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기력을 떨치며 각각 마음과 뜻을 힘써서
그로 하여금 나라 사랑하는 것을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남의 나라 아래가 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뼛속 깊이 느끼며 능히 만인의 마음으로
써 한 마음이 되면 곧 거의 그 죽음 가운데서 삶을 구하는 도가 된다.
각분기력(各奮氣力)하여 각려심지(各勵心志)하여
사애국(使愛國)을 승어애신(勝於愛身)하고
오위인하(惡爲人下)를 심어오사(甚於惡死)하여
능이만인지심(能以萬人之心)으로 위일심(爲一心)이면
즉서호기위사중구생도이(則庶乎其爲死中求生道耳)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흥선대원군이 1전이 100전된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여 경복궁을 개축하려 하자 그 궁궐개축으로 물가상승이 일어난다고 상소했다가 국부를 능멸했다는 죄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고 풀려난 후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보호받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됬기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여 일본 순사(경찰)가 대마도로 끌고갔으나 그들의 음식을 먹지 않으시다가 기진하여 길에서 죽으시다.
위리안치(圍籬安置): 멀리 쫓아버린 배소(配所)에 가시 울타리를 쳐놓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죄인을 그 안에 가두는 형벌.
'죽기를 바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순신.
사욕생(死欲生), 생욕사(生欲死).
난중일기(亂中日記. 본래 제목 없음)에 이순신 장군이 식중독을 고치시려고 당 왕도(王燾) 편 외대비요(外臺秘要)에 수재된 천오, 파두상이 함유된 온백환(溫白丸)을 복용함.-이순신장군 일기 1593년 5월 18일
그 무렵 설사병이 대유행. 진주에서 일본군이 집단식중독.
우리 병사들도 마찬가지.
이 순신 장군이 복용한 약은 성질이 표독하고 많은 설사를 시키기에 쓰이지 않는 극약. 쉴 사이 없이 적군을 막아야 하셨기에.
같은 해 병마절도사 최경희 소첩 논개의 죽음이 알려지자 안타깝게 여기시고 일기에 기록.
왜장 케야무라 로쿠수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쌍폐(雙斃).
투신된 쌍폐에 대해 사무라이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ignominious death)이라고 스티픈 턴벌(Stephen Turnbull)이 기록.
논개의 경우는 순절한 정사(a double suicide for the nation).
이순신 장군이 죽기 아니면 살기를 작정하고 드신 그 온백원 방제:
포(炮)천오, 시호, 길경, 초(炒)오수유, 창포, 자원, 황련, 포(炮)강, 육계, 복령, 천초, 인삼, 강(薑)후박, 구(灸)조각, 거피(去皮)파두.
사실은 항생제가 없는 그 당시에 이 장군이 할미꽃 뿌리 상한론방(傷寒論方) 백두옹탕(白頭翁湯)을 쓰셔야 했섰습니다.
또 한 번은 설사 몸살에 소주를 마셔 쑤신 몸을 풀려고 하시다가 그 이질에 소주를 마셨기에 이틀간 혼수상태에 빠져 난중일기를 이틀간 쓰지 못하심.
이질에 몸 쑤시다고 설사몸살을 술로 풀려함은 절대로 안됨.
이질, 콜레라(호열자), 물 싸듯하는 죽통(竹筒)설사, 병원균이 없는데 장(腸)이 약해 우유를 마시지 않는데도 식후면 배변해야 하는 멍청이 설사(idiopathic sprue diarrhea)를 하는 분은 깨끗한 물을 마셔 탈수증을 막아만 주면 체중이 줄지 않습니다.
단, 히말라야 등정,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얻은 법정 전염병인 박테리아 이질(적리), 하얀 곱이 변에 섞인 아메바 이질 및 토하고 설사하고 배 아프고 열이 40℃로 치솟는 콜레라의 경우에는 간[간장], 신장[콩팥]에서 이 병원균을 몰아내면서 염증을 일으키므로 그 탈수증을 막아주되 적절한 항생제 처방, 그리고/또는 입원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벤자민 프랭크린이 형 밑에서 살다가 단돈 5불인가를 지참하고 집을 나서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배탈설사를 만나 책에 쓰인대로 물을 자꾸 마셔 탈수를 막아 고쳤음.
다음 해에 승병장, 시인 유정 사명당이 일본에서 문답한 진중초기를 받아 본 이순신 장군이 '안타깝다'고 기록.
진중초기란 정부에서 편집한 전란 중의 잡글(the wartime miscellaneous article edited by government).
나라 사랑하는 분에게 보약은 없다. 오직 독약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