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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석원의 서울 戀歌 ‘욕망 광장’ 종묘공원, 6070 노상주점서 기습뽀뽀
글쓴이 : ssw 날짜 : 2012-10-21 (일) 13:09 조회 : 1056
[문화] 사석원의 서울 戀歌
‘욕망 광장’ 종묘공원, 6070 노상주점서 기습뽀뽀
⑧종로-2
“나도 왕년엔 한가락 했어.” 저마다 왕년을 회상하는 노인들의 영토가 종로에 있다. 탑골공원과 종묘 일대다. 젊은이들의 거리 종로2가에서 네거리를 건너가면 담벼락이 보인다. 탑골공원이라 부르지만 예전엔 주로 파고다공원이라 불렀다. 파고다는 ‘탑’이란 뜻이다. 공원 안에 국보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있기 때문. 보물 3호인 원각사 비도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지만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곳이기도 하다. 공원 담을 끼고 점집들이 늘어서 있다. 열두 채쯤 사주, 타로, 운세, 연애운, 애정운 등을 본다는데 점값은 3000원씩. 비싸지 않은 가격 때문에 불현듯 점쟁이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요?” 1988년 올림픽을 맞아 탑골공원이 무료가 됐고 교통 좋은 탑골공원으로 노인들은 몰렸다. 단지 교통만 좋은 것이 이유만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젊음을 보낸 이들에게 종로는 자신의 전성시절 본거지였을 것이리라. 왕년엔 종로에서 진탕 놀아도 보고 때론 꽤 큰돈도 만져 보면서 종로와 함께 나이 든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만 왕년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옛날은 모르더라도 종로는 서울의 왕년을 대표하는 중심지였다. 왕이 행차하는 길이었으며 최초로 전찻길이 놓인 곳도 종로였다. 1968년 서울시장 김현옥에 의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70년간 전찻길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또 전차를 대신해 대한민국 최초로 지하철 1호선이 등장한 곳도 종로다. 1974년 8월15일 역사적인 운행을 시작할 때만도 종로는 전성기를 이어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종로가 서울의 중심이라고 말할 순 없게 됐다. 명동이나 강남에 비해 쇠락하면서 계속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기, 휘문, 숙명, 창덕 등 고등학교도 옮겨 갔고 종로 언저리 서울대도 한강 너머로 이전했다. 종로2가부터의 대로변엔 어찌된 영문인지 새로 지어진 건물도 거의 없다. 대부분 40년 이상 나이 먹은 건물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에게 기억 속의 도심은 오직 한곳 종로뿐이다. 가장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영화를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종로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 있는 외로운 공간 탑골공원에 모여 잘나갔던 왕년을 되씹고 있다. 

2012년 8월17일 오후의 탑골공원은 한산했다. 무더위 탓도 있겠지만 종묘 주변으로 노인들이 대거 이동한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공원 안에서 젊은 외국 여성과 일흔이 좀 넘어 보이는 노인이 영어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 간다. 예사롭지 않은 영어 실력이다. 한땐 만만치 않은 왕년을 보냈으리라. 구경하던 수염이 덥수룩한 외국 남자가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찍어 주었지만 갑작스러운 외국어에 사실 약간 당황했다.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과 독립선언서를 대충 훑어보다가 정문 옆에 있는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공원 밖의 풍경이 환히 보이고 소리도 잘 들렸다. 확성기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공원 정문 바로 옆에서 ‘불신 염원 지옥, 예수 영원 천국’이라는 휘장을 세운 이들이 아주 큰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다. 남녀 일곱 여덟 명쯤이 떼를 지어 노래한다. 마흔가량 된 여자는 두 손을 부여잡고 눈을 감은 채 연신 중얼댄다. 기도를 하는 모양이다. 엄청난 믿음이다.

