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을 무조건 질타하는 비지성적 문외한 이경숙 여사에 대하여 노자가 남긴 책으로 여기는 도덕경 제 11장을 중심으로 이경숙 여사를 사실에 입각해 비판함.
※ ┏'수레의 사용은 바퀴의 빔(바퀴살 輻)에 있다.' 이렇게 절묘한 비유를 들어도 도올처럼 못 알아먹으면 소용없다"┛니, .. 누가(이경숙) 누구(도올)에게 할 소린가!
이여사는 수레 바퀴살이 모두 가운데 있는 속바퀴통에 꼽히는 것은 알아도, 이 속바퀴통에 차축이 끼어들어야 차가 굴러감을 몰랐다. 즉 폭주병진(輻輳倂臻)은 알아도, 현지진입곡(賢軹進入轂)을 몰랐다. 마차나 자전거를 유심히 보지도 않았고 타 본 경험이 없는 것 같음.
다음은 두 사람의 임상적 실험.
이경숙: 철학하는 사람에게 특히 요구되는 것은 추론능력이다.
dkp: 동의한다. 그러나 마차바퀴살을 추론하면 안된다. 노자가 말하는 30개 바퀴살은 길거리에도, 자전거 바퀴, 우산살같은 걸 말하는 건데 이 모양 사실에 철학적 추론은 금물이다. 이경숙 여사는 ≪老子노자를 웃긴 남자男子≫ p. 19~30에서 엽기적인 인기주의 아니었던가?
이경숙: 뭐 말입니까?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dkp: 이여사는 노자가 말하는 그 '없음(無)'을 바퀴살, 자전거살[폭輻]로 여긴 것 자체가 틀렸읍니다. 그 게 아니고 그 바퀴살이 끼워지고 굴대 차축을 끼워 넣어야 하는 속바퀴에 뚫어진 구멍을 노자가 말한 겁니다. 이 구멍[虛]을 맹하게 뚫어놓은 게 아니라는 거죠. 마차에 가까운 쪽 속바퀴 구멍은 좀 커서 크게 뚫어진 대천공(大穿孔)이라고 현(賢)구멍이라 부르고, 바깥 쪽 구멍은 지름이 조금 작아 굴대머리 지(軹)구멍, 소천공(小穿孔)이라는 겁니다.
어렵게 생각할 꺼 없읍니다. 이 선생과 나 사이에~~ 남자와 여자로서 젓박기할 때 아랫동네에서 갸들이 무슨 짓하고 있는질 연상하면 됩니다만.
이경숙: 그래 한 번 해봅시다.(깨를 홀딱 벗는다.) dkp: 흐 흠! 골체미도 둏지만 샤워부터 합세다. (을마 후 돌아와 둘 다 홀랑 벗고 가랑이 벌리며 아랫동네를 관찰함)
dkp: 꼭 낄 때에 돈 100불 달라기 업끼요, 무원삼매(無願三昧) 파정(破精), 같이 싸기요! 이 여사: 예 엥~~! dkp: 이 소음순에 뚫어진 질구는 허(虛), 공연히 뚫어진 게 아니기에 질벽을 속바퀴통 곡(轂)이라 하오. 노자가 말한 마땅히 막히지 않고 뚫어져야 할 그 없음-당기무(當其無). 구멍 막히면 석녀(石女), 막히면 당연히 차 굴대끝이 격(毄 os uteri)에 못 가지요. 그러니까 회음부 거웃 살갗 바퀴살(輻)에, 차축을 박을 수 없죠. 이 건 잠지가 음곡(陰轂)에서 빠진 오나니 중절행위(coitus interruptus)인겁니다.
애구(愛ㅁ)! 좀 만졌더니 졘장 금강저(vajra)를 실린더에 박기도 전에 오일. 이런 바치는(be addicted to vajra) 현상을 대립되는 음양의 의존성(interdependence of Yin and Yang), 덩달아 내 굴대끝 귀두채 원(轅)에도 참이슬이 한 방울 맺힌 걸 음양의 이심전심 소장(Inter-consuming-supporting relationship of Yin and Yang)이라 하오.
구멍/음/질이 없으면 들어갈 놈이 없고, 들어갈 피스톤이 없으면 실린더 구멍이 필요없다. 이젬부터 낄 것 끼지, 존댓말 읍끼요. 하뭉, 허(虛)가 없으면 굴대/양/젓 없고, 굴대 없이 마차는 가지 않기에
이 여사가 노자 도덕경 바퀴살 30개(30폭)가 한군데 속바퀴통에 모이고(공일곡). 역시 이 속바퀴통속에 차축(굴대)이 지금 제 대물처럼 이렇게 미끄러워진 구멍에 쑤욱 끼어짐을 모른게요. 이 점 도올 김용옥이 제대로 해석했단 말입니다
↘↓↙☜ 바퀴살 폭(輻) →⊙ ←ㅡ 까만 동그라미 속바퀴통 곡轂/ 까만 구멍 허(虛), 차축 굴대끝軹(지)이 박을 구멍 ↗↑↖
어 어 죽네요, 죽어 가. 그렇게 둏습니까. 돼게 밝히시네. 이제 겨우 좀 넣었는데, 나 참! 그대 당신 잠지가 빈구멍이라 해도 다 쓰임새 있듯 노자의 '무(無)' 사상은 존재론적이란 말입니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이렇게 속임이 없단 뜻. 무극(無極)은 '텅빈 무엇', 올가즘이란 부풀려(orgamein) 동굴을 채운다. 구합(媾合)이란 성교로 공간을 메꾸는 것. 넣다 뺐다하는 건 있음과 없음의 조작(unit operation). 극적으로 전률하는 올가즘생리반응을 얻으려는 행위. 연한 자극으로 쾌감느끼는 조건반사, 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 지금 어디까지나 모화(慕華), 부다(佛陀)의 순교자가 아님요. 쌍고랑 말코 다 훌훌 털어 교접의 환희 맞춤(orgasmic synchronicity).
지금 여기 필요없는 말이지만 불교 공(空)사상 역시 존재론적.
이상으로 이론 빼고, 나를 빼고, 관심 끊고, 도올 말을 100% 죄다 믿는 것도 아니고 도올(道兀)을 인정, 대단한. 어려서 별명 돌대가리, 그의 말도 빼고.
【도올 ≪노자와 21세기≫ 130쪽-131쪽 상단에 대한 이경숙 평
≪노자를 웃긴 남자≫ 70-73쪽에서 이경숙: 뚜잉!$≒♂&%&‰# 통! 떼구루루루루루루~~ 야 대글빡은 천연기념물이다. 아니다. 국보다.】 ^-^ ★★★ ★★ ★ ↓↓ 이 삼촌 책에 써 있다면 배가 아파 죽는 조카들. ㅎㅎㅎ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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