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의 절대강자, <봉피양>&<우래옥>
폭염이 찾아 왔던 올 여름은 밥보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줄 냉면 생각이 끼니 때마다 간절했다. 차갑고 시원한 국물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메밀면의 시원함은 첫 맛이 자극적이고 화끈하면서도 쫄깃한 함흥냉면보다 더위에 지친 입맛을 서서히 깊게 식혀준다. 시원하고 담담한 감칠맛의 차가운 육수와 한 입에 호로록 넘어가는 메밀 면발로 대변되는 평양냉면은 여름철 깊이 있는 맛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 평양냉면 가장 맛있는 집은?
평양냉면은 메밀 면으로 만든다. 주재료인 메밀은 여름이 제철이다. 열을 식혀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 여름에 챙겨 먹으면 좋은 식재료다. 여름의 평양냉면은 단순한 냉면이 아닌 무더운 여름을 잘 나기 위한 해열제와 같다. 원래 냉면은 추운 겨울 이북 지방에서 농사지은 밭곡식으로 면을 뽑고 김치 국물이나 육수에 말아 먹는 메뉴다. 귀한 손님이 오거나 긴긴 겨울밤 별미가 생각날 때도 만들어 먹었던 전통 깊은 음식이다. 연세 지긋한 실향민 어르신들은 추억을 회상하는 겨울 음식이지만 요즘 세대에게 냉면은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듯 질겨도 너무 질긴 면발과 새콤달콤 양념과 국물, 팥빙수만큼 차가운 국물로 여름 음식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에게는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것이 요즘 세대의 평양냉면에 대한 첫인상이자 오해다.
<봉피양>과 <우래옥>은 모두 평양식 냉면의 절대강자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두 곳은 좋은 재료로 만드는 진한 육수와 직접 뽑는 메밀 면 그리고 보통의 냉면보다 약간 더 비싼 가격대라는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들의 평양냉면은 마치 관록 있는 여배우 같은 모습이다. <우래옥>은 단아한 화장기 없는 민 낯의 미녀다. 첫눈에 반할만한 미모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우아함에 끌리는 스타일의 중년 여배우 같다. <봉피양>은 한눈에 봐도 이목구비가 반듯한 예쁜 미모의 여성이다. 젊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본바탕도 아름답지만 옷도 잘 입고 화장도 잘하는 패셔니스타 여배우가 연상된다.
평양냉면은 무더위에 깊게 지친 입맛을 평온하게 식혀줬다. 올 여름을 마무리하면서 서울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봉피양>과 <우래옥>의 평양냉면 맛을 비교해 보자.
봉피양
<봉피양>은 서울 방이동 <벽제갈비>의 세컨드 브랜드다. <우래옥>이 소고기 요리가 유명하다면 <봉피양>은 돼지고기 요리가 맛있고 평양냉면이 인기가 좋다.
깔끔한 스타일의 <봉피양> 평양냉면은 돼지 본갈비를 먹은 다음 후식 혹은 그냥 메인 메뉴로 먹어도 젊은 층 입맛에 무난하다. 진한 감칠맛의 육수와 동치미 국물이 잘 어우러진다.
여러 재료를 고명으로 활용해 유기그릇에 깔끔하게 담아 은근히 단아한 듯 화려한 느낌을 준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면발은 잘 꾸민 패셔니스타 중견 여배우 같다.오이, 얼갈이김치, 달걀지단, 수육 고명이 사계절 일정한 모양으로 올라오고 국물 맛도 항상 일정한 편이나 역시 동치미가 맛있는 겨울에 먹는 것이 조금 더 맛이 좋기는 하다. 국물 맛이 깔끔해 처음에는 그냥 먹고 반절은 식초와 겨자를 추가해 두 가지 맛으로 즐기는 것도 잔 재미다. 냉면만 주문해도 가볍게 잘 삶은 제육 두 점이 곁들여 나오는데 부드러운 메밀면과 아삭한 얼갈이김치와의 조합이 좋다.<우래옥>에 비해 식당 내부는 다소 협소해 보인다. 조금 더 우아하게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면 <벽제갈비>를 선택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봉피양>도 주요 식사 시간대에는 붐비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서비스로 평양냉면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가격 평양냉면 1만원, 순면 1만4000원<방이점> 주소 서울 송파구 방이동 205-8 전화 (02)415-5527우래옥
서울 을지로 4가역 부근, 수십 년 단골인 어르신들이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제법 많이 찾는 오래 된 평양냉면집 <우래옥>이 있다. 이곳은 평양에서 식당을 하던 주인이 월남해 평양냉면을 만들어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소고기로 하는 요리들이 맛있는데 불고기를 먹고 난 후 냉면을 챙겨먹는 오래 된 단골손님들이 제법 많다.대대로 서울토박이인 지인 덕에 <우래옥> 평양냉면을 처음 맛봤는데 그 지인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따라 택시 타고 을지로로 나와 <우래옥>의 불고기를 먹은 다음 입가심으로 냉면 먹는 게 가장 큰 외식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고급스러운 식재료와 맛, 가격대 때문에 큰 마음 먹어야 외식이 가능한 식당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냉면 생각이 간절한 날, 주요 식사 시간대에 방문하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여전히 많다. 붐비는 시간, 줄을 서고 합석도 불사하며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하면 하얀 백자그릇에 냉면이 담겨 나온다.냉면 국물은 담백하면서 육향 진한 소고기 국물로 흡사 차가운 설렁탕 한 그릇을 먹는 기분이 든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경우에는 자칫 밋밋하고 맨송맨송할 수 있으나 먹다 보면 느껴지는 감칠맛이 상당히 진하다. 재료 자체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을 느껴야 하기에 평양냉면의 초심자의 취향에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다 보면 육수와 부드러운 메밀 면의 조합이 깔끔하게 떨어져 중독성이 있다.한 여름, 가을에 나오는 배는 환갑이 지나 맛이 없고, 비싼 때를 제외하고는 송송 썬 실파와 곱게 채 썬 배를 고명으로 올려준다. 한 여름에는 오돌하게 절인 오이와 백김치 고명을 올려주는데 이 단출하고 깔끔한 모습과 담백한 맛이 화장기 없이 우아한 스타일의 연기력 좋은 중견 여배우 같다. 따라 나오는 배추 겉절이는 샐러드 같이 그냥 먹어도 깔끔하고 재료 맛이 진하게 느껴진다.여름철 점심시간에는 젊은 여자 손님이 연세 지긋한 신사와 합석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먹을 만큼 맛의 깊이가 있다. 몰론 일반 냉면 가격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굳이 합석해야 하는지 서비스에서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점잖고 친절한 좋은 재료로 만드는 냉면 맛의 깊이 감에는 만족한다.가격 평양냉면 1만1000원, 순면 1만2000원주소 서울시 중구 주교동 118-1 전화 (02)2265-0151글 서연지 <Nana’s kitchen> blog.naver.com/nanacook.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