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고달픈 하루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좋아라고 달려드는 아희들과 먼 발치에서 미소짓는 아내가 보고 싶어 귀가하는 재미도 있으리라. 단란한 가정, 웃음이 떠나지 않고 없는 반찬에 웃음의 꽃이 피울 때가 옆자리 눈치보며 불갈비 살발라 먹는 맛 못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여기 열린마당에서 뭐니뭐니 해도 고달픈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촬수님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건 남의 행ㆍ불행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행복을 제쳐놓고 열린마당 식구들에게 초저녁의 미소를 선사함이리라.
많을수록 좋다만은 제 맘대로 되는게 아녀. 한없이 부드러워 쓸개 뺀 이 찾으려고 눈비비고 다녀봐도 아직은 착한 촬수를 따라오지 못한거 갸텨.
촬수김이 통속문학적 육담(육두문자)을 하나 방구석에 들어간 적 없고 기척소리만 인용했고,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여 광고하는 듯 해도 그 속에는 겸비와 남의 겸손을 권유했고, 스스로 재주있는 앎을 자랑해도 싸잡아서 스스로가 수치당하는 덧말을 한다.
자기 글을 한탄하고 자기 배꼽을 물어뜯는 촬스 김이기에 글쓴이를 소홀히 대접한 바가 기억이 나지 않고 얄궂고도 희한한 간투사로 체증을 내려가도록 트림하게 해주며, 가지가지 방언으로 어찌나 웃기는지 식전의 에피타이져.
나는 그 누구를 특정지워 최고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인정할 건 인정하는 셈이지요. 예를 들어 촬스 김을 좋아하는 까닭을 말하것 뿐이지 그를 편애한단 말씀 좀 하시지 마시고. 까닭은 그는 알아듣기 어렵고 가치없는 글(육도풍월肉跳風月)을 안쓰기에.
그는 열린마당에서 패자부활전에 나간 적 없고, 역시 이 곳은 그런 장터의 씨름판도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로 추김을 받고 때려(쌔려) 맞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 날이 궂으나 개이거나 만화방창 곳곳에 민들레 씨를 날리며 - 불초 dkp를 범고래로 오해받고 있을 지언정, 사실 그런거 가타고 서넛이 말허지만,(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요) 촬수 김은 자신의 글을 꼴과 땔감으로 낮추는 추요(芻堯+초두草頭).
저를 가끔 놀리지만 이 건 새발의 피인겨 ─. 그만하면 촬수 김? 왜? 저는 매우 좋아하는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