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화는 '물고기를 주는 기부문화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아르쳐주는 것.
일례로 1977년도에 미국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5천만불 자금을 대주어 실업자에게 직업훈련ㆍ공공사업 등을 행한 계획(CETA. Comprehensive Employment Training Act)으로 목공, 용접, 차량정비 기술을 게을러 구호받는 젊은 남녀들을 포함하여 출석을 엄격히 하고 강화훈련(Intensive discipline)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성서적으로나 사실상 물질적 재화는 그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며, 부지런하고 명석하게 탈란트를 키워내는 것 역시 능력.
역시 자유, 정의, 동등은 사회발전의 특성이지만, 무한도전에서 누구라도 버금가는 방법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무한사유공용(無限私有共用)의 동등권을 주장하면 효율적인 자유가 억제되어 국민의 자기(自己) 결정권이 위축됨.
그러나 부익부ㆍ빈익빈 효과가 나오면 자유경쟁에서 사유권이 절대권리로 주장되어 사회적 책임이 없다는 증거.
그러므로 무절제한 자유방임주의는 국제적 거부와 자본국가 공룡을 만들기에 현하 국가별 자본주에게 자유가 억압되지 않는 범위에서 토마스 제퍼슨의 자유론과 에이브라함 링컨의 민주정신에 중조(仲調. 中道)되도록 강자에게는 자유를, 약자 국민에게는 동등권을 정의롭게 베플기 위해 공권력의 개입이 버금가는 보조성으로 개입이 되어야 한답니다.
언제인가 맑시스트 브레흐트가 『모든 것을 자본시장에 내어 놓는 미국같은 공룡*이 강요된 애국심과 소돔의 방탕으로 종말을 마지할 꺼라는 예언』이 맞지 않게 된 까닭은 자본민주주의를 수정해나아갔기 때문.-*Brecht, Bertolt. Rise and Fall Of the City of Mahagonny 1929
그러므로 자본민주주의가 시련에 부딪치고 있지만 그 정의(正義)가 윤리적 사랑, 정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서야.
까닭은 의(義)롭다 함은 진리스럽다는 게 아니라 수정해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