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의 교양ㆍ문화 수준을 얼픗 비교하시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정곡을 맞추셨다고 동감하다 보니, 댓글이 길어져 이렇게 별도로 올립니다.
울어대는 미운오리새끼도 내 새끼고, 바늘갑옷을 입은 고슴도치도 내 새끼고, 초록은 동색이요, 가제는 게편이라는데, 그 어찌 우리 동포를 미워하기에 '호원 차'님의 글에 동감한다는 게 아니고요, .. 듣기 싫어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님이 표현하신대로 현 상황 사실 그대로거들랑요.
님의 7292 수제지건이 <<일본에 놀라셨을 '하나님'>>이시기에, 일본에는 우리나라 보다 200년 더 일찌기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하의 크리스챤이 마닐라로 귀양보내어진 사무라이[쌍검봉사자]가 있지요.
총신자수는 적더라도, 알짜 신자가 많아, 국가별 인구수 비율이 아니라, 추기경이 우리는 한명+인데 일본은 진작부터 두 분이었지요.
일본국민 신앙은 중국인처럼 겉보기로는 좋다는 건 다 따라가 오전에 교회가고 오후에 절에가고, 친구가 따라가자고 권하면 공자, 노자, 관운장, 신사(神社),..에 들려 우상의 나라같이 보이지만, 여러 종교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않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도덕적 교양이 있는 것으로 그들의 국민성의 장점이라고 느껴봅니다.
윤리도덕 항목은 그 근저에 사랑을 두고 있기에 신앙이 없는 분 역시 사랑심이 풍부합니다.
종교 역시 비슷하다며, 그 까닭을 1994년 당해년 '다라이라마'가 아래와 같이 말씀했지요.
『종교의 통일성(ONENESS)에서 대부분의 종교가 사랑을 같이 강조하였고, 영적훈련을 통하여 자선을 베푸는 인간애의 목표와, 신자들에게 보다 낳은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 주는 효과가 있다』라며 종교의 수평적 동일성을 확인해 준 적이 있지요.
그리고 여러 종교를 섭렵한다는 것은 이단논쟁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는 이점이 있고요, 여러 종주의 진리적 가르침에 일리가 있서 존경하는 분이 하나에 편백[고정]되지 않고 여럿이란 뜻이 있서, 항차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사명당 대사까지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존경하고 있다지요.
그러면 혹시 우상, 만신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셨나를 살펴보면, '호원 차'님이 올리신 내용처럼 하나님이 일본인 태도에 과연 놀라셨을지를 진가민가 궁금하여 성서적으로 추측하여 봅니다.
이제부터 제 의견이기에 댓글다심에도 감사합니다.
1. 거인족 네피림이 이미 있섰고 아담ㆍ이브는 나중이었다(창세기 6장 4절) 등등.
...그러므로 인류창조 연대기가 아니라, '믿음의 아담-첫번째 아담, 예수님이 두번 째 아담'이란 말은 창세기는 과학책도 아니요, 비과학서적도 아니요, 그러나 누구를 상대로 경외하고, 믿음으로 인한 창조주로써 없음(공)에서 목적물인 있음(유)의 실제적 개념을 밝혀준, 즉 보이지 않음의 실상을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여기면서, ..
2. 성서 66권 중 창세기와 요한복음 각 첫 구절의 차이;
..창세기에는 "시초[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이고, 요한복음에는 "시초[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라고 기록된 바, 믿음이 당연히 있는 것으로 전제하는 요한복음의 첫 말씀은 창세기의 물질 존재론에 대한 시초[태초]의 '말씀'과 다릅니다.
왜 굳이 이 말씀을 드리냐면 공의로움과 질서를 위해 신앙심이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3. 하나님이 만드시려는 '목적'으로 창조하시고(창 2:3), 그 중
¹.하나님의 형상(이미지)으로 만드신 두 사람을, ².하나님이 만드신 에덴의 동쪽 동산을 ³.두 사람에게 거처로 삼게 하시고, ⁴.'선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를 자라게 하셨'으니, 이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 인간의지가 있고, 세상을 지배할 권능을 주었으나,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만족할 만큼 먹어도 좋지만 '인간의지'로 선악을 알고자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지요.
왜 이 말씀을 올리냐면요, 이 세상은 하나님과 인간의지로 공동사역한다는 의미로 올렸습니다.
따라서 '인간의지', 인간의 지식'으로 공의로움, 당위성을 판별하기 어렵기에 출애급기[탈출 34장 17절]에 "주조한 우상 신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하셨고,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의 말씀이 공의로움과 당위성을 판별하는 잣대로 삼으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우상에 대해 예수님이 "너희가 모시면 그 게 신(神)이 된다'라시면서 인간의지가 매우 중요함을 확인하셨다 여기는 바, 만약에 아이콘[형상]을 만들지 않고 공의롭다면 이 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 뜻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출애급기에서 바로왕에게 아홉번 보여 주셨음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저물었다 다음 날 다시 돋는 태양을, 만물에 열을 내리고 부활하는 개념으로, 태양신(Ra)이라고 승화시킨 그 바로왕의 부활 기다림의 미이라 신앙인데 부활의 상징으로 개구리, 소똥벌레, ..까지 숭배하는 '만신종교('애매한 미신')'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흉년이 들어 피난가서 신세진 이집트 제 19왕조 람세스(태양의 아들) 2세에게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8번이나 목이 강복[뻗뻗]한 바로왕과 그 밑에 있는 술사 갈데아 사람과 힘든 시합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아홉번까지 하나님이 (태양신보다)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보이셨지, 출국하지 못하게 한다고 첫번 대결에 이집트의 첫 소산을 대번 죽게 하지 않으신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돔, 고모라, 니느웨 성이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불의 심판을 하신게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고, 악의 행실이 창궐하여 구국할 의인을 찾으셨고, 니느웨성에는 한 명도 의인이 없으니 요나를 대신 보내어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였지요.
그 니느웨 성을 구원하려함은 '왼편과 오른편도 구별못하는 사람이 12만명 이상의 사람들과 그 외에도 많은 가축을 살려 둬야'하는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이로 보아 일본사람들이 설령 하나님을 한 사람도 않 믿는다 해도, 바르게 질서정연하게 참아 순서를 기다림은 지혜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보다 크므로 하나님이 놀라시고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까닭은 성공, 성숙은 99 %의 인간의 노력과 1 %의 행운, 영감, 신의 도움이 필요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잖아요.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지 99 %에, '아바, 아바' 하나님이 1 % 도움주시는 통제적 개방주의인 것 같아 하나님을 믿으면 최후 5분에 결정적인 승리를 얻겠지만, 흔히들 99 % 성공만 했서도 크게 성공한 거라고 생각을 하지요.
따라서 천재지변 중에 큰 지진, 노아의 홍수를 (이해할 수 없는데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벌이라고 하지만, 이 번에 재난 가운데, 재난을 수습하는데, 크리스챤이어야만 착하게 잘 할 수 있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허방대는 과격파 크리스챤의 편견이 틀렸음을 보여주셨으며,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본사람이 그렇게 착하게 고난을 대처하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견해도 성서적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