공원을 나와 종로3가 지하철 역쪽으로 가다 보면 건너편 지금 국일관 근처에 로젠켈러라는 고고장이 1980년 초에 생겼었다. 그전까진 저렴한 종각의 마패란 곳이 성업했다. 시설 좋은 로젠켈러가 생기자 단박에 당대 서울 오렌지족들의 아지트가 됐다. 우리 과에 마산서 온 예쁘장한 여학생이 꽤 놀 줄 아는 댄싱걸이라 친구들과 몇 번 놀러 간 기억이 있다. 본시 가무엔 흥미도 소질도 없어 자리에서 소지품만 지키고 있는 게 내 역할. 그런데 나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노랗고 빨간 무도장 조명만 보면 이상하게도 잠이 쏟아진다. 조는 게 아니라 까무러친 것처럼 잠이 들어 코를 골기도 한다. 그러다가 웨이터에게 쫓겨난 적도 있다.

종로3가 네거리엔 유명한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롯데시네마란 이름으로 피카디리만 남아 있지만 그 시절 개봉관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상영시간이 끝나면 극장 옆 물만두 전문 중국집도 초만원이었고. 중학교 3학년이던 1975년 여름날, 갑자기 눈이 나빠져 종로3가에서 안경이란 걸 처음으로 맞춰 쓰고는 잘 보이는지 시험하고파 한낮에 단성사로 가서 혼자 영화를 봤다. 은테 안경이었다. 18세 이상 입장인데 웬일인지 입구에서 무사 통과됐다. 로저 무어 주연의 ‘골드’란 영화였다. 남아공의 금광을 둘러싼 암투를 그린 영화. 그로부터 10년쯤 후에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007영화 홍보차 프랑스에 온 로저 무어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그때의 느낌이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렇게 잘날 수가! 비록 목엔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깊게 파였지만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다.

“오빤 복이 많은 사람이여.” 남자의 너스레에 여자가 맞장구를 치며 비위를 맞춘다. 흐뭇한 미소가 남자의 얼굴에 가득하다. 모아 놓은 돈이 있다고 남자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남잔 칠십서너 살쯤, 그리고 합석한 여자 둘은 육십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남자 얼굴이 기분 좋은 하회탈같이 정감있게 생겼다. 종묘공원 이쁜이네 노상주점에선 아직 한낮인데 세 남녀는 이미 얼큰하게 취했다. 비어진 생맥주잔 바닥엔 게거품만 뽀글거린다. “뽀뽀도 했냐?” 여자가 물어본다. 몇 번 뽀뽀에 관한 대화가 오가더니 그중 반반하게 생긴 아줌마가 느닷없이 남자에게 뽀뽀를 하고는 만원만 달라고 한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남자가 만원을 준다. 나머지 한 여자가 “오빠 나 술 취했다. 기분이다. 5000원만 줘 봐, 내가 뽀뽀해 줄게”하며 수작을 부린다. 돈 받은 여자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박자를 맞춘다. 흥을 돋는다. 아이고 아저씨, 좋아 죽는다.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 종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절묘한 긴장감과 비례미에 국내외 건축가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듣는 한국의, 아니 인류의 자랑이다. 그런 종묘가 노인들로 인산인해다. 황혼광장이다. 일제강점기에 꼿꼿한 교육자로 유명한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종묘공원엔 날씨만 나쁘지 않다면 수백 명의 노인들이 일제히 하루 온종일 바둑을 둔다.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둑이라는 매우 느린 놀이를 통해 꽤 효과적이고 그러면서도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가장자리엔 주점들이 늘어서 있다. 막걸리 한 양재기나 큰 종이컵으로 소주 한 잔이 1000원. 아줌마들도 많다. 이미 술 취한 분도 계시고 호시탐탐 접선할 기회를 엿보는 분도 계신다. 이곳은 노인들을 위한 욕망의 공간이다. 박범신이 소설 ‘은교’에서 말했지. ‘젊음이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늙음도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맞다! 노인의 욕망은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그냥 자연일 뿐이다. 종묘공원은 어쩌면 젊은이들보다도 더 뜨거운 노인들의 욕망으로 몸부림치며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절망할 정도로 외롭기에.

또 다른 한 남자가 부러운 표정으로 이쁜이네 노상 주점에 다가와 합석할 기회를 엿본다. 여의치 않자 입맛만 다신다. 만원을 손에 쥔 아줌마가 슬그머니 자릴 뜬다. 저만치 가더니 어느 아저씰 붙잡고는 “오빠, 보고 싶었는데 어디 갔었어?” 능력있는 아줌마다. 

