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과학의 결정체, 에센스라고 부릅니다만 진리가 아닌 것같습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진리'란 없고 언어일 뿐, 육하원칙을 만족하는 것은 '삶'과 '죽음'뿐이라 가정하기 때문.
이 가정을 쉽게 아래와 같이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의 경우를 예화로 들어보겠습니다.
육하(六何)원칙에서;
1. 무엇이(Who:주체세력);개미가
2. 언제(When:시간);바깥 날이 좋을 때에
3. 어디에서(Where:공간);집 기둥 밑에서
4. 어느 것으로(Which:생존본능);흙 대신에
5. 무엇을(What목적물);빵 부스러기를
6.어떻게(How:과학);여섯 발가락을 지렛목으로 사용하여 끌고 간다. 이 '어떻게'를 밝히면 박사학위를 얻습니다. 그 '이유(Why)'가 되는 섭리를 몰라도 Ph.D 학위 받게됩니다.
오직 '삶'과 '죽음'만이 진리. 아래에 나오시는 지존이 이런 말씀하실 때 등잔 밑에 있지 마시길. 너무 가깝게 있으면 아둔하지요.
그러므로 '이유'를 논하지 않고, 오직 '무엇'이 '어떻게'라 설명하는 금강경에서 '진리는 없다. 고로 얻은 바가 없다'라고 설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 개미가 과학적 사고방식 중의 하나로 알키메데스 지렛대 원리로 먹이를 끌고 가든 말든, 개미는 죽음의 현실문제에 부닥쳐 본능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며, 가능하면 번식하고자 하는 삶의 현장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수학공식, 공리, 약속은 진리가 아니고 '어떻게'에 이용되는 도구입니다. 수학은 진리로 나아가는 도(道). 그러기에 누구들, 수학천재가 있지요?
그들이 7개의 어려운 수학적 추측을 남겨 놓으며, 이 것이 '진리'문제라 말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프랑스 '클레이' 수학연구소(2000년 5월)에서 그야 어떻든간에 한 문제 풀어줄 때마다 100만달러 주기로 현상금을 걸었지요.
그 중의 하나가 '앙리 푸앙카레(1904) 추측'.
이 추측을 러시아 은둔 수학천재 '그레고리 페렐만'이 풀었다고 선언하자 많은 수학자들이 달라 붙어 이 사실을 확인하려 들다가 드디어 3년만에 추인했다지요.
그러나 페렐만이 '대단한 게 아니고, 그냥 한 것. 나에게 돈은 필요없다'고 말하여 상금을 받으러 나타날지 말지가 궁금하지만 실제로 본인은 가난하게 살고 있다지요.
만약에 수학천재가 풀어낸 '푸앙카레' 수수께끼'가 진리문제였다면 '페렐만'은 진리를 풀어낸 메시아로 불리워질 겁니다.
그러나 수학은 이에 상대적인 다른 학문 및 자체내의 속성이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윤리, 덕목, 예능보다는 진리에 이르는 길에 제일 정확합니디.
이 말은 비록 수학이나 과학적으로 진단할 수는 있서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풀기 어렵다는 증거로서의 예화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삶과 죽음에 대해 설법, 설교하신 석가여래, 예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밖에 없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죽음의 문제는 인류역사상 아무도 다가가지 못한 어려운 문제, 난제(難題) 중의 난제.
일찌기 본불(本佛) 석가여래께서, ..'신성한 진리는 고통을 없애주는 말씀이요, 그 고통이란 집착으로 인연짓는(연기緣起) 잘못된 첫 생각(무명無明)으로 인함이요, 역시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생겼다, 변화하며 이루어 한 동안 머물렀다가 무너져 공(空, sunyata)이 되어버리는 것(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설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51,54,55
그 후 노자가 '나 홀로 우주 만물을 낳으신 어머니를 향해 길을 걷노라'라며 죽음의 그 길을 '도(道)'라 부르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삶'에 대한 도덕경을 남기잖아요.
그리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신 예수님과 함께 이 세분들이 남기신 어록의 참 임자가 세 분이신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 어록 불경, 도덕경, 신약이야말로 어려운 경전, 난경(難經).
이 어려운 경전에는 '진리(로 나아가는 길) 및 사회개혁적인 사랑의 윤리'가 합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개념은 칸트-'사람은 죽는다'라는 사실적인 분석명제(分析命題,tautology)가 아니요, 과학적 '대중적(大衆的.exoteric) 진리'라기 보다는 삶과 죽음을 다루는 성인적 분석명제, 즉 '비전(秘傳)의 진리(esoteric truth)'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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