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民)은 누구인가? 민은 신민(臣民), 국민(國民), 시민(市民), 인민(人民), 민중(民衆), 서민(庶民) 등,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개념과 모습으로 나타났다. 옛글에서는 민을 ‘적자(赤子)’, 즉 ‘갓난아이’라고도 했다. ‘적자론(赤子論)’은 1801년 신유옥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동원되었다. 천주교를 엄금하는 정순왕후의 척사(斥邪) 하교가 그것이다. 신유옥사는 정조 사후 정순왕후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도발이었으며, 척사 하교는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의 선언이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다운 것은 교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른바 사학(邪學)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무너뜨리고 교화에 배치되어 저절로 이적(夷狄)과 금수(禽獸)의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다. 저 어리석은 백성들이 점점 물들어 그릇되니, 마치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 어찌 측은하여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 천주교 탄압을 위해 민을 갓난아이 취급 「서경(書經)」에 “백성을 갓난아이 보살피듯 하면 백성이 편안히 다스려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유가적 정치이념은 자연스러운 가(家)의 원리를 국(國)의 질서논리로 확장시켰다. 군주의 백성에 대한 정치는, 부모가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물로 들어가는 갓난아이의 비유는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유래한다. 맹자는 갓난아이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깊은 우물에 들어가는 것[赤子入井]을 보는 순간 인간은 본성적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는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등장하는 적자라는 표현은 쓰이는 맥락과 의미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곤란에 빠진 백성을 구제할 국왕의 의무를 밝힐 때 쓰였다. 가령 정조가 극심한 기근(饑饉)에 빠진 지방 백성에 대해, 백성의 부모로서 갓난아이를 제대로 살게 하지 못해 밥맛을 잃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태조가 “하늘이 나를 명하여 한 나라의 군주로 삼았으니, 무릇 경내(境內)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의 적자(赤子)인지라, 똑같이 사랑하여 하늘의 뜻에 보답해야 한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죄인을 용서를 하거나 백성을 평등하게 처우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적자론’은 통치를 시혜적·온정적인 것으로 보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백성들을 보살피는 의무를 국왕과 치자에게 부여하고 백성들을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하게 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무랄 것은 없다. 그러나 정순왕후의 척사하교에서는 일반 백성을 선악과 시비를 분간하지도 못하고 위험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으로 규정한 후, 이들의 보호를 구실로 특정세력에 대한 강경한 탄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였다. 19세기에 ‘적자’라는 용어는「실록」에 더욱 빈번하게 등장했다. 19세기는 왕조적 통치 질서가 이완되고, 궁지에 몰린 백성들이 동요하고, 각성한 백성들이 적극적 행위를 감행하는 일이 증가했던 민란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적자론은 현실을 호도하고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논리였다. 호민이 일어나 소리치면, 원민과 항민도 따라나서 적자론이 통치자의 입장에서 민을 본 것이라면, 민의 입장에서 민을 본 것이 있다. 바로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이다. 그는 항민·원민·호민의 세 가지를 말했다. 항민(恒民)은 성공이라야 함께 즐기고 늘 보는 바에 구속되며, 그냥 따라서 법을 지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이다. 원민(怨民)은 모질게 수탈당해, 생산한 것을 다 바쳐 끝없는 요구에 대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이다. 호민(豪民)은 자취를 푸줏간에 감추고 몰래 딴 마음을 쌓으며, 시대적 변고를 틈타 원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사람이다. 호민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팔을 휘둘러 논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친다. 그러면 저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 모의할 것도 없이 함께 외친다. 저 항민이란 자도 살 길을 구해 부득불 호미 따위 농기구를 들고 따라와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인다. 호민론에서 민을 일률적으로 보지 않고 유형화한 것은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면이 있다. 다만 왕조사회를 전제로 한 점에서 그 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은 느낌도 없지 않다. 민을 갓난아이로 보는 적자론은 지금 시대엔 전혀 맞지 않다. 그런데 민을 오염대상으로 보고 위험을 내세워 특정세력을 탄압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웬일인가.
--- Re: 민(民)에 관한 갓난아이론과 호민론 - 국민은 허점많은 갓난애같은가? 마치 갓난애보듯 적자지심(赤子之心)으로 정치할 수 있는지, 그 언제였나요?
나라일을 돌보지 않던 은(殷) 제 2대왕 태종[太甲]이 뉘우치며 "짐(朕)이 나빴네. 하늘이 내린 화(禍)는 어느 정도 피할 수가 있지만 내 스스로 지은 잘못을 피할 길 없고, 다만 내가 잘하여 갚을 수 밖에 없다" 고 (요즘으로 말하면) 대법관 아형(阿衡) 이윤(伊尹)에게 반성했다는데 지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요.─서경 태갑 中
여기에 희한한 표현이 나오는데요, '내 스스로 지은 허물을 피할 수 없죠'(자작얼ㆍ불가활(自作孼ㆍ不可活)에서 '서자 얼(孼)' 자입니다. 직역하면 '내 허물로 낳은 서자(庶子)에게 내가 활발할 수는 없다'라는 뜻이겠지요.
이말을 오해하자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허물에서 서자같은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일 겁니다. 정권이양이 불안하면 정치적 서자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일 겁니다. 역시 본의 아니게 남의 허물로 정권창출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말일 겁니다.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가명으로 올라온 내용에 대해 유명인이 말했을 때에 배심원으로부터 무죄평결이 나고 판사로부터 유죄가 확정되는 서정(庶政)이 있을 수 있겠고요
배심원 유죄평결로 억울하게 34년간 옥살이한 캐시 딜라노 레지스터(Kash Delano Register. 65)氏도 있을 수 있겠고
RO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국가 기간산업 파괴와 무기확조를 논한 일을 부인하다가 다음에는 발언내용이 왜곡됬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모든 것이 뭣같이 답답한 세상 한 번 웃어나 보자고 한 농담이라는 궤변도 나올 수 있겠고요
언제든 도망갈 준비하면서 목검을 차고 구부러진 코 가면 쓰고 남을 속이는 몰리에르 스카핀(Scapin)도 나오겠고요
존경하는 사람과 서녀(庶女)를 낳고 이 아이의 앞날을 위해 멀리 보내겠다는 나타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도 나오겠고요 이 상황을 스파이처럼 숨어서 다 보며 냉소하는 그녀의 남편 로저 칠링워드(Roger Chillingworth)도 있을 수 있겠고요
요지경 속에 허망한 만고불변의 말씀
주공(主公)이여 나라를 다스리는데, 공동운명체[營] 민초를 갓난애같이 천진하게 하실 수 있습니까?─도덕 제 10장
민초들이 실수해도 갓난애 돌보듯, 정성껏 환자 돌보듯 하면 민초는 안심하고 자신의 직분에 힘을 다할 겁니다. ─서경 강고 6, 대학장구 9
대인(大人)이란 이와 같아 마음이 통달하고 순일하기에 생각을 넓히고 채운다면 알지못하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을 겁니다.-맹자 이루 下
이러하면 민초 중에 원민(怨民), 호민(豪民)이 나올리 없을텐데 말입니다. 내 잘못을 모르고 반성이 없는데 만고불변의 금언은 민초의 허망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