종로3가엔 상패, 트로피가게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하시던 양장점이 기성복에 밀려 접고는 잠시 하숙도 해 봤지만 여의치 않아 고민 끝에 부모님은 종로3가에 오성사란 상패가게를 여셨다. 내가 중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종로 큰 길가는 아니고 뒷골목에 위치한 누추한 가게였다. 3대가 모여 사는 우리 대가족의 미래는 작은 상패가게 오성사의 수입에 달렸다. 다행히 몇 군데의 굵직한 단골이 생겼다. 모 무용대회에서 필요한 모든 상패와 트로피를 고정적으로 맡게 됐고 동아일보사의 판촉물도 수주하게 됐다. 특히 무용대회는 자주 열렸으며 그때마다 수상자들이 어마하게 많았다. 어머니의 진실함과 아버지의 순수함이 손님들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장 부장이라는 뚝심있고 재능 많은 직원을 둔 이유도 있었다. 한창 바쁠 때는 고모들이나 여동생, 내 친구들까지도 가게 일을 도왔다.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로 태어나 명문대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신 아버지는 그리 절실한 것이 없었던 유순하고 낭만적이고 아는 것 많은 도련님이었다. 점점 가세가 나빠져 갔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식솔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진 터무니없을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난감해하진 않으셨다. 그동안 생활은 어머님의 몫이었다. 아버지에게 세계는 꿈꾸는 동화 속이었고 봄날의 노랑나비처럼 세상을 유유자적하셨다.

오성사란 상패집을 시작한 것은 아버지로선 커다란 용기였다. 우아한 나비 한 마리가 천적이 우글대는 정글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꿈과 현실 사이에서 엉거주춤하셨다. 어머니가 가게 일을 도우실 때까지는 그런 대로 안정감이 있었지만 후일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상황은 급격히 위태로워졌고 결국 가게를 직원에게 넘겨주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아버진 술을 가르쳐 주신다며 종로3가 뒷골목의 허름한 일식집에서 소주를 따라 주셨다. 그날 많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아버진 진작부터 내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모르셨다. 어쩌면 자식들을 세상에서 제일 잘 모르는 사람이 부모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버진 아주 많이 취하셨고 겨우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빚은 자꾸 쌓여 갔다. 어쩔 수 없이 유학 가 있던 내가 중도에 돌아와 고액 과외로 그 많던 집안의 빚을 2년 만에 모두 청산했다. 오랫동안 오성사에 재직했던 장 부장에게 가게를 넘겨주셨다. 그때는 업소전화번호가 매우 중요했다. 아버진 늘 내게 미안해하셨다. 뭔가 물려주고 싶어 하셨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오성사는 끝번호가 3000이란 좋은 번호를 갖고 있었고 그 번호라도 나에게 남겨 주려 하셨다. 하지만 내겐 그런 전화번호는 필요 없다며 간곡히 사양했고 지금도 장 부장님이 그 번호로 오성사를 꾸려 가고 계신다.

중학교 때 살던 동대문구 휘경동 247번지 집은 마당이 넓어 많은 동물을 길렀다. 그중 토끼도 있었는데 가끔 토끼가 죽으면 남동생과 껍질을 정성껏 벗겨 종로5가의 가죽가게에 가서 팔았다. 마리당 200원씩 쳐주었다. 당시 종로5가엔 박제, 가죽가게가 많았고 동생은 특기를 살려 의사가 됐다.

그레이하운드란 미국서 들여온 고속버스를 종로6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본 적이 있다. 이층이었고 화장실도 있는 거대한 미국같이 생긴 버스였다.

아주 어릴 적 그곳에서 전차를 탄 적도 있었다. 고모랑 같이 탔는데 표 받는 운전사가 친척 아저씨였다. 반갑다며 우리에겐 표를 안 받으셨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종로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다. 궤도를 따라 느릿느릿 가는 전차처럼 종로는 여전히 내겐 여유로운 추억의 보따리다. 따사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비단보따리 말이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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