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좀 네모난 엘리게이터가 미국에 많아 이 것의 울퉁불퉁한 꼬리 마디를 소꼬리처럼 잘라 밀가루에 묻혀 튀긴 먹꺼리를 미국에서 '악어 원형 돋을 새김(엘리게이러 메달리온)'
그렇다면 악어의 목적은 주방장에게 꼬리 끊겨 튀겨지는 삶인가요?
그렇지만(악어와 예수님을 평행수사修辭할 수야 절대 없지만 ㅋ)
예수님이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아브라함보다 1천살 적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섰고"(요 8:58),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 ..알파요 오메가"(묵 1:8)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주셨다"(요 10:36)라면 예수님 공생애의 목적은 하느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졸저 역설적 진리 86쪽
그리고 '~색즉시공~'이 기록된 반야심경을 설법한 관세음보살(여자)은 자신이 아승지 억겁 전에 천광왕정주 여래 때에 살았섰다고(나이 젊은 여인이라고 날 얕잡아 보지 마세용?) 부처에게 말했고(대비심다라니경. 무량수경),
석가(이 분은 분명히 남자)는 '(오호 그래유 보살님. 고럼 나는 그) 기나긴 전생을 보살로써 온갓 수행을 다 겪은 후 그 과보로서(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의해 필연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대원력(大願力)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그러니 내가 선배보살이요)라고 알려져 있습니다.78
이 정도 구라 뻥, 아니면 이 정도의 급수가 아니라면 사랑을 찾는 게 소박하고 참된 인생의 목적인 것 같다고 여깁니다.
풀이된 바, 하느님은 사랑 자체, 말씀. 부처님 말씀 역시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도 절대적이라며 자비를 강조. 자(慈)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요, 비(悲)는 자신과 남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
그 탈무드의 초석을 세운 힐렐(Hillel)이나 이 분보다 약 1세기 후에 태어나신 예수님이나 '율법의 근본에는 자비의 필요, 즉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시켜줄 말'이고 그 나머지는 해석이니 자 어서 가서 공부하라.'(Shabbat 31 a)
그러므로 이 황금률 이외의 그 나머지가 별의 별 것.
그 사냥꾼의 목적은 악어 꼬리를 짤라서 돈 받고 식당에 공급하려고 악어를 목표하여 긴 작살로 잡아올릴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것도 이에 연기(緣起)됨은 돈 벌어 4X4 픽업트럭을 살 목적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 역시 계명 중에서 첫째가는 계명과 둘째가는 계명은 '하느님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보다 큰 계명은 없다라셨습니다.
즉 지도자이든 졸개든 다 똑같이 사랑찾는 게 목적이요, 사랑을 베풀면 지도자요, 사랑을 받으면 졸개.
살생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을 아르쳐 주기에 군사부(君師父) 일체, 아니면 걸왕, 주왕같은 폭군스런 지도자, 아니면 멀쩡하게 눈뜨고 귀 잘들리는데도 '고수(장님+귀먹어리)'라 소문난 패덕스런 순(舜)의 아버지.
그러므로 1993년 당해년 다라이라마가 인생의 목적은 어느 종교이고 간에 인간애의 목표를 신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수평적 동일성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119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 철학자 프라토의 기본 7덕목에 대해 곰곰히 묵상한 후 고린도 전 13장에서 환경과 사물을 최대한 파괴살생하지 말라고 프라토의 '사랑이란 덕목이 인생의 목적'이라며 신앙인의 생활관에서의 으뜸이라며 신학적으로 승화한 것이라고들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