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서 읽은 어느 며누리 이야기; 말로서 져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며누리를 맞아드리자 처음부터 잡으려고 새애기씨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않 배워 왔냐"고 소리치자 "제가 배워 왔다했어도 어머님께 배우는 것이 더 많을꺼에요"란다. 조금 있다가 또 흠을 발견하고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교 나왔다고"라자 "요즘 대학 나와 봐야 예전의 초등학교 수준만도 못해요"란다. 그렇게 세게 치든 헛치든 그 공을 며눌아기가 살짜기 네트위로 넘겨준다. 피로해진 건 시어머니. "츳 츳. 그래라 네가 이겼다. 앞으로는 살림을 네가 맡아서 하거라." 이로 보아 시어머니의 적적하심에 며누리 편에서 차라리 시어머님밑으로 내려가 받들어 올려 드리는 것이 져드리는 것 같으나 당신의 인정욕구를 받아드림으로써 집안이 그 이전보다 화목해져 한동아리가 될 수 있는가 보다.
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이런 며누리같지 않고 고생이 되더라도 참는 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거꾸로 한 겁니다. Every man's goose is a gander란 서양속담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속담에 "가제도 게편이라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털이 부드럽고 윤이 난다)'"라고 면면한 우리민족성에 역성을 들어 연세대 조윤제(趙允濟) 교수가 쓴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가 국정교과서 고등학교 국어편에 실린 적이 있었죠. 그러나 한국인 기질중에서의 은근과 끈기는 나라가 망할 즈음에 민족성으로, 혼란기에 열사, 의인으로 나타났을 뿐 정치사와 문화사의 거의 전부가 변덕이 죽 끓듯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법을 제정해도 오래 가지 못하고 폐기해버리는 버릇이 있지요. 그리하여 세종대왕 때 남긴 이조실록 세종조(朝)에 "고려공사삼일"이란 챙피한 이야기로 우리 국민성을 한탄한 기록이 있지요. 역사학자들의 부서인 춘추관에서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품성이 무슨 일에 참을 성이 부족하여 자주 변경함을 중국인이 지적했는데 진실로 빈 말이 아니다. - 高麗公事三日은 東方之人이 不能耐久하여 一政一令에 革易無常하니 謂之三日者는 弄其不能久라-동방의 사람들이 그 능히 오래 견디지 못하여 한 가지 정사와 한 가지 명령에 변하는 것이 무상하니, 그 3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능히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었지요.
이로써 보건데 지난 번의 우리나라의 언론법개정과 북한의 개성공단 계약파기가 그 예라 할 것이다.
2009-08-30 16:20:54
60702012-04-15 (일) 08:15
Daniel Kyungyong Pa [ 2009-09-02 12:51:53 ]
燕雀, 安知鴻鵠之志.
3 Daniel Kyungyong Pa [ 2009-08-31 16:51:36 ]
윗분이 아랫사람을 큰 소리로 야단치시는 원인이 "적적하심"에 있지 않고 "의심이 많은 까닭"이라고 스승인 김굉필(金宏弼)에게 감히 말한 제자가 조광조(趙光祖). 후일 조광조가 크게 씌여 사회개혁을 하려 하자 지금의 위치로 말하면 남산 팔각정 동편 500미터지점에 돌담이 있는데 이 성 옆의 나무잎에 꿀로 "주초지왕(走肖之王)"이라고 글짜를 새겨 벌레가 파먹게 한 후 "조(趙)씨가 왕이 되려고 흉계를 꾸미니 벌레까지도 이를 안다"고 참소하여 죽게 만들었다. 죽어라고 공들여 만든 법이 정권만 바뀌면 폐기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손바닥 뒤짚어 마술피듯 쉽게 법을 만든다. 이런 정치가를 "교묘한 탈출의 명인 후디니(Houdini, an ingenious feats of escapology)"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