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에는 6-25 사변이 일어나 장난감이 적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심심하지 않게 놀았고, 늘그막한 지금은 장난감에는 취미가 없고 말하는 재미와 듣는 재미로 살고 있는 게다. 그런데 내가 성도착증에 아슬아슬하게 다가가는 음담패설에 흥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아연 실색한다.
그러나 과연 재미있다. 세상에 남을 욕하지 않고 욕하는 이의 얼굴에 웃음을 울구어 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정신신경증에 발목잡히지 않으려고 스윗치를 껏다가 장난기가 발동하면 다시 스위치를 넣으며, 주위에서 나를 마구잡이로 욕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미끼로 쓰고 있음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 것은 유머도 아니고 분명히 본능을 환기시켜 "솔직히 너희 또한 동물인데 왜 그리 고상한 척 하느냐"는 우화로 쓰는 악취미가 있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좀 뜸하다, 독자가 도다리와 광어 맛의 차이점을 묻기에 그 맛의 비교를 아리아리한 댓글로 달았다. 그 감치는 맛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질감(texture)과 살코기의 감별법만 말해줬으면 됐으나 마구잡이 표현으로 성도착증의 수위를 찰싹찰싹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의 이 성도착증은 만들려고 해서 된 의식적이라기 보다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잠재의식이 표출된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 것은 저의 선친의 바람기에서 자연 습득한 것으로, 그 실천을 통하여 미녀를 아내로 마지해야 하는 등 몇가지의 제 야욕을 이루어 냈으며 절정에 이룬 것은 2004년도에 출간한 '스테인드 그라스의 사람들(STAINED GLASS WORKERS. 469 페이지)'이었다.
사람이 착색된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고 보고, 그 스테인드 그라스 속에 있는 적라라한 인간 실존을 지그문드 프로이드 식으로 파헤쳐버렸던 것이다. 이 책속에 대략 100명의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670 페이지에 달하는 2005년 '멸절의 문명(ENDANGERED CIVILIZATION)'에서는 징기스칸, 토마스 제퍼슨, 나폴레옹으로 부터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하여 대충 400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성(性), 패권, 야망을 이루려는 종교지도자들의 패권 때문에 현재 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하여도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문명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사정없이 휘갈겼던 것이다.
지금 과거를 되돌아 보면 내 어려서 장난감이 없서 소꼽장난(결혼), 좆박기(분대전술), 딱지치기(1:1 승부수), 찜뿌(협동정신), 자치기(합법적인 폭력), 보물찾기(광업, 모험), 연극(사회생활), 어름말(제 집 찾기), 돌 위에 돌 쌓기(축성법), 퉁소(고요속의 자연의 운률), 하모니카(서양음악), 공기놀이(셈본), 손 끝으로 조약돌 튕겨 세번만에 내 땅으로 돌아 오기(황무지 개간), 굴렁쇠(관성), 나무토막 조립(건축), 종이돈(화폐유통), 물총싸움(사격), 하수물을 흙으로 막기(관계수리), 딱총(권총발사), 병정놀이(군대조직), 널뛰기(너와 나의 동등권), 여치집(축산), 낙서(미술), 주사위(확률), 윷놀이(순렬조합), 숨박꼭질('있'고 '없'음), 화경(렌즈) 촛점맞춰 불내기(물리), 물수제비뜨기(가속의 접점)..... 등 아마 그런 장난이 이리저리한 의미일수 있다고 연상되기에, 요즈음처럼 우리세대에는 전자칩이 들어간 중국산이나 FISHERMAN의 프라스틱 장난감이 없었어도 그런대로 잘 놀았던 것 같다.
그러면 자 이제는 나이들어, 나이들었으면 추물이 아니라 동심이 된다고 하였으니 동화를 읽기 시작했는데 다시 책을 더 꺼내어 보아야 하겠다.
그런데, 아! 이 '그런데'란 걸레질로 내 말이고 상대편의 말을 약화시키는 단어를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데, 제 아희들이 저보고 영어로 동화를 써준다면 펴내겠다고 말하지만, 아 글쎄 동화를 만들려고 몇 줄 긁적거리다 손을 놓으니 아직도 내가 애늙은이 심정에 살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순진한 동심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숙한 언변에 자상한 할아버지 노릇에도 미침이 없으니, 실로 무서운 애늙은이(enfant terrible)임에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겨우 한다는 게 '좌광우도'의 광어와 도다리 감별법으로 올린 댓글만 지웠으니 말이다. So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