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올(義)바름(正)'이란 말은 한자 '정의(正義)'에 대한 우리 고유의 표현으로 여기고,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돌'을 굴리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처음 돌을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좀 힘들었지 한 번 굴리기 시작하면 제법 잘 굴러감을 알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해 관성이란 말로 설명되나 봅니다.
그렇다면 위에 말한 그 '의로움(의)'이란, 가까운 예로, 일단 아내감을 구한 후와 스승으로 모시기로 마음 먹은 이후에는 비교적 순조롭게 연분을 이어나감일진데, 아내와 스승의 언행이 틀려도 변치 않고 대해드림을 의라 이르는 것이라 여깁니다.
따라서 연분을 계속 굴리는 행위를 의롭다함으로써, 그 어느 경우에서의 공양왕이 못났서도 정몽주의 일편단심이 있섰고, 단종이 왕통을 이어받기에는 나약하여도 충성맹서를 밀고 나아갔음으로써 성삼문이 세조에게 죽임을 받았음을 볼 때에 의로움이 곧, '바른 길(정도)'이 아니라는 걸 증거하겠지요.
그 의롭다는 매듭에 의하면 예전의 그 누굽니까요? 하여지간에 사제지간의 언약이 있섰다지요? 하- 출중하게 잘 생긴 그 사명(泗溟)이 스승 서산대사 뒤를 쫒아가면서 스승 뒷모습을 볼 수 있기에 살펴보니 남자꼴치고는 별볼일이라 여기고 있는데 스승이 뒤돌아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찰라에 내가 자네 스승이 아니란 뜻이네"라자 사죄했단 말이 있지요.
이 예화는, 그러므로써, 한 번 호형호제, 사부지간 그리고 부부지간이라면, 그 한 번 인연을 선언한 이 후에는 관성으로 구르는 돌처럼 이끼가 끼지 않고, 영원히, 내 울화(통)를 초극하는 언행으로 표출될 때에 '옳다'고 이르기에 이를 '옳을 의(義)'라 불리워진 것 같습니다.
즉, 잣대를 쓰면 바름으로 나아가려는 권도요,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란 초지일관으로 나아가면 '의로움'이란 뜻이겠지요.
비록, 의로움은 정분에 의한 사랑(mercy. 자비)을 껴안고 있기에 날렵하고 정갈한 바름보다는 좀 무겁겠지만요.
즉, 그 중 한 사람이 그 돌을 삐닥하게 밀었서도 이해하다 보니, 지체되어 목적지까지 늦게 도착된다 할지라도 의로움은 따듯한 마음에서 생기는 우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