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孟浩). 자(字)는 호연(浩然). 누구는 시험만 쳤다 하면 9번이나 장원하는 이율곡같은 분도 있고, 반대로 실력은 대단한데 관운이 없서 해가 바뀌는데 진사시험에도 미역국 먹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넉두리 시를 읊은 사람이 바로 중당(中唐)의 맹호라는 시인입니다. 그가 관직을 원하는 걸 알기에 왕유(王維)의 추천으로 현종임금께서 보시자하였는데 그가 지은 오언율시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을 들어 보시드니 다 좋은데 세번째줄 '재주가 없서 임금에게 버림받았네(不才明主棄)'란 구절이 넉두리라 마음에 안든다고 하실 때 변명하거나 퇴고하지 못해 낙향하고 맙니다. 6년 후 한조종(韓朝宗)이 양주자사로 갈 때 만약 그가 제 시간에만 장안에 도착했서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섰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지은 그 시 내용대로 등에 부스럼 '병이 생기고 친구도 소원해지고 백발은 해를 재촉하고 봄볓은 세월에 밀려 사라져 버렸고 가슴속 깊은 시름을 안고 잠 못 이루는 밤에 창에 어른거리는 소나무와 달빛이 공허하구나(松月夜窓虛)'였습니다. 3년 후 왕창령(王昌齡)이 양양에서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맹호가 지은 '춘효(春曉)'시를 들으면 이부자리 속에서 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로 춘곤증에 대한 그 표현력이 대단한, 왕유와 같은 자연시인으로 성장해 있섰습니다. 왕창령은 오래 간만에 서로 만나 담소하며 생선을 안주삼아 술을 들었는데 이 것이 등에 부스럼나고 인생에 찌들은 그에게 식중독을 일으켜 그만 죽고 말았읍니다. 그렇게 관직에 오르고 싶은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점은, 출세를 하려거든 넉두리를 늘어 놓지 말거나 확고한 인생철학과 뼈를 깍는 절차탁마의 근고를 닦지 않는 한 매몰차게 윗 사람의 소개를 헛되게 함으로써 평생에 찾아 오는 단 몇 번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자녀들에게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천적(天敵)이 있습니다. 뻔뻔하게 대할 수도 약점을 들추어 낼 수도 그렇다고 그 사람때문이라고 비관할 수 없고 혼자서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천적이 상존하기에 다른이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빕니다.
2010-01-01 23:05:15
60702012-04-15 (일) 07:05
Daniel Kyungyong Pa [ 2010-01-02 08:11:20 ]
이 글의 소재는 주옥같은 글을 올리시는 분 중의 한 분인 채수경 주필님 "망년회에 맹호연을 초대한다"란 글에서 따온 겁니다(세계일보 2009.12.31).
"나이 먹을 수록 망년회 또한 쓸쓸해진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40세 무렵에 장안으로 올라가 과거에 응시한 ~맹호연 세모귀남산이란 시~.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란 수필을 읽고 저는 인용한 시로 세모의 편면을 그렇게 묘사하는 대신에 그 시인의 생각이 생각대로 꾸려져 나갔다는 전인생을 조명해보려 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 대해 '실오리, 옆모습, 반사경, 반면경, 만화경, 조망대, 양지'음지'로 촌평이 나오는 것 또한 아름답지만요. 愚齎 vedok
댓글주소
60702012-04-15 (일) 07:06
Daniel Kyungyong Pa [ 2010-01-02 09:15:32 ]
년말 성탄예술제, 아이들 연극을 보고 즐거워 합니다.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태어나셨는지 그 기념일 날자를 고증하는 것은 의미가 없서져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은 새끼줄로 엉성하게 매어 쌓여 있는 사과궤짝 관습을 따라가는 가 봅니다. 엉성한 구조적 결함을 그냥 따라가며 우리의 장딴지의 탄력을 잃지 않고 남비 들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따라 부르면 됩니다. 주필님의 말씀대로 만약 '우리의 팔다리 근육이 삭은 고무줄처럼 탄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그 놈마저 숙청해버리면 삶의 리어커를 뒤에서 밀어줄 놈을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억지 춘향의 미소일지라도 산타클로스 모자방울을 흔들며 밝은 미래상을 가져 봅시다.
