀 안하시더군요.
저는 삶의 목적인 사랑에 대한 이 말씀을 듣고는 진리에 대해서는 뾰죽하게 말씀들을 안 하시는 것으로 느꼈읍니다. 즉 과학적 사실을 빼셨단 말씀.
부처님의 그 윤리는 '없다고도 말고 있다고도 말고 가운데 중도',-'용수, 마명, 원효, 천태지자¹'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윤리는 토마스 제퍼슨 '나자렛 예수의 삶과 도덕³'으로 압축되나 보다고 느꼈읍니다.
까닭은 가톨릭적인 예수님 윤리는 진정한 과학적 사고 방식이 아닌 2부 구조 '몸'과 '영혼'의 4영역 '감각ㆍ정서ㆍ지성ㆍ영성'이지 계량하는 과학방정식이 아니기 때문.
까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대상 역시 감각, 지각, 의지와 인식.
거기서 거기.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아는 것이 삶에 무슨 도움이 되나'고 물으셨읍니다². 그러면 여쭙겠읍니다. '윤리가 삶에 무슨 편리가 있읍니까, 소크라테스님?'
그러므로 과학적 사실이 윤리적으로 쓰일 때에 진리란 걸 깨달았읍니다.
따라서 현대과학에 무식한 교역자/목사, 사제는 각각 학문과학에 기력을 떨치고, 각자 마음과 뜻을 힘써서, 그로 하여금 신자 사랑하는 것을 자기 몸 사랑하듯 해야 바람직스럽다고 여겼읍니다.
---------------------------------------------------------------------------- ¹. 龍樹(Nagarjuna. na.dragon+garjuna. tree), 馬鳴(Maming. Asvaghosa, devanagari. 阿濕縛膏沙), 元曉(薛誓幢), 天台智者
². 기원전 400년경에 월식이 일어나 아테네 시민이 동요했을 때 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가 최초로 월식을 해명하는 글을 썼더니, 신을 얕잡아 본다며 불경죄로 감옥에 집어 넣고, 프로타고라스는 추방되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한 말로서 자연과학 사고방식에 불가지론을 폈음.
그 후, 천동설을 주장하여 그들의 비위에 맞는 프톨레마이오스를, 정반대로 지동설을 편 코페르니쿠스와 비교한 갈릴레이는 22일 동안 감옥에 들어 갔음.
³. Thomas Jefferson. Life and Morals of Jesus of Nazareth 167 page volume. A redaction of the four Gospels. 1803 Beacon Press 1989
성서 66권 1,011페이지 분량 중에서 마태복음서에서 64, 마가복음서에서 24, 루가복음서에서 46, 그리고 요한복음서에서 29구절, 소계 163구절만 뽑아 167페이지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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