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더듬거리다 보스님에게 댓글 올리면 다운. 이 것이 내 눌변이요 그래도 악착같이 이 마당에 글을 이리 올린다.
암껏도 모른다. 운전면허 따기 980번 도전. 차사순(69세) 할머님. 필기시험 949번. 면허따기 위해 인지대 5백만원. 도합 2천만원. 운전면허를 드디어 따셨다. 이는 이 할머님이 살았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 것이 사는 날까지의 인간의 의지요 집요한 생각에서 나온 승리요 현실. 그 나머지는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요 말씀의 요술일진데 말씀으로 세상의 경험문제를 풀 수 없으리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확인한다.
아 그 유명하신 만공선사의 제자 고봉대선사, 이 분의 제자이신 숭산대선사님에게 하버드 학생이라고 무조껀 추겨 올리는 건 아니지만, 하여지간에 철학과 신학을 열심히 공부한 만행 현각이 감동 먹는다.
"왜 하늘은 푸르지요?" p. 237 "...아이돈 ..노우." "좋아, 좋아. 그런 마음을 갖고 정진하세요."
그는 주장자(긴 지팡이)를 들어 현각의 단전(丹田) 부위를 가볍게 치시면서 "이 센터가 튼튼해져야 해요. 지금은 좀 약해요. 오케이?"
"... 이이돈 ..노우. 좋아, 좋아. 그런 모르는 마음으로 정진하세요. 온리고 스트레이트 돈노우(Only go straight Don't know.)"
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섰고, 감동 먹을 수 있섰을께다. 똑같은 사실, 신(神) 그리고 진리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비아냥거리는 산파술보다, 상대의 기를 살리는 불제자 스님들의 화술에 감동먹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적이 있서도 스님들에게 논객이 없는 성 싶다.
그러함에도 대저 진리는 있으나 허공을 잡는 것. 마음에서 일어난 그 보일듯 가는 길은 있으나 그 내 마음대로 무지개 잡는 일. 이 것이 선불교의 절반이요, 그 암껏도 없는 공무(空無)가 나머지 절반.
이 세상에 진리는 희귀하다. 그 진리중의 하나는 마음으로 느끼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 느낀 내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한번 죽어야, 죽게 된다는 것. 이 것이 칸트적 분석명제요 만고불변의 사실이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리.
그 나머지 진리에 대해 진리의 가르침으로 덮개를 삼으려(잡아함경) 하나, 절대의 그걸 잡는 법은 존재치 않아(금강경) 나는 진리를 얻은 바 없고(금강경) 내 느낌 뿐, 마침내 생각하던 내 마음의 나는 없도다(금강경). 이 모든 것이 나를 지치게 하니, 그에 관해 말 할 수 있는 이가 없도다(전도서). "헛되고 헛되도다. 지극히 헛되도다."
자벌레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몸둥이 길이만큼 앞으로 가기 위해 몸둥이 절반 길이만큼 구부려 뒤로 후퇴했섰고, 차사순 여사는 980번 도전했다. 산골짝 물은 돌에 걸려 뒤로 빙글 돌았지만 그 어딘지 모를 바다를 향해 그 언제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될지 모르면서 대자연의 법칙을 따라 아래로, 낮은 데로 흘러 간다.
살아있는 자체가 진리를 찾는 마음보다 편하고, 내가 삶의 면허를 따는 것이 삶을 정진하던 표증이요, 죽은이에게 내린 훈작보다, 살아있는, 암껏도 모르는 개에게 걸어준 개목걸이가 현실이요, 그 개가 토한 것을 다시 삼키듯 미련한 자는 앞선 이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도다(잠언 26:11).
그 차사순 할머님이 죽음을 앞에 둔 마음이 아니라 집요한 의지의 산물로 면허증을 따신 경우라면 우리에게는 현실 이외의 더 이상의 진리는 없다할 것 아닌가 묻고 싶다.
그 할머님이 마음 속으로 받아드린 지식은 광릉 수목원이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라면서 "양철깡통이 다 삭아 없서지려면 1백년. 알루미눔캔은 5백년. 플라스틱 및 유리는 영구적. 비닐은 반 영구적. 그리고 스티로폼은 1천년 이상"이란 것이다.
그 할머님은 암껏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 공짜☎로 준 새 자동차를 받아 마냥 즐겁다. 사실이다. 이 것이 진리가 아니다.
☎ 현대자동차 www.Gift-car.kr에서 매일 100통이 넘는 응원 댓글이 올라오는 주인공에게 현대 승용차 한 대를 증정하기로 했는데, 이 할머니를 격려하고 감탄하는 글이 하루에 100통이 넘자 하얀색 쏘올 승용차를 타게 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