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하오신데 어떤 때는 이 '열'마당에서 언짢은 말이 오고 가실 적에 본 내용은 희소하고, 오로지 매너에 대한 대부분의 표현을 나누시기에 그 강한 표현 역시 안타깝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왕안석같은 정치사회개혁가 조광조가 어렸을 적에 스승 존함이 김창협(金昌協)이시던가요? 진가밍가합니다만, 이 스승이 아래 사람에게 야단을 치실 적에 그 쪽 사정을 묻지 않고 크게 꾸중하심에 비록 제자이지만 옳은 말로 직언을 해드렸더니, 그 스승이 "청출어람, 빙한어수"라며 제자가 스승보다 도(道)에서 낫다고 말씀하셨더랬지요.
이 말씀은 제가 선열반 사부님보다 낫다는 말씀이 절대 아니오라, 예법상 인정하실 건 인정하심이 지(知)에서 지혜로 승화하시는 경지가 아닌가라며 의견을 올려 여쭙는 것 뿐입니다.
그 지혜를 얻어 해탈의 경지인 절대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여섯가지 방법이 있음을 저보다 지실하실텐데요, 그 마지막 수련단계가 최고의 지혜인 바 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의역하면 불가의 지성적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두는 대지혜도피안행이라 하지 않겠서요.
더 이상 없는 경지를 열반, 부처님의 땅, 부처님의 세상, 보리 또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지혜의 최고 경지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 부르더군요.
그 후로는 살아서도 죽은 후의 경지에 들어가 말씀을 하면 남의 귀에 거스리지 않고, 남의 말을 들으면 최고의 지혜스러운 해석으로 상대를 고무시키시는 바, 그러나 최고의 지혜를 얻은 사람이 없고, 이 지혜를 한 곳에 머물게할 수도 없으나, 그 분의 이미지가 법신불로 영원 남아 있다 했사옵니다.
그 열반의 경지에 든 분의 상(相)인 보신불이 나이가 들음에 육신이 다하여 무너져감을 막을 수는 없지만서도요.
이 대승의 머무를 수 없는 묘행(妙行)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깨달음이 있는 지혜를 가진 분은 마음이 비어 있서, 한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 한 물건도 없는 줄을 알기에, 분별에 떨어지지도 않고, 따라서 분별과 생각에 떨어지지 않음으로 당체(當體, 지혜)에 마음을 두지 않고도 역시 지혜스러우며, 일체의 말씀과 몸의 움직임이 사대부중을 멸도에 이르도록 제도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써라야만 사부님과 제가 향하고 있는 푯대요, 현재의 불완전함을 확인하오는 바;
대저 화낸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제가 찾아보니 670여번인가 씌어져 있서 욥기, 5:2., 잠언 16:32, 29:22, 에베소서 4:31, ..에 기록된 바;
자존심, 욕망, 탐욕, 폭음폭식, 질투, 게으름보다 제일 큰 죄라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요,.. 대저(아이고 송구스럽게도) 때가 이르면 쑥처럼 맛이 더 쓰고 뻣뻣해지는 노인도 있사옵고, 지성적인 분은 벼처럼 꺼벅 고개 숙이고 사람들이 추수하기를 기다리는 노인이 있다 하오면 그 열반의 경지에 진입하려고 지혜를 잘 터득하시는 것과 함께 자비가 지혜보다 상위개념이라고 느끼는 제 심정이옵니다.
일찌기 공자님이 산은 지혜, 물은 인자함의 상징이라 여기셨기에 "물아! 물아!(수재수재(水哉, 水哉)"라고 어찌 감탄하셨겠서요.
다른 말로 말씀을 올리면(위선일망정 아이고 죄송해요.) 노인네 물은 젊은이들을 능히 배 뛰울 수 있게도 할 수 있고요, 능히 젊은이들이 탄 배를 뒤집어 가라앉힐 수 있다고 했거들랑요.-재주복주(載舟覆舟)의 명철을 유지할 사명.
늙어가는 제자로서 같은 여생을 만끽하며 저와 함께 그저 둥글납짝 네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네모지고, 둥그런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물모양이 되어가시지요.