댓글주소
60702012-04-15 (일) 07:06
Daniel Kyungyong Pa [ 2010-01-02 20:29:40 ]
이순신 장군이 "나라에서 써주면 죽음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갚고, 써주지 않으면 들에서 밭이나 가는 것이 족할지니, (같은 덕수이씨 이율곡의 초청에 응하지 않고)권세에 아첨하여 일시의 영광을 취하는 것은 나는 하지 아니한다라고 친구에게 말했는데, 왕명을 어기고 왜군과 싸우지 않아 옥에 갇혀 있섰는데 선조임금이 군율로 다스리려고 했다. 이에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이 "~그 때 진군을 아니한 것은 반드시 뜻이 없서서 그런 것이 아니니라.~"고 변호하여 다시 통제사의 직책을 맡게 된다. 1/2
댓글주소
60702012-04-15 (일) 07:06
Daniel Kyungyong Pa [ 2010-01-03 16:04:16 ]
왕의 출전명령을 어겼던 이유는 일본육군이 점령한 항만에 U字(凹)처럼 포진(砲陣)한 사지(死地)에 쳐들어 가지 않았으며 넓은 바다로 유인했으나 적이 응해주지 않았다고 난중일기(亂中日記)에 기록합니다. 이 일기는 이질에 걸려 몸이 아파 소주를 먹으면 덜 아플가 하여 마셨다가 혼수에 빠졌던 3일, 그리고 궁중에 제사가 있을 때만 빼고는 꼬박꼬박 쓰셨으며, 아첨에 매몰차고 군기가 엄하고 뼈를 깍는 노력으로 천문, 지리, 물살의 흐름, 병법으로 백전백승을 기해야 하고 전투 중에 죽을꺼라는 예견의 꿈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정도의 급수라면 학연, 지연, 혈연의 빽(back)줄을 않타도 될 겁니다. 이러기에 동향평팔랑(東鄕平八郞;Togo Heihachiro) 제독이 노일전쟁해전에서 이기고 승전축하연회에서 명치천황, 제신들이 다 모여 오고 가는 말 중에 "이순신과는 비교가 안돼고 혹시 저를 넬슨과 비교하신다면 칭찬을 받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겁니다. 동향평 팔랑(8째 아들)은 영국에 보내어져 4년제 Thames 해양대학을 나오고 케임브릿지에서 수학(數學)을 더 공부한 후 다시 전투함건조기술을 배운 후에 귀국한 해군입니다.
댓글주소
60702012-04-15 (일) 07:07
Daniel Kyungyong Pa [ 2010-01-03 19:16:38 ]
저에게는 과찬의 말씀이고, 한국문학의 영역사업의 필요성을 투시하신 겁니다. 예를 들어 이광수가 살아계시다고 가정하고 노벨심사위원회에 한글로 된 '사랑', '흙'을 제출하면 이 작품이 공적사항으로 평가받겠사오며, 독도영유권문제가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회부된다면 일본은 영, 불어 자료를 제출하는데 우리는 한문으로 기록된 동국여지승람을 증거로 제출하면 양코백이가 증거 충분하다고 끄떡이겠습니까, 더 나아가 고맙게 영어로 번역해 주겠습니까? 번역은 반창작이라 그 얼마나 어려운지 그 사이 촌음을 아껴서 우리 詩문학像을 노박사께서 선양하신데 감사. 생긴 건 뭘까요. 박사님께서
키우시고 만족하신 것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강인한 인간 한국 선인장(sabra) 像이었지요. 하 - 꽃은 구경하는 분이 임